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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祖代 초반의 정국과 栗谷 李珥의 개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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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경래
Advisor
김인걸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5-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栗谷李珥三代之治變通更張流俗士類東湖問答萬言封事聖學輯要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15. 2. 김인걸.
Abstract
이 글은 이이의 개혁론에 대한 기존의 해석에 사후적 맥락과 필요성이 강하게 투영되었다는 문제의식 하에, 이이 당대의 역사적 맥락과 본인의 문제의식에 보다 천착함으로써 그것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東湖問答」‧「萬言封事」‧「聖學輯要」 등 이이가 중요한 정국 국면마다 자신이 구상하는 개혁의 이론과 정책을 담아 제출한 저술들을 분석하였다. 이들 저술은 이이의 여러 글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이론적 성격이 강하며, 또 그런 만큼 그의 개혁론의 전모를 드러내는 글이기도 하다.
이 세 저술은 바람직한 경세 질서에 대한 이이의 보편적 전망을 담고 있는 동시에, 그가 처한 구체적 정치 현실에 대한 실천적 대응 차원에서 개진되었다. 그리하여 이이가 어떠한 정국 상황에서 이를 제출하였는지, 그가 자신과 다른 어떤 입장과 세력을 의식하였으며, 왜 그들과 갈등하였는지, 그리고 무슨 의도를 가지고 글을 구성하였는지를 글의 이해를 위한 필수 배경으로 검토하였다. 지금까지 이이의 개혁 이론에 대한 연구를 주로 제출하였던 철학계·사회과학계의 연구가 이를 내재적으로만 설명한 것과 달리, 이 연구는 당대의 구체적 정국상황 속에서 설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으로 차별성을 띤다.
이이의 개혁론은 자신과 다른 두 가지 정치적 입장‧세력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가운데 제출된 것이었다. 이이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三代之治를 할 수 없다’는 자들, 그리고 ‘삼대지치를 하루아침에 할 수 있다’는 자들과의 갈등이자 충돌이었다. 전자는 명종대 내내 조정에서 관직 경력을 쌓아 명종대 말에는 대신급 지위에 올랐고, 그 상태가 선조 즉위 후까지 계속된 舊臣들을 지칭하였다. 후자는 이이의 후배 사류들로서 주로 이황과 조식의 제자들이 주축이었다. 그러나 이이는 전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적대하는 태도를 보인 반면, 후자에 대해서는 정치적 동료로 받아들였다.
이이는 稅制 개혁, 관료제 개혁, 왕실 典禮 문제를 둘러싸고 구신들과 갈등하자, 그들을 말로는 삼대지치의 구현을 얘기하지만 실상은 그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실천 의지가 없는 자들로 치부하였다. 그가 「經筵日記」에서 구신들을 세속적인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 ‘流俗’이라 비난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한편 후배 사류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목표 설정은 옳지만 전략적 고려가 부족하다고 비판하였다. 그들의 전략 부재는 현실에서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결국 조선에서 삼대지치의 구현이라는 목표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이이의 판단이었다.
한편, 이이의 개혁론과 관련하여 기존에는 제도 변통론, 사림 화합론, 조선적 특질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이의 개혁론에서 도덕과 주체로서 인간, ‘류속’ 舊臣들에 대한 배척 태도, 중화주의의 추구라는 면모를 함께 파악함으로써, 위의 일반적 규정들이 실상은 이이의 개혁론에서 보다 큰 목표와 기획을 위한 과정이자 부분임을 규명하였다. 즉, 조광조와 기묘사림 이래 16세기 조선의 개혁세력이 추구했던 군주로부터 일반 민까지를 포괄한 ‘全一的 도덕국가’의 지향을, 이이 역시 개혁의 최종 목표로서 공유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민생의 안정과 왕실의 도덕적 모범, 무엇보다 자신이 정치적 동료라고 인식한 ‘사류’의 정치적 집권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들이 그의 개혁 구상에서 다른 사류들의 기획과 다른 특징적 면모를 형성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민의 교화를 위한 鄕約의 국가적 시행이 결정되었을 때 오히려 이를 반대하였고, 사림이 東人과 西人으로 분열되자 ‘류속’ 구신에 의한 정치적 탄압을 경계하며 사림 화합론을 주창하였다.
이이의 개혁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16세기에 소위 ‘사림파’에 의해 추진된 개혁의 의미‧주체‧방향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한다. 즉, 기존의 사림파 이론이 이를 모두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설명했던 것과는 다른 대안적 설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연구에 의하면, 16세기 조선의 개혁적 지식인들은 中小地主가 아니라 ‘중화문명’을 보다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당대 조선의 제 모순을 해결하려 한 문화보편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士族 주도의 자율적 향촌 질서의 확립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는 이이의 경우와 같이 집권 세력의 교체와 국가 체제의 변화를 중시하는 흐름도 있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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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History (국사학과)Theses (Ph.D. / Sc.D._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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