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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元제국 쿠릴타이(Quriltai) 연구
A Study of the Quriltai in the Mongol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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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설배환
Advisor
김호동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6-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쿠릴타이(quriltai 大會)토이(ṭōī 宴會)지순宴(ǰisün)시라 오르두(Sira Ordu 金帳)上都巡幸여름歲賜잠치(ǰamči 站赤)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동양사학과, 2016. 8. 김호동.
Abstract
본고는 쿠릴타이(quriltai), 곧 몽골 황실 大會의 작동 방식과 물적 기반을 탐색하고자 한 연구이다. 13~14세기에 몽골제국의 탄생과 함께 초원의 시공간이 유라시아 역사의 전면으로 浮上했다. 쿠릴타이는 몽골제국 정치의 핵심 시공간이었다. 칭기스칸 등 歷代 몽골 군주들은 쿠릴타이에서 즉위했다. 군사 遠征과 법령 반포 등 국가 중대사 또한 쿠릴타이에서 결정되었다. 그것은 祭天과 宴會(몽골어 qurim, 투르크어 ṭōī)와 恩賜를 동반했다.
몽골 대칸이 작동시키는 쿠릴타이의 시공간은 帝國의 정치·경제·문화질서에 변화를 요구했다. 쿠릴타이는 匈奴 이래 초원 유목민의 年例 祭天 전통에서 기원했다. 祭天의 慣例는 쿠릴타이의 주기성과 관계된 것이었다. 쿠릴타이는 또 태생적으로 군사회의와 군주 선출·즉위 회의의 기능을 지녔다. 이때 쿠릴타이는 不定期로 열렸다.
쿠릴타이는 개최 현장은 대칸의 오르두, 특히 시라 오르두(Sira Ordu 金帳)였다. 쿠릴타이 시공간은 카안의 계절 巡幸과 황실 내부의 권력 변화와 연동하며 재화의 配分과 수취 체계에 변혁을 일으켰다.
13~14세기의 몽골인들은 쿠릴타이를 확대, 발전시켰다. 정월·사월·오월·구월의 祭天은 몽골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반면 여름 유월의 祭典, 곧 지순宴(ǰisün: 一色服의 宴會)은 帝國的 성격의 새로운 몽골 쿠릴타이였다. 그것은 아마 뭉케 카안 이래 초원 생태와 유목생활 週期에 맞춰 텡그리(tengri)와 칭기스칸을 기리고자 시작되었다. 지순宴의 쿠릴타이는 카라코룸과 그 주변 倉庫(anbār와 khazāna)의 물자·보화에 의해 지지되었다.
쿠빌라이 카안은 쿠릴타이의 시공간에 또 다른 변화를 일으켰다. 上都·大都의 건설과 함께 帝國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축이 카라코룸에서 兩都로 옮겨갔다. 上都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大都에 준하거나 때로 그것을 능가했다. 매년 여름 上都(大오르두) 쿠릴타이는 카안과 황실 성원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常典이었다.
쿠릴타이에서 中華 朝儀는 찰나적이었고 그 진정한 핵심은 몽골 고유의 정치·경제·문화였다. 大오르두와 大明殿에서 카안과 카툰의 자리를 나란히 배치한 것은 몽골 전통이었다. 술과 음식은 쿠릴타이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카안의 식탁 위에는 몽골·중국·중앙아시아·서아시아·동남아시아·고려의 風味가 가미돼 있었다. 이 가운데 御膳의 중심은 몽골 北羊·黃羊(Gazelle)이었다. 지순宴에서 法會, 대자삭(大扎撒)·祖訓의 낭독, 음악·무용·연극·씨름·축구·擊毬·放走(달리기) 등 技藝가 진행되었다.
上都는 몽골제국을 실질적으로 유지·작동시키는 데 실질적 힘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上都 巡幸의 궁극적 목적은 淸暑가 아니라 쿠릴타이에 있었다. 몽골 대칸은 上都에서 朝覲과 연향의 悅樂 속에서 일족의 화합을 도모하는 한편, 成憲을 준수하며 先代의 간난을 기억하고자 했다.
쿠릴타이는 방대한 물자와 비용을 요구했다. 그것은 朝貢·선물 헌상, 카안의 財貨 賜與(歲賜)를 동반했다. 쿠릴타이에서 카안의 사여는 忽里台(quriltai) 銀·鈔·金段으로 불렸다. 카안은 여름 上都 쿠릴타이를 위해 大都 帑藏의 재화를 巡幸에 맞춰 上都로 이송시켰다. 이로써 上都에서 성대한 번성은 일순간에 찾아왔다.
쿠릴타이에서 소비·배분(歲賜)되는 가축·직물·보화 등의 物貨는 쿱추르(科差)·칼란(稅糧)·탐가(商稅·課程)의 稅制에 의해 상당부분 지탱되었다. 徵稅 물품 가운데 곡물은 [京]倉(anbār)으로, 金·銀·鈔·金段 등의 귀중품은 內帑(內藏庫·左藏·右藏)과 萬億庫―각기 페르시아어의 나린(nārīn)과 비둔(bidün)―의 財庫(khazāna)에 수납돼 쿠릴타이·國計의 수요에 대비했다.
제국의 물자는 陸運·水運·海運의 복합운송 방식으로 수도로 이송되었다. 황실용 財貨는 쿠릴타이의 물품을 포함했고 운송 중에 특별히 취급되었다. 조악하고 무거운 물품(곡물 등)은 육로·수로·해로를 따라 遞運된 반면, 비싸고 섬세한 物貨(茶貨·金銀·鈔定·絲綿·布帛 등)는 長押官·弓兵의 호송을 받으며 주로 陸路로 운송되었다. 자연·인문환경·제도·인간·동물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몽골 잠치(站赤 ǰamči)는 제도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使客·物貨의 이동 期日을 맞출 수 있었다. 上都路의 운송 능력은 大都路와 유사하거나 육로 운송시설·동물 측면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는 物貨의 최종 소비처로서 상도의 위상을 보여준다.
요컨대 여름철 초원에서 몽골 카안·諸王 등의 쿠릴타이는 지순(ǰisün 只孫)의 옷을 입고 음식을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거대한 소비와 재생의 시공간이었다. 쿠릴타이에서 몽골인의 흥청거림과 소비는 재화의 長期 저장과 증식을 추구하는 [정주] 문화와는 다른 표현 방식의 정치·경제·문화였다.
몽골인은 유라시아 세계에 새로운 단계의 번영과 다양성을 가져왔다. 그 번영을 향유하는 중심에 쿠릴타이가 있었다. 쿠릴타이에서 풍부한 재화는 황실과 엘리트들에게 축복이었다. 반면 백성들에게 그것은 재앙과 은총 사이를 오가는 위태로운 줄타기였다. 거대 帝國 시스템 안에서 백성의 환호, 백성과 자연의 거듭된 再生, 그리고 長大한 제국 운송 체계 안에서 짧은 거리를 이어주는 작은 수레·선박·짐승은 쿠릴타이(quriltai)의 물질문화 번영을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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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Ph.D. / Sc.D.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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