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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氏源流』와 중국과 한국의 불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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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영종
Advisor
이주형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Issue Date
2016-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석씨원류석보성불전도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학전공, 2016. 2. 이주형.
Abstract
초록

『釋氏源流』는 明 永樂20년(1422) 釋寶成의 주도 하에 편찬, 洪熙원년(1425)에 처음 간행된 이후 명대에만 일곱 종의 판본이 만들어진 베스트 셀러였다. 보성은 이 책의 편찬 목적을 불교를 쉽게 이해시키고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지 천 년이 지난 시점에 弘法을 위해서 석가모니 붓다의 전기를 선택한 데는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홍무연간부터 영락연간까지 이어진 정부의 불교 억압책에 대한 대응이었을 가능성이다. 永樂16년(1418) 十年一度의 강화된 도첩제 실시의 이유 중 하나가 승려들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석씨원류』는 석존의 전기뿐만 아니라 중국 불교사의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교재로서 적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명대에 삽화가 실린 소설이 유행한 점을 감안하면 『석씨원류』처럼 쉬운 불교 이야기 책은 시대의 요구이며 시대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판화가 삽입된 『석씨원류』는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했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보물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원에 佛傳만 그리는 것이 아니므로 불전도본이 만들어졌다고 당장 그림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전통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 ․ 청대 불전도의 전개 양상을 보면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황실과 관련된 사원과 그 영향권에 있는 사원에 그려진 불전도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지역에서 민간 화가에 의해 그려진 불전도이다. 전자는 숭선사, 구담사, 묘인사, 감은사, 다복사 등으로 『석씨원류』의 영향은 거의 없다. 반면 각원사, 융흥사, 진국사, 극락사 등의 벽화에서는 『석씨원류』가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각원사는 『석씨원류』 1-2권의 내용이 고스란히 벽화로 그려진 대표적인 사원이다. 그런 만큼 그 간의 연구에서도 쟁점이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각원사 벽화를 모본과 정확하게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대흥륭사본의 번각본인 선운사본을 통해 그간의 쟁점을 정리하였다. 즉 첫째, 각원사 벽화의 모본은 대흥륭사본 또는 그것의 모본인 정통본이다. 둘째, 상권의 208화제 중 권두의 釋迦垂迹, 203 十代明王, 204 護法諸天 세 장면을 그리지 않은 이유는 세 항목이 대웅전에 봉안된 불상들과 상응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셋째, 『석씨원류』의 첫 장면인 釋迦垂迹은 경전을 인용하지 않았고, 변상도와 같은 성격의 항목이므로 각원사 벽화에서는 그것을 빼고 두 번째 장면 最初因地를 맨 처음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석씨원류』는 한국의 불전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 전기에는 『석씨원류』보다 20여 년 뒤에 만들어진 『釋譜詳節』(1447)이 편찬 목적이나 우리나라 불전도에 끼친 영향이 『석씨원류』와 유사하며, 17세기말까지 조선시대 불전도 도상의 전거가 되었다. 17세기 중반 국내에는 두 종의 『석씨원류』가 전해졌다. 성화본을 모본으로 한 불암사본과 대흥륭사본을 모본으로 한 선운사본으로, 전자는 1673년, 후자는 1711년에 처음 간행되었다. 간행된 이후 우리나라 불전도를 대표하는 팔상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즉 『석씨원류』에 수록된 다양한 도상들이 팔상도에 취사선택된 것이다. 『석보상절(또는 월인석보)』 팔상 판화의 기본적인 틀은 고수하되, 거기에 표현되었던 석존의 일화보다 더 많은 장면이 추가된 새로운 팔상도가 등장하였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청대 불전 벽화와 유사한 화면분할형 팔상도와 淸本 『석가여래응화사적』의 영향을 받은 팔상도가 그려지기도 했다. 한편 통도사 영산전에는 팔상도의 도상과 전혀 중복되지 않은 『석씨원류』의 48 항목을 벽에 그린 〈석씨원류도〉가 그려졌는데, 중국 승려들의 일화까지 그려 중국의 〈석씨원류도〉와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게다가 비록 『석씨원류』의 판화 도상을 채용했지만 양식화된 판화의 도상을 화가의 재해석 과정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였다.
이처럼 중국과 한국의 불전도는 유사한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도 나름대로 독자적인 특징을 가지고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석씨원류』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중국과 한국의 『석씨원류』 관련 불전도의 명칭을 〈석씨원류도〉로 명명하고, 또한 명대 만력본 이전의 『석씨원류』를 번각한 것은 『석씨원류응화사적』이라는 표제보다 『석씨원류』로 통일하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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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어 : 석씨원류 석씨원류응화사적 영산전 팔상도 보성
석보상절
학 번 : 96116-852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1752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rchaeology and Art History (고고미술사학과)Theses (Ph.D. / Sc.D._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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