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조선전기 사대부 금악(琴樂) 연구
A study on the Literati(士大夫) Geumak(琴樂) in the early of Joseon Dynasty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윤영해
Advisor
김우진
Major
음악대학 협동과정음악학
Issue Date
2015-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조선전기사대부(士大夫)금악(琴樂)금조(琴操)금가(琴歌)만대엽(慢大葉)북전(北殿)금기서화(琴棋書畵)육예(六藝)사예(四藝)대엽류 악곡문인 탄금거문고(琴)낙시조(樂時調)여음(餘音)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협동과정음악학, 2015. 2. 김우진.
Abstract
한국음악사에서 거문고 음악이 차지하는 의미는 특별하다. 조선전기 거문고는 사대부의 자기수양을 위한 악기로서, 유교의 정악을 구현하는 악기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사대부의 음악연주문화는 금론(琴論)이라는 논의로 발전하였고, 이에 관한 기왕의 연구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는 그 철학 ․ 사상적 배경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어 있어서 실제 조선전기 사대부의 금악(琴樂) 연행 양상이나 그들이 추구하였던 음악적 이상이 무엇이었는가, 그러한 이상이 금악으로 어떻게 구현되었는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사대부들의 악기 연주 전통에 대해 개인 문집과 사서(史書), 악보의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보고, 그 연행 양상이 조선전기에 악론의 수기적 실천과 관련하여 금악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연구하였다.
먼저 조선전기의 사대부들이 자기 수양의 악기로 거문고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 그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고려조 문인들의 탄금문화의 양상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려조 문인들의 탄금문화는 음악적 교양으로서 기예적 측면을 강조한 경향이 있었다. 기예적 측면을 강조한 고려조 문인들의 탄금문화는 바둑두기, 활쏘기와 같은 주례(周禮)의 육예(六藝)전통에서 강조하던 기예(技藝)의 일환으로 인식되었으며 고려 말에는 금·기·서·화라는 문예적 기예를 강조한 사예(四藝)의 전통으로 정착되었다.
한편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는 주자학의 도입과 함께 유교적 성정함양을 위한 군자의 악기라는 논리가 강조된 탄금 문화가 대두되었다. 유교적 성정함양의 측면을 강조한 탄금문화에서는 탄금에 사용되는 악기를 유금(儒琴)이라고 칭하며 기존의 기예적 탄금에서 언급하였던 금(琴)이라는 악기와 구분을 지으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고려문인들이 탄금에 사용한 악기는 가야금, 거문고였으며 이상적인 악기로 오현금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으로 볼 때 고려문인들은 탄금이라는 금을 연주하는 행위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여 금(琴)이라는 악기의 구체적인 실체에 대하여 한정짓지 않고 탄금 문화를 향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전기에는 유교가 국가의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조선 초기 국가 의례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정비하는 과정에서도 유교에 입각한 악론이 형성되었고, 이는 사대부들의 개인적인 음악향유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고려조의 기예로서 탄금을 인식한 경향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되기 시작되어 사대부의 탄금 행위 자체가 부정되기도 하였으나, 박연과 같이 유교 악론에 정통하였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유교 악론에 적합한 사대부 탄금의 중요성이 거론되었다. 사대부들이 탄금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탄금의 실천에 대한 실제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15세기 후반 사대부들이 탄금을 위해 중국의 오현금이나 칠현금을 대체할 수 있는 거문고를 선택하게 되는 논리가 정립되었고 이는 거문고가 사대부들의 탄금을 위한 악기로서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16세기부터는 사대부들에게 군자의 악기로서, 유교 악론의 수기적 실천 수단으로써 거문고 연주가 확산되고, 사대부들의 학금 입문용 거문고 악보 『금합자보』, 『양금신보』, 『현금동문류기』가 연이어 편찬되었다.
사대부들의 거문고 연주 문화 확산과 함께 거문고 음악 즉, 금악(琴樂)에 대한 모색과정도 진행되었다. 16세기에는 사대부들의 거문고 악보편찬과 함께 금악의 레퍼토리가 형성되었다. 16세기 사대부들이 중요한 거문고 연주 악곡으로 인식한 것은 과 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표방하였던 금악(琴樂)이 시를 노래하는 금조(琴操)를 우선적으로 추구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대부들이 당대의 중요한 시의 형식으로 인식하였던 4음보 3행의 시조형 국문시가를 거문고 연주곡의 중요한 음악형태로 인식하였고, 이와 같은 시형을 노래하는 악곡을 거문고 음악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전기 금악의 음악적 특징 변화를 살펴보면 사대부들이 금악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던 이상의 실현은 과 같은 대엽류 악곡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시가를 노래하는 형식이 거문고 음악의 중요한 형태로 수용되면서 조선 전기 금악에 있어서 시가 악곡을 위한 음악 형식 용어가 중요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시가 선율이 종료한 후 거문고 후주 선율을 의미하는 여음이라는 용어, 시가를 노래하는 음악의 악조를 뜻하는 낙시조라는 용어를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용어들이 당시 사대부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고 금악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조선전기의 악곡 을 통해 확인된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235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Music (음악대학)Music ( 협동과정-음악학전공 )Theses (Ph.D. / Sc.D._협동과정 음악학)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