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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지역주민운동 연구
A study on local residents movement in Korea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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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한상구
Advisor
권태억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3-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주민대회주민운동집합행동공공성유지시민운동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13. 8. 권태억.
Abstract
일제시기 지역주민운동 연구
- 지역 주민대회를 중심으로 -

한상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

3·1운동 이후 도, 부, 군, 읍, 면, 리에 이르기까지 각급 행정단위별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다종다양한 주민 집합행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집합행동 중에서 각급 행정단위 전체 주민의 의사를 결집하고 그것을 실행 또는 관철하는 가장 체계적인 방식으로서 주민대회가 빈번히 열렸다. 지금까지 지역사회에 대한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지만, 이와 같은 주민대회의 상시적인 개최와 그 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192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조선 전 지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크고 작은 지역단위의 주민대회는 지역과 주민의 이해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한 주민들의 적극적 반응과 활동이 집약된 것이다. 주민대회는 지역주민이 식민행정 당국과 외형상으로는 가장 대등하게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주민대회는 지역의 주도적 인물이나 집단이 지역주민과 긴밀하게 결합하는 공간이었다. 총괄하자면, 주민대회는 지역주민 일반과 지역의 주도적 세력, 그리고 식민지 국가권력 삼자가 각기 자신들의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상호간 관계를 형성하고 길항하였던 일종의 살아있는 무대였다.
주민대회는 기본적으로 식민당국과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교섭하는 다중 집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대회의 목표와 과정은 식민당국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제한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주민대회는 합법적 집회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수렴하고 결정하였다. 주민대회는 나아가 그 의사를 실행하는 조직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일들을 연속적으로, 또는 동시에 수행하는 일종의 의결·집행기구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식민당국은 일관되게 지역주민의 모든 행동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였다. 일제는 식민통치 전 기간에 걸쳐 조선인 내지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의사결집이 이루어지는 어떠한 제도적 행정적 절차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식민당국의 기본적인 태도 및 정책과 대비하여 본다면, 비록 주민대회가 식민당국의 허락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식민당국이 허용하는 범위를 뛰어 넘는 것으로서, 식민당국과 대치, 경쟁, 충돌, 저항하고자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주민대회가 1920년대 초반부터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1927년에는 최고조에 달하였다. 이후 점차 줄어드는 과정을 거쳐 전시총동원체제가 가동되는 1936년 이후에는 급속히 소멸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주민대회 발생의 시기적 추이는 전국적인 민족, 사회주의운동의 시기적 소장과 파고와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주민대회는 기본적으로 중소단위 지역주민의 여러 가지 공적 사안에 대한 것으로서 중앙의 민족, 사회주의 운동과 조직적, 인적 연계를 긴밀하게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중앙의 운동과 지역주민 집합행동이 일견 무관한 듯하면서도 경향적으로 일치하는 모습은 지역의 주민대회가 다만 개개 지역의 고유한 사안들에 제한된 지역적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민대회를 일으켰던 각급 지역의 주도집단과 주민들은 지역이라는 소우주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운동과 일제가 싸우고 있는 역동적인 사회공간을 자신들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고 대처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지역주민과 지역의 주도집단이 보여주는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능동적 대처는 1930년대 초중반 이후 일제가 급속히 주민통제정책을 강화하면서 주민대회라는 주민 자발적인 집합행동 형식이 허용되지 않게 되는 부정적인 국면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이 시기 각급 지역에서는 집단민원과 여론조성 사안이 20년대보다 훨씬 큰 폭으로 발생하고 있고 주민대회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각종 기성회 등의 조직이 폭주하고 있으며, 면회, 읍회 등 식민당국이 시행하고 있던 의사(擬似) 주민대의기구에 대해서 1920년대에 주민대회에서 활동하였던 주도집단이 분명, 의도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모습 등이 나타나고 있다.
각급 지역에서 개최된 주민대회의 사안, 즉 지역에서 발생한 공적 사안은 무엇보다도 식민행정당국의 행정행위를 직접 문제 삼고 개입하며 요구하는 식민행정요구비판의 사안이 가장 많았다. 이 사안은 전체 주민대회 사안의 거의 50%를 육박하는 비율을 보인다. 둘째로는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에 대한 발전구상을 구체화 하거나, 지역내 각종 현안에 대해 주민들 스스로의 대처방안을 논의, 결정하는 지역운영발전의 사안이 있었다. 세 번째 비중으로는 일제시기 전기간을 통해 지역사회의 항상적 현안이었던 학교의 설치와 운영에 대한 사안이 있었다. 넷째 사안은 지역단위 내의 현안이 아니라 전국적 또는 사회적 사건, 갈등 및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것으로 사회적 운동사건의 사안이었다. 이들 크게 네 범주의 사안들에는 지역주민의 생활공간의 거의 모든 공적 사항이 망라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사안의 해결과 실행을 위한 주민대회는 바로 그런 이유로 지역주민들의 자치기구로서의 일반성격을 획득하고 있었다.
지역 주민대회는 각급 지역에 존재하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유력한 어떤 특정 집단이 시종일관 주도했다고 볼 수 없다. 주민대회는 기본적으로 다수의 지역주민이 참여함으로써만 기능이 발휘되는 것이었다. 다수 주민의 참여는 특정 집단에 의해 주민들이 동원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 주민대회는 기본적으로 지역의 현안인 공적 사안에 대한 공개적 토론과 의견의 결집이다. 다수이든 소수이든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최종적으로 한 가지 결정이 이루어지는 토론의 공간이 주민대회인 것이다. 주민대회는 참여인원이 나타나 있는 자료로만 본다면 면단위 지역에서는 통상 200~300명이 참여하는데 이는 면단위 성인 남성 인구의 1/10에 해당한다. 주민대회는 대회 성립의 정당성을 보장받기 위하여 참여 인원의 주민 대표성과 대의성을 중시하였다. 이에 따르면 주민대회는 면단위 지역의 10가구의 대표, 대의자 1명이 참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주민대회 의장, 부의장, 간사, 실행위원 등 주민대회의 주도적 인물들의 사회경력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특정 집단의 우월적 주도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각종 인명자료를 통한 주도인물들에 대한 경력을 살펴보면, 주민대회에 참여하는 시점에서 이들 주도자들의 절반 가까이(46%) 식민국가의 공직이나 상공인, 지역활동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주민대회 참여 이후에도 이들 경력을 전혀 획득하고 있는 않은 인물들 비중 또한 약 37%로 결코 적지 않다. 주민대회 주도인물의 최소 1/3이 일견 정치·사회·경제적 유력 인물집단에서 자료상으로는 비켜서 있는 것이다. 경력이 확인된 주민대회 주도자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경력은 바로 지역의 각종 공적 현안에 참여했던 인물들로 약 40%전후를 보이고 있다. 그 다음이 식민당국에 의해 지역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은 면장, 면협의원 등 공직자들로서 20~30%를 차지한다. 동시에 일제에 직접적인 저항을 행했던 민족·사회운동 경력자 또한 10% 중반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지주, 상공인 등 경제력을 갖춘 인물들 또한 10% 전후의 비율을 차지한다. 이를 종합해보자면 주민대회의 주도자들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계층, 집단이 연합, 집결 또는 차출되어 있다는 것이 된다. 운동·이념적으로 본다면 좌와 우, 민족과 비민족, 유산층과 비유산층이 모두 함께 주민대회를 조직하고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지역 현안인 공적 사안에 결합하여 나타나게 되는 연결고리는 바로 현상적으로는 1/3에 달하는 일반 지역주민 일반의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주민대회에 대한 이상의 분석이 찾아낸 측면들, 즉 주민대회가 갖는 전국적 보편성, 중앙적 운동과의 조응성, 집합행동의 형식적 민주성, 참여 및 주도 집단의 계층·계급적 연합성, 대회 개최사안의 사회적 공공성은 일제시기 주민대회가 획득하고 있었던 중대한 의미를 확인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일제시기 지역사회가 현재에도 그 성취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근대적 시민사회의 공공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지난한 시도를 개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일제시기 주민대회는 현재의 시민사회 공공성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그 역사·사회적 소환이 요청되는 한반도 거주 주민들의 역사·사회적 실천과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키워드 : 주민대회, 주민운동, 집합행동, 공공성, 유지, 시민운동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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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History (국사학과)Theses (Ph.D. / Sc.D._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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