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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서양마취술 도입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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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규원
Advisor
황상익
Major
의과대학 의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마취클로로포름하나오카 세이슈마불산근대화서양의학 도입사토 스스무군진의학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의학과, 2017. 2. 황상익.
Abstract
19세기 중반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의 전신마취 작용이 밝혀지면서 시작된 서양마취술은 근대의학의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해왔고, 단기간에 근대국가로 탈바꿈한 일본도 서양마취술을 도입하며 의학 근대화의 내실을 다졌다. 그런데 일본에는 하나오카 세이슈라는 인물이 서양에 40여 년 앞서 전신마취를 이용한 수술에 성공한 독특한 역사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19세기 일본에서 하나오카류 마취술과 서양마취술이 변천하고 명멸한 궤적을 체계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일본의 의학적 근대화의 한 단면을 드러내려고 한다.
1804년, 하나오카 세이슈는 자신이 개발한 내복용 전신마취제 마불산을 이용하여 세계 최초로 전신마취 수술에 성공했다. 그의 마취술은 외과수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히며 일본 각지로 계승 및 발전되어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메이지 신정부가 주도하는 독일의학의 도입기와 맞물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방의학에 기반을 둔 그의 마취술은 개방성과 공공성을 지향하는 풍토에 어울리지 않았다.
서양마취술은 1846년 미국 보스턴에서 모튼과 워런이 에테르 흡입을 이용한 수술을 공개적으로 시행하고 이듬해인 1847년 영국 에든버러의 심슨이 클로로포름 흡입 마취를 보고함으로써 개시되었다. 일본에는 1848년에 클로로포름 마취, 1850년에 에테르 마취의 정보가 전해졌고, 1861년부터는 일본인에 의한 클로로포름 마취가 실시되었다. 클로로포름 마취술은 특히 보신전쟁에서 활약한 영국인 의사 윌리스에 의해 널리 알려졌고, 독일인 교수의 대학동교 부임과 베를린에 유학한 사토 스스무의 귀국, 그리고 세이난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정착기에 접어들었다. 정부요인의 치료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문학작품에도 반영되면서 서양마취술에 대한 인식은 사회 깊숙이 침투해갔다.
19세기 후반, 클로로포름 마취의 위험성이 문제시되어 에테르 마취의 비중이 높아지던 서양과 달리, 일본에서는 에테르 마취가 경시되고 클로로포름 일색의 마취가 이루어지는 경향에 변함이 없었다. 그 배경에는 군진의학의 논리가 의료계 전반으로 침투하는 군국주의 및 전체주의적 국가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에 전래된 서양마취술은 19세기 초 가장 앞섰던 일본 고유의 마취술을 대체하며 의학적 근대화를 이끌면서도 한편으로는 세계적 추세에서 고립되어갔다. 지금까지 일본의 의학적 근대화 과정은 주로 선형적인 발전 모델, 혹은 좌절 없는 성공사례로서 파악되고 논의되어왔지만, 일본의 마취과학사는 분과사적 의미를 넘어 단절과 굴곡으로 점철된 근대화의 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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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Medicine/School of Medicine (의과대학/대학원)Dept. of Medicine (의학과)Theses (Ph.D. / Sc.D._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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