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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도시 통치체제 형성과정 분석: 건국 전후의 北京 接管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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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원준
Advisor
김형종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5-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중국공산당북경(北京)접관(接管)건정(建政)건당(建黨)신민주주의청년단(新民主主義靑年團)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동양사학과, 2015. 2. 김형종.
Abstract
本稿는 장기간의 농촌혁명에 주력해왔던 중국공산당(중공)이 마침내 전국 통일을 앞두게 된 상황에서 국가건설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어떻게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응해갔는지 이해하기 위하여, 北京이라는 대도시에 대한 중공의 接管과정에 주목하였다. 중공에게는 대도시 관리의 경험이 없었고, 게다가 대도시에 대한 성공적인 관리는 국가건설 및 근대화의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에, 수도 北京의 성공적 接管 여부는 과연 중공의 국가건설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北京의 성공적 接管을 위하여 중공이 어떠한 준비과정을 거쳤고, 또 실제 接管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어떠한 형태의 도시 통치체제가 수립되었는지 등의 문제를 분석함으로써, 중공이 혁명세력에서 집권세력으로 변모해간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本稿의 목적이다.
중공이 도시 接管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정책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국공내전이 후반기로 접어든 1948년 초였다. 전선의 상황이 중공에 유리한 방향으로 역전되기 시작하면서 도시 점령 및 전국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중공은 도시정책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接管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石家莊과 瀋陽의 接管사례, 그리고 하얼빈에서의 도시정책 적용사례는 중공의 接管정책이 발달할 수 있는 경험적 기초를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새로운 接管정책의 핵심은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건국에 대비하기 위하여, 장기적 관점에 입각하여 도시를 관리하는 것에 있었으며, 이처럼 중공은 변화하는 정세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국가건설의 과제에 대비하였다. 다만 이러한 준비과정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도시 통치체제의 수립과 관련된 도시 정권구조의 방안에 대해서 명백한 지침을 세우지 못했던 것은, 이후 실제 接管과정에서 중공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되었다.
接管정책의 틀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황에서, 중공은 平津戰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北京의 接管을 위한 인적ㆍ물적 자원을 구비하는 등 일련의 구체적인 接管 준비에도 착수하였다. 北平市委와 北平軍管會는 接管에 필요한 간부 3,000여 명을 충원하였고, 이들에게 北平에 적용할 구체화된 接管정책을 교육시켰다. 중공은 또 다른 李自成이 되지 않기 위하여,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기율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그들의 도덕적 타락을 최대한 예방하려 하였다. 아울러 軍管會는 식량과 석탄 등 도시의 사회질서 유지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사전에 확보하기 위하여, 北京 인근 지역의 물자현황과 물가동향에 주시하는 등,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 확보한 물자는 接管 초기 北京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北京 시내의 지하당 조직은 護廠ㆍ護校투쟁을 통하여 시내의 물자와 자산을 보호하는 데 성공하였고, 또한 중요한 정보들을 교외에 주둔하고 있었던 공성부대 지휘부에 제공함으로써, 중공의 北平 接管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처럼 중공은 北平 接管을 앞둔 상황에서 성 내외 조직의 상호연계 속에서 接管에 대비하였고, 이러한 준비과정은 이후의 실제 接管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기초가 되었다.
1949년 1월 말부터 北京에 입성한 중공은 2월 초부터 接管에 착수하였다. 도시의 정권구조에 대한 명확한 接管정책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중공은 기존의 익숙한 방식인 농촌의 3급 정권구조를 도입하였지만, 이러한 구조는 도시의 集中性과 모순을 일으키면서 여러 문제를 낳게 되었다. 北京市委는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먼저 區ㆍ街 정권을 폐지함으로써 1급 정권구조를 채택하였지만, 곧이어 그로 인한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자 區級 정권의 부활을 결정하였고, 최종적으로는 市ㆍ區 2급 정권과 街道居民委員會 및 街道辦事處 설립이라는 방안을 확립함으로써, 도시에서 集中性의 통치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市ㆍ區 각계인민대표회의의 개최과정 역시 중공의 이러한 모색의 과정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정권구조는 1954년의 인민대표대회 개최와 함께 제도적으로 완성되었다. 劉少奇를 중심으로 建政을 주도하고 있었던 중공 지도부는 北京의 建政과정에서 기존 接管정책의 미비점으로 인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에 정책적으로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함으로써 자신들의 도시통치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모델을 찾아냈다.
효과적 도시 정권구조의 수립을 위한 시행착오가 진행되고 있었을 때, 또한 중공은 도시 통치체제에서 정부기관과 함께 중추적 기능을 담당했던 당 조직(黨)과 군중단체(群)를 조직하는 데에도 주력하였다. 중공은 北平 接管 초기에 기존의 지하당 조직을 정비하면서 무분별한 조직 확대를 경계하였고, 黨務의 제도화를 통해서 당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당의 조직적 기반과 정치적 영향력을 제고할 수 있었다. 또한 중공은 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각종 군중단체를 조직했는데, 新民主主義靑年團은 이러한 군중단체들 중에서도 당과의 관계가 가장 밀접했던 조직이었다. 중공은 靑年團을 비롯한 여러 군중단체들을 통해서 北京 도시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조직화하였고, 이러한 조직화 과정을 통해서 그들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제도화하고 일상화할 수 있었다. 이로써 중공은 黨ㆍ政ㆍ群의 제도화된 조직체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작동하는 도시 통치체제를 北京에 구축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도시사회에서 黨治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하였다.
중공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부터 상황의 변화에 따라 接管정책을 구체화해가면서 도시 接管에 대비하였다. 비록 接管정책의 내용 중에는 도시정권의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接管정책의 미비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함으로써, 중공은 건국 초기의 안정적인 도시 통치체제 수립에 성공하였다. 이 시스템은 네 계급의 연합이라는 新民主主義 정치노선에 입각한 것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한다는 전제까지도 충실히 반영한 것이었으며, 아울러 黨ㆍ政ㆍ群의 제도화된 조직체계를 통해서 도시 군중을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위로부터 동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어떤 면에서 중공이 20여 년에 걸쳐 발전시켜온 농촌혁명의 경험과 방식으로부터의 탈피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중공의 도시 통치체제는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의 다양한 국가적 과제를 실천하는 핵심적인 동력이 되었고,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의 혼란 속에서 붕괴와 재건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毛澤東 시기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공의 도시 통치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1639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Ph.D. / Sc.D.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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