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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균관의 악교(樂敎) 양상 : An aspect on the Seonggyungwan(成均館) Akgyo(樂敎)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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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정일영

Advisor
김우진
Major
음악대학 협동과정음악학
Issue Date
2015-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성균관(成均館)성균지법(成均之法)악교(樂敎)악정(樂正)학악(學樂)시악(詩樂)석전의례(釋奠儀禮)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협동과정음악학 한국음악학전공, 2015. 8. 김우진.
Abstract
국문초록

본 연구는 조선시대 성균관에서 '악(樂)'과 관련된 교육 활동의 목표, 교육 내용, 교육 방법 및 의례에서의 악의 활용 등이 음악사적?교육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조선시대 음악 문화 형성 및 발전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것에 그 목적을 두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성균관의 교육 제도, 유생들의 생활과 문화, 석전대제를 비롯한 의례의 분석 등과 같이 성균관의 교육 활동 및 제도사적 특성에 대한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 많았다. 또한 유가의 악론에 대한 연구에서는 유가의 악론이 예악사상에서 갖는 의미를 구명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거문고를 중심으로 사대부들의 악론(樂論), 금론(琴論), 금학(琴樂) 등에 관한 논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중국과 고려 시대의 태학(太學)에서의 악교의 변천 과정 및 조선시대 성균관의 악(樂)에 관한 교육 및 악을 통한 교육적 효과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많지 않았다. 이와 같은 연구 경향으로 인하여 조선시대 성균관 교육의 실체에 대한 성격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선진유가 및 주자학자들의 악교(樂敎)에 대한 사상이 교육 기관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성균관에서 악교의 양상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검토를 통하여 예악을 통한 통치를 기본 철학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교육 기관에서의 악교에 대한 양상을 고찰해 보았다. 본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균은 고대 주대(周代)의 5개 대학 중 음악을 담당하는 학교의 이름이었으며, 악교를 통하여 인간의 품성을 조화시켜 덕(德)을 키우는 교육을 하던 곳이었다. 성균에서는 대사악(大司樂)이나 악정(樂正)이 교육을 담당하였는데, 교육의 내용은 덕(德), 어(語), 무(舞)의 세 가지 요소가 두루 갖추어진 것이었다. 대사악이 관장하였던 성균지법은 악교를 가리키는 용어였으며, 이를 통해 추구하였던 교육의 목표는 천인합일의 화(和)의 모습이었다. 주대의 예악을 이상(理想)으로 삼았던 선진유가와 주자학자들은 악교와 관련된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였는데, 이들의 사상은 성균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 성균관 악교의 특성은 악을 통하여 수기(修己)에 해당하는 개인적인 수양과 도덕적 완성을 이루는 것이었다. 또한 화(和)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치인(治人)의 정신이 담겨 있는 다양한 의례에서 악을 활용하여 백성들을 교화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실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중국 태학(太學)에서 악교는 시대적인 변천이 있었으며, 그 변화의 원인은 교육과정이 경전 중심으로 변화된 데에 있었다. 중국의 태학에서는 시(詩)에 대한 교육, 석전을 통한 악(樂)의 활용과 같은 방법으로 악교가 이루어졌지만, 주나라의 경우처럼 악기의 연주나 가창 등의 실기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단, 송나라의 호원(胡瑗)은 태학에서 시와 노래의 교육, 아악에 대한 교육과 같은 실제적인 시악(詩樂) 교육을 실행하기도 하였다. 중국 태학에서 악교의 약화는 고려의 국자감과 조선시대의 성균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려말의 주자학 전파, 성균관에서 악학(樂學)의 분리, 경전 중심의 과거 제도 등은 성균관의 악교를 약화시키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성균관에서는 악교가 시행되었으며, 성균관 교육 활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셋째, 조선시대 성균관의 교육과정에서 악교가 많이 약화된 편이지만, 악에 관한 교육 활동은 실제적으로 행하여 졌으며 조선의 예악 정치 실현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성균관에서 악교의 목표가 되었던 것은 건국초기에 의례를 위한 악장의 창작, 악을 통한 수신, 악을 활용한 올바른 정치의 실현 등이었다. 성균관의 유생들과 교관들은 예악의 정비를 위해 주나라를 포함하는 삼대(三代)의 악교를 지향점으로 삼았다. 그런데 성균관의 악교의 활성화를 위한 국왕들의 인식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성균관에서 악교는 악기의 연주, 가창, 일무(佾舞)의 학습과 같은 형태로는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성균관에서 악에 관한 교육이 이와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었던 까닭은 성균관이 관리를 양성하고 과거에 대한 준비가 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악과 관련된 교육에서는 실기보다는 악에 관한 기초적인 소양을 쌓거나 이론적인 학습을 하면 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시대 악정(또는 司藝)은 주나라의 악정과 비교하면 그 역할과 소임에 다소 변화가 있었다는 것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악정(사예)은 성균관에서 교관으로서 인재의 양성과 함께 우수한 인재를 천거하는 일을 하였으며, 성균관과 관련된 의례 및 악을 관장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넷째, 성균관에서 지향하였던 악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시(詩)와 악서(樂書) 등에 대한 교육, 악을 통한 수신(修身)?풍류 등과 같은 다양한 교육활동이 있었다. 성균관의 학악(學樂)에 대한 양상은 악에 관한 연구와 토론을 통하여 악론의 학습, 시를 노래로 부르는 시창,『악기』,『율려신서』와 같은 악서 및『시경』에 대한 교육, 재고(齋鼓)를 통한 방법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성균관의 악교는 악을 통한 정신적 수양 및 '악'에 대한 소양을 쌓아가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성종조에 성균관에서 있었던 회례연을 위해 창작된 새로운 악장인 경운곡을 한림별곡에, 배천곡을 오륜가의 경기체가에 얹어 부르는 가창 교육이나, 정조 임금 대에 주자의 시를 노래로 부르며 익히는 시악(詩樂)의 교육을 통하여 성균관의 악교를 진흥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악교의 활동들은 조선시대의 아악의 제정 및 제례악의 정비, 악서 편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성균관에서 악을 통한 수신과 풍류 활동은 시회(詩會), 악회(樂會)와 같은 모임을 추구하는 문화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다. 따라서 성균관에서 이루어졌던 악교는 조선 시대 사대부 음악 문화를 형성하고 향유하는 시발점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다섯째, 유생들은 성균관의 다양한 의례와 행사에 참여하여 악의 의미를 마음속에 내면화할 수 있었다. 석전대제, 대사례(향사례), 양로례, 향음주례, 강학례와 같은 성균관과 향교에서의 의례들은 형식적인 면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덕(德)을 베풀고 키워주기 위한 화합의 자리였다. 이는 성균관이라는 장소가 단순히 경전을 익히고 과거를 준비하는 장소가 아니라 백성들의 교화를 위한 장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성균관의 의례에서 악의 쓰임은 가?무?악이 조화를 이루어 형상화되었다. 마음의 뜻을 표현하는 노랫말인 시(詩)는 정성스러운 마음의 자세를 나타내므로 성(誠)으로, 성현에 대한 존경하는 내용을 공경의 마음에 담아 공손한 태도와 경건한 형상을 이루게 하여 밖으로 표출하는 무(舞)는 경(敬)으로, 노래와 함께 추어지는 춤이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연행되면서 의례가 추구하는 바를 완성시키고 조화시키는 악(樂)은 화(和)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교화의 중심에는 악의 쓰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악교가 전승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조선시대의 성균관에서는 악교가 실시되어 유생들에게 악에 대한 소양을 길러줄 수 있었으며, 유가의 악론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의례를 통하여 사회적인 교화의 역할도 하였다. '악'은 '예'와 함께 조선이 추구하였던 이상 정치의 실현을 위한 기초였으므로, 악이 결여되어서는 조선의 정치와 교육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성균관의 악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 논문에서는 성균관에서 추구하는 전인적이고 조화로운 인재의 양성을 위해 악교가 예와 함께 병행되어 실시되었음을 고찰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조선 시대 교육기관에서 실시되었던 악교의 양상에 대해 구명한 것이 이 연구가 이룩한 성과라고 할 만하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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