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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일본에 대한 지식의 축적과 사고의 전환-朝鮮使行의 記錄類를 중심으로-
Building up of Knowledge about Japan and Conversion in the way of thinking during the Late Choson-A study focusing upon the Travel records of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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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상휘
Advisor
박희병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5-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조선통신사일본무가사회(武家社會)나가사키(長崎)동문의식(同文意識)동문세계(同文世界)계미통신사(癸未通信使)오규 소라이(荻生徂徠)원중거(元重擧)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국문학전공, 2015. 8. 박희병.
Abstract
국문초록

본고는 조선후기에 일본에 대한 지식이 축적ㆍ확대되는 과정 및 일본과의 접촉ㆍ소통이 조선 문인들의 지적 세계에 끼친 변화 양상에 대한 연구이다. 1590년부터 1763년 사이에 일본에 다녀온 조선 사절들의 기록 및 조선 국내의 일본 관련 자료를 통시적으로 검토하여 일본에 대해 어떠한 지식이 추가되고 수정되었는지, 일본에 대한 지식의 확대가 조선 문인들에게 어떠한 사고의 변화를 초래하였는지를 살폈다. 일본 관련 지식의 전반적인 축적과정을 살피기 위해서 검토 영역을 정치, 경제, 기술, 문자, 문학, 문화, 여섯으로 나누었다. 본고의 내용을 각 영역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주제는 정치이다. 사행원들은 군공을 세운 무사(武士)가 토지를 부여받는다는 점, 과거시험이 없고 직업을 세습한다는 점, 도쿠가와 막부가 각지의 영주들을 엄격히 감시하고 있다는 점 등 일본 정치제도에 대해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들은 군사기구에 기반한 정치제도 하에서 평화로운 사회가 유지된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였다. 일본 정치제도에 대한 지식은 강항(姜沆)을 통해 사회개혁을 주장한 조선 지식인들에게 일부 수용되었다.
두 번째 주제는 경제이다. 사행원들은 일본이 상당히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특히 사찰과 저택이 사치스럽다고 보았다. 그들은 사치스러운 풍속에 젖은 일본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반면 검소하고 소박하게 생활하는 일본 백성들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들은 도쿠가와 막부가 주로 직할지에서 얻는 세수입, 광산에서 채취한 금ㆍ은, 해외무역을 통해 얻는 이익을 기반으로 국가재정을 확보하고 있음을 포착하였다. 그리고 나가사키 무역에서 일본이 이익을 얻는 만큼 조선은 경제적 손해를 본다는 인식은 박제가의 해외통상론에 크게 반영되었다.
세 번째 주제는 기술이다. 사행원들은 일본의 기술에 감탄하였다. 특히 일본의 수차, 건축, 선박의 정교한 만듦새를 높이 평가하였다. 일본의 기술에 대한 지식이 확대되자 그 기술을 조선에서도 실용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또 일본에서 기술자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용후생을 주장한 지식인들에게 기술자 양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네 번째 주제는 문자이다. 히라가나ㆍ가타카나ㆍ일본식 한자어에 대한 지식은 갈수록 확대되었으며, 일본의 문자를 사행록에 기록하기도 하였다. 또 일본에서 한문 능통자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당초 승려에 한정되어 있던 필담의 상대가 점차 확대되었다. 그에 따라 사행원들도 일본을 한자ㆍ한문문화권의 일원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또 그들은 일본인이 한문을 훈독법(訓讀法)에 따라 읽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오규 소라이(荻生?徠)가 한문직독법을 제창한 이래 일본인의 한문 구사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보았다.
다섯 번째 주제는 문학이다. 역대 일본 문인 중에서 조선 문인들에게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와 오규 소라이이다. 그들은 이 두 문인을 일본 문학을 선도한 사람으로 보았다. 일본 문인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일본인에 대한 사행원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그들은 일본을 멸시하였던 자신들을 반성하게 되었고 일본 문인들과 우정을 나누기도 하였다. 일본인과의 깊은 교류는 그들과의 문화적 유대감을 낳았으며, 그 유대의식이 일본인과 보편적 윤리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유로 이어졌다.
여섯 번째 주제는 문화이다. 사행원들은 신도ㆍ불교ㆍ신사참배ㆍ귀신숭배 등 일본 고유문화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면서도 신도가 일본인의 일상생활ㆍ사고방식에 깊이 침투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잘 파악하였다. 한편으로 그들은 일본 유학자들과의 교류 및 유교 풍속을 사모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통해 일본이 점차 유교화될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을 유교화함으로써 동아시아에 평화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사고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현실의 일면만을 과대하게 본 결과 생겨난 것으로 일본의 국학자(國學者)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사행원들의 인식과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일본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 초래한 사고의 변화는 세 가지다. 첫째는 일본을 멸시하였던 기존의 인식을 반성하게 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일본의 기술을 조선에 적용하자는 실학적 사유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며, 셋째는 일본과의 평화적 공존을 지향하는 사유가 발생하였다는 점이다. 본고를 통해 일본과의 접촉ㆍ소통이 조선 지식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지를 심층적으로 밝힐 수 있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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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Ph.D. / Sc.D.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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