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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新文館의 문학 기획과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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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경현

Advisor
조남현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3-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국문학 전공, 2013. 2. 조남현.
Abstract
▣ 국문초록

본고는 1910년대 근대문학의 형성과정과 신문관(新文館)의 문학 기획의 상호관련성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둔다. 『무정(無情)』 초판의 발행소이자 3․1운동 관련 주요 인사들의 집결지였던 신문관은 이름 그대로 신문(新文)을 만들어 낸 곳으로 평가받는다. 식민지 시기 민족운동과 문학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진 장소라는 점에서, 신문관이 생산한 문학에 대한 평가는 근대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정치와 문학의 역학관계를 짚어보는 일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1910년대 신문관 활동의 궤적은 그 참여인사의 다양한 면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표면화된 것만으로 실체화하기 어렵다. 각각의 참여인사는 신문관의 안팎에서 또 다른 입장들과 서로 대립하고 협력한다. 신문관의 문학 생산은 넓게 보아 신문관 출판 활동의 일부이자 1910년대 근대문학의 일부로서 여타 출판물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을 터인데, 그간 이러한 관련성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낱낱의 실체가 아닌 참여자들의 상이성과 그들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의 망은, 그 자체가 곧 신문관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신문관의 문학이 자신들이 생산한 다른 분야 출판물과의 관계 속에서 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을 포함한 신문관의 서적들은 동시대의 다른 서적들과 교감하면서 생산되었다. 따라서 신문관의 문학 기획을 살피기 위해서는 신문관 뿐 아니라 이들이 몸담고 있었던 1910년대 한국 근대문학 형성의 장(場)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신문관만의 개별 상황이 아닌 당시 조선 내 문학의 전반적인 상황과 그 상황을 만들어 낸 몇 가지 조건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1910년대에 문학은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채 동요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폐쇄된 제도 안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지 않고, 변화하는 지식과 문화의 장에 자신을 개방하여 그 형태를 결정짓도록 하였다. 소위 신문학(新文學)이나 구문학(舊文學)은 여러 겹의 성층을 두텁게 형성하여 상호 침투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新)과 구(舊)로 불리는 단일함 속에서도 다양한 차이들이 경합하며 공존하는 양상을 띠었다. 유동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다양한 제도적인 논의와 구상이 제출되었고, 문학 역시 각 방면의 전체적인 논의와 연계되어 자신의 위치를 조정해나갔다.
학교 교육과 민간출판, 그리고 신문·잡지와 같은 대중매체 등 여러 분야에서 문학이 부각되고 있었다. 독경(讀經) 위주의 전통적인 교육법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교육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어문 교과의 구성은 핵심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민간의 서포에서는 방각본(坊刻本)의 맥을 이어 교육+실용+문학을 통합한 출판활동을 전개하면서, 종래 방각본 출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던 소설을 활용하여 경쟁을 펼쳤다. 신문과 잡지 등의 매체에서도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문학은 중요하게 취급되기 시작했다. 특히 총독부 기관지로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쥔 『매일신보(每日申報)』가 운용한 문예란의 영향이 컸다.
신문관의 문학과 여타 출판물은 이러한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상황 속에서 생산된 것이다. 신문관 출판 기획의 전모(全貌)를 이상에서 언급한 세 가지 문화적 조건들에 견주어 보면, 그것은 무수한 목소리가 잠재된 조선의 지적(知的) 공간을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관(官)과 민(民)이라는 양방향을 축으로 삼아,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문(文)을 통합하고자 한 것이다. 신문관에서는 언제나 더 큰 장(場)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그 안에서 자신을 끄집어내는 방식을 취했다.
설립 무렵 신문관에서는 실용과 수신(修身)을 중심으로 한 근대 학제에 맞추어 교과서를 기획하면서, 특히 정부에서 핵심적으로 다룬 어문 교과에 집중하였다. 그리하여 지리와 역사 지식을 담은 창가와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우화․격언․옛글을 위주로 문학을 구성하였다. 한편, 소설을 비롯한 여타 서적의 기획은 민간의 서적 유통을 고려한 결과이다. 여느 서포와 마찬가지로 신문관에서는 교육·실용·문학을 통합한 출판 활동을 하면서, 소설 발간에 공을 들여 민간의 다른 서포들과 문학 경쟁을 펼치게 된다.
초기에 인적 기반이 취약했던 신문관이 조선 내의 출판활동을 모두 종합할 수 있었던 것은 각종 서적을 인쇄하는 인쇄소를 겸했던 데서 비롯한다. 신문관에서는 어느 한 분야·발행소의 서적만을 집중적으로 인쇄하지 않고, 각 분야별·서포별로 골고루 맡았다. 이를 통해 신문관에서는 조선의 지식-문화의 장에서 전방위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각각의 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보고 자신의 행보를 결정해야 하기에, 실제 출판에서는 언제나 반걸음 차(差)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는 종종 선구자로 고평 받는 신문관이지만, 그것이 곧 선구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입장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민간의 모든 문학에 보조를 맞추는 방식으로 민간의 출판을 통합시켜 나간 결과, 신문관의 문학이 『매일신보』의 문학 전개와 동보성(同步性)을 띠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 병합 이후 총독부에서 지향한 동화(同化)의 정치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매일신보』에서는 조선 내 언중(言衆)의 통합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한문과 언문, 구(舊)와 신(新)을 불문하고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게재하였다. 지방 곳곳에 분매소를 설치하고, 서북(西北) 지역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 등, 그간 중앙의 문자 권력에서 소외된 독자들을 지면 위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신문관의 서적 기획은 물론 『소년』, 『청춘』 등의 잡지에서 확인되는 문(文)의 총체성은 문자를 통일시켜 지배를 강화하고자 했던 지배층의 의지와 표면상 동일한 흐름을 보인다. 그러나, 신문관의 문학 기획은 『매일신보』의 그것과는 정반대로 동일한 문자 내에서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지 않는 잉여의 소리를 부조하려 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시(漢詩)를 선정하는 기준이나 소설 속에서 활용되는 동정(同情) 모티프와 서북 배경 등, 신문관에서는 동일한 문자를 활용하면서도 여러 다른 시선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매일신보』가 상징하는 문자 권력 속으로 회수되지 않는 자신들의 독립성을 지켜나간다.
이런 이유로 신문관의 문학은 시나 소설과 같은 고정된 양식을 무한히 재생산하는 실체적 이해방법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신문관에서는 자신들이 생산한 소설이나 시,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다양한 관계들이 얽혀있는 문학 장 속에서 상호 매개하여 부단히 자기 갱신을 이룰 뿐이다. 신문관에서는 바깥의 것을 매개로 하여 자신을 형성하고, 이를 다시 매개가 된 장의 내부로 되돌려줌으로써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모색했다. 어떻게 하면 동시대의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유동하는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가. 신문관의 문학은 이 물음을 관통한다.
신문관에서는 출판법의 개정과 출판물 검열 등을 통해 자신들의 통치 이념에 부합하는 목소리만을 허용하고자 했던 온갖 정치적 시도들에 정면으로 대립하지 않았다. 주어진 조건을 손쉽게 거부하거나 동일시하는 대신, 그 조건의 내부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정부나 민간에서 만들어 내는 공식적인 문자의 내부로 들어가서 그것을 다시 쓰는 방법을 택했다. 이러한 태도는 현실을 초월하지 않고,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정치적 힘의 역학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한다. 신문관이나 그들이 생산한 문학은 이를 통해 정치적 노예로 전락하거나, 현실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자족성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나 현실에 유통되는 모든 문(文)의 종합이 곧 신문관 출판활동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신문관에서는 문(文) 전체를 조감하는 가운데, 그들이 내는 화음(和音)에 귀 기울인다. 신문관의 문학에서 화음은 사람의 도리를 환기시키는 소리로 구현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여타 민간의 서적 출판보다 반걸음 늦은 개입으로 마련되는 그들과의 대화의 소리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학술과 분리되어 있던 문학에서 관학이 추구한 이념(실용과 수신의 조화)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실현시키면서 생기는 소리이다. 그런 만큼 신문관의 출판 및 문학 활동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독특한 태도는 신문관의 독자적인 태도가 아니다.
신문관에서는 전대의 전통지향적인 문화 생산자들의 태도를 계승 및 변용하여 자신들의 출판 및 문학 기획의 동력으로 삼았다. 공교육을 염두에 둔 출판과 문학 기획에서는 휘문관(徽文舘)과 장지연(張志淵)이, 민간의 출판을 염두에 둔 출판과 문학 기획에서는 지송욱(池松旭)이 경영하던 신구서림(新舊書林)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모두 동시기 다른 문화 주체들과 마찬가지로 전체를 아우르는 출판활동을 펼친다. 그러나 다른 이들보다 언제나 반걸음 늦게 활동을 전개하면서, 서북(西北)이라는 공통의 담론을 중심으로 조선의 독자적인 문학의 생산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근대에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한 매체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대중적 기반을 탄탄히 하려 했다는 특징도 지닌다.
다른 이들보다 반걸음 늦은 행보와 문(文)의 종합, 그리고 문학·매체의 활용― 그것은 곧 신문관 출판 기획의 특징이기도 하다. 신문관에서는 각각의 장에서 자신과 동일한 출판의 태도를 취하는 여러 주체들과 경합하면서, 그들이 형성한 문학의 위상과는 차별되는 문학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 그러나 학술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유로웠던 시대에 오로지 허용된 문자로만 말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정치성을 획득하는가. 신문관의 비정치적 문학 활동이 정치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이때에 정치성을 단련시키는 것은 이러한 상호작용과 자기 부정의 과정 속에서일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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