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백악시단의 진시 연구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김형술
Advisor
이종묵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朝鮮後期白嶽詩壇眞詩天機論朱子學道文合一復古派公安派農巖 金昌協三淵 金昌翕槎川 李秉淵恕菴 申靖夏澹軒 李夏坤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국문학전공), 2014. 2. 이종묵.
Abstract
白嶽詩壇은 眞詩 창작을 목표로 1682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18세기 중반을 전후로 활동이 약해진 문인 그룹으로서, 주요 구성원은 金昌協, 金昌翕, 金富賢, 洪世泰, 趙正萬, 金昌業, 金時保, 李海朝, 趙裕壽, 李秉淵, 權燮, 金令行, 李秉成, 李夏坤, 朴泰觀, 申靖夏, 金時敏, 安重觀, 鄭來僑 등이다. 이들은 師友, 姻戚관계로 맺어진 결속력 높은 문학 同人으로서『詩經』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泯滅된 詩道를 진작하겠다는 高遠한 이상을 견지하고 있었다. 백악시단의 이러한 이상은 시를 단순히 교양의 차원에서 사고하거나 筆力 과시의 수단으로 여겼던 창작 풍토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백악시단은 詩學을 道學의 수준까지 궁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활발한 동인 활동을 통해 詩論을 정비하고, 정비된 시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을 실천하였으며, 상호간의 비평을 통해 작품의 성취를 공유해 나갔다.
백악시단의 진시는 폭넓은 독서와 自得의 학문정신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이들은 朱子學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주자학을 묵수하지 않고 다양한 학문적 성과에 개방적인 자세를 보였다. 특히 중시한 것은 폭넓은 공부를 통해 자득한 견해를 갖는 것이었는데, 이들은 자득한 것이라야 진짜[眞]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학문정신은 백악시단의 진시 창작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백악시단의 진시론은 전범의 재현을 복고의 방편으로 삼은 결과 작가의 개성이 사라져버린 전대 복고파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백악시단이 보기에 복고파의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을 통해 발양되어야 할 작가의 정신은 사라져버리고 전범의 언어나 분위기만을 가져다가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었다. 백악시단은 그런 복고를 가짜 복고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들은 學詩에 있어서는 시어나 수사 차원의 模擬를 지양하고 전범에 내재한 작가의 정신을 체득해야 하며, 창작에 있어서는 자득한 바를 自家의 언어로 표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학문과 수양을 중시하였다. 백악시단의 진시는 眞詩人이 萬有와의 교감에서 얻은 자신의 사유와 감정을 진실하게 담아낸 시라 정의할 수 있는데, 이때 眞詩人은 학문과 수양을 통해 높은 정신적 경지를 갖춘 작가를 의미한다. 이처럼 주체의 고원한 역량을 중시하는 진시는 道와 文은 하나라는 주자학의 문학관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주자학에 입각하여 정신성을 강조하는 백악시단의 진시론은 명대 복고파와 公安派의 진시론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명대 복고파는 天地自然의 소리라는 입장에서 민간의 노래를 진시라고 여겼다. 그래서 복고파는 전범 학습을 통해 진시의 원형을 발견하고, 전범의 創作 原理[法]를 깨우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명대 복고파의 법은 그들이 문학을 구속한다고 여겼던 사상을 떼어버린 결과 修辭 原理로 축소되었고, 法을 절대화할수록 그들의 복고는 형식적, 수사적 복고로 흘러갔다. 明末의 공안파는 복고파의 형식적 복고를 剽竊이라 비판하면서 진시를 주장하였다. 그들은 古今을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논리를 통해 복고파의 복고 당위성을 顚覆하고 작가의 性靈에서 우러나오는 시야말로 진시라고 주장하였다. 공안파의 진시는 陽明左派의 心學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흉중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적 욕망까지도 시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고 여겼다.
폭넓은 독서를 통해 명대 문단의 추이를 通曉하고 있었던 백악시단은 주자학에 입각하여 명대 복고파와 공안파의 문학론을 長短取捨하였다. 백악시단은 명대 복고파처럼 古를 이상적 경지로 상정하면서도, 복고파가 전범에 대한 수사적 재현을 통해 古를 실현하려 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또한 공안파가 제시한 고금의 현실적 차이와 진실한 감정 표현에 대해서는 수긍했지만, 공안파의 眞情이 검속함이 없는 데 이른 것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이렇듯 백악시단의 진시론은 주자학을 토대로 명대 문학론을 통섭함으로써 자득한 시론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백악시단은 진시 창작을 위해 그 핵심시론인 天機論을 본격적으로 제시하였다. 天機는 宋代 도학자들에 의해 성리학의 체계로 흡인된 용어로, 天理의 流行이 발현되는 오묘한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백악시단은 이런 성리학적 천기 관념을 문학론으로 발전시켰다. 백악시단의 천기론은 창작의 필연적 두 계기인 대상과 주체의 측면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백악시단은 대상의 측면에서는 대상에 오묘하게 발현된 천기와 조우하고 그것을 통해 천리를 체인하려 하였고, 주체의 측면에서는 대상의 천기와 조우하고 천리를 체인할 수 있는 주체, 즉 학문과 수양을 통해 천부의 인격 상태에 도달한 주체를 상정하였다. 그리고 천부의 인격 상태에 도달한 주체가 만유와의 교감 속에서 자신의 사유와 정감을 진실하게 드러낸 시를 진시라 하였다. 시론으로서의 천기론은 종래의 성정론과 相合하여 다채로운 창작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로 종래의 성정론이 창작 주체의 측면을 중시한 것에 비해, 천기론은 시적 대상 그 자체의 의의를 한층 강화하였다. 천기론은 대상을 玩物喪志의 경계 대상이 아니라 格物致知의 탐구 대상으로 전환하는 논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백악시단은 대상과의 실제 교감을 통해 대상의 진면목을 포착할 것을 중시하였고, 그것을 통해 시적 대상은 한층 더 핍진한 형상으로 그려질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천기론은 천부의 본연한 마음으로 대상과 교감하고 거기서 발현된 사유나 정감을 꾸밈없이 형상화할 것을 주문함으로써 진솔한 창작을 중시하게 하였다. 세 번째로 천기론은 진실한 창작이 전제되면, 시인 각자의 천기가 작품에 반영된다는 논리를 통해 창작상의 개성을 중시하게 하였다.
백악시단은 이상의 시론을 실제 창작을 통해 구현하였다. 산수를 천기 조우의 장으로 여겼던 백악시단은 열정적인 산수 유람을 통해 산수의 진면목을 형상화함으로써 전대 산수시가 대상 산수 그 자체보다는 산수에서 느낀 작가의 흥취를 위주로 하여 대상 산수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점을 극복하였다. 民生을 형상화한 작품들에서도 백악시단은 시적 대상인 민생의 현장에 한발 더 밀착해 들어갔다. 그렇기에 天民이 고통 받는 현실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형상화를 할 수 있었다. 또한 민생에의 밀착은 전통적 애민시를 벗어나 민생 자체의 형상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를 통해 民의 삶은 질박하지만 정감 있고 자신들의 세계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자생력을 지닌 존재로도 그려질 수 있었다. 한편, 자신들의 일상을 형상화하면서는 處靜한 삶 속에서 대상 경물과의 정신적 소통을 理智的이고 閒雅한 흥취로 담아내었다. 또한 일상의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면서는 누구나 공감하며 울고 웃을 수 있는 진정을 진솔하게 형상화하였다. 백악시단의 진시는 심오한 哲理를 형상화한 것부터 해학적 웃음을 담은 시에 이르기까지 도덕과 예술이 하나의 경지로 고양되는 유가 전통의 심미이상을 추구한 결과였다.
백악시단이 내세운 창작상의 진의 문제는 조선후기를 관통하며 眞과 實을 강조하는 문예론을 선도하였다. 아울러 백악시단은 시학과 창작의 가치를 도학에 버금가게 설정함으로써 교양이나 사교의 수준의 시 창작을 전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대상의 의의를 중요하게 설정했던 천기론은 物性에 대한 더욱 섬세한 고찰과 형상화로 이어졌으며, 민생의 삶을 주목했던 시편들은 민요풍 한시와 이른바 朝鮮詩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백악시단의 진시 창작을 위한 일련의 문학행위는 백악시단이라는 一群의 동인들이 민멸된 시도를 진작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바탕으로 진시 창작을 위한 시론을 정비하고, 부단한 詩作을 통해 창작상의 뚜렷한 성취를 이루었으며, 후배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 조선후기 한시의 쇄신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학운동으로 조명받기에 충분하다. 백악시단의 진시운동은 양란 이후의 동아시아적 정치 환경, 철학과 문학상의 변동에 조응하여 조선의 문인들이 선택한 문학 쇄신의 한 방향이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1664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Ph.D. / Sc.D._국어국문학과)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