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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과학 논쟁'의 성격과 구조 -민군 합동조사단(JIG)의 증거와 실행에 대한 논쟁을 중심으로- : The Nature and Structure of "Scientific Debates" over the Sinking of ROKS Cheonan -Focusing on the Debates around the Civilian-Military Joint Investigation Group's Evidence and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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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오철우

Advisor
홍성욱
Major
자연과학대학 협동과정 과학사및과학철학전공
Issue Date
2016-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천안함 침몰 사건증거과학적 조사법과학과학 실행분단체제민주주의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 2016. 2. 홍성욱.
Abstract
2010년 3월 26일 밤 서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 PCC-772 천안이 침몰해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한 사건이 발생했다. 곧바로 규명되지 않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은 한국 사회 안팎에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방부는 4월 초에 다국적 민군 합동조사단(합조단, JIG)을 구성해 침몰 원인 조사에 나섰으며,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피격돼 침몰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합조단은 그 결론의 근거로 사건 해역에서 수거한 어뢰 추진동력장치 부품, 그리고 선체 파손 형상에 대한 분석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결과, 어뢰와 선체 그리고 모의폭발 실험에서 채집한 백색 흡착물질 등을 주요 증거물로서 제시했다. 특히 1번이라는 손글씨가 쓰인 어뢰 부품은 합조단 정보파트가 입수한 북한산 무기의 설계도면과 일치한다는 점에 근거해 북한 어뢰의 공격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되었으며, 흡착물질의 분석 데이터는 그 어뢰가 침몰을 일으킨 어뢰임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로서 제시되었다. 그러나 과학적 조사와 결정적 증거는 기대와는 달리 논란을 종결하지는 못했다. 합조단이 제시한 증거물의 신빙성과 사건 연관성을 둘러싸고 논란은 계속되었으며, 논란은 해소되지 않은 채 한국 사회에서 깊은 사회 갈등의 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남북 분단체제의 한국사회에서 크나큰 정치적,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국제 사회에서 외교적인 파장으로 이어졌다.
이 논문은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정치적, 사회적, 국제적인 여러 논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증거 논쟁 또는 과학 논쟁을 따로 떼어내어, 그것을 합조단의 보고서와 조사 활동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과학적인 것은 천안함 침몰 원인 논쟁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합조단은 최종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과학적 조사를 강조하여, 분석 장비와 데이터, 계산, 방정식, 이론, 해석, 컴퓨터 시뮬레이션 영상물과 같은 과학적인 요소를 매우 많은 분량으로 담았다. 합조단 조사 결과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사용하여 과학적 반박을 제시했다. 사회적 논쟁에서 과학자들이 유사재현 실험을 자발적으로 벌이거나 증거물 시료와 지진파 데이터를 분석해 전문적인 과학 연구 논문을 과학저널에 발표하면서 논쟁이 전개된 사례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해 과학저널에 발표된 논문은 2015년 초 현재 10편가량에 달했다.
천안함 과학 논쟁은 거시-미시적 요인과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한국 사회라는 국지적 맥락에서 전개되었다. 논문은 제2장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가 나오기까지 논쟁의 전개를 살펴보았다. 별다른 증거가 없는 초기에도 사건 원인을 둘러싼 시나리오 경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특히 보수 성향의 언론매체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익명의 취재원을 중심으로 북한 어뢰 폭발설이 사건 초기부터 유력하게 등장했음을 볼 수 있었다. 과학적 조사가 강조되었으나 그것은 남북 대치와 분단체제라는 현실 조건이 강조되는 군사적 판단과 정치적 고려의 울타리 안에 놓여 있었다. 여러 갈래의 증거 논쟁에서 엿볼 수 있었듯이 천안함 과학 논쟁에서 과학적인 것은 진실을 드러내는 강력한 지식의 권위로서 강조되었다.
이 논문은 시나리오가 아니라 증거에 집중함으로써 합조단이 제시한 증거, 또는 과학적 사실의 블랙박스(black box)가 어떤 구조로 구성되었는지를 들여다보고자 시도했다. 과학 논쟁은 블랙박스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합조단의 증거물을 중심으로 전개된 논쟁의 성격과 구조를 이해하고자, 이 논문에서는 증거물을 라투르가 말한 비인간 행위자로서 주목하면서 그것들이 인간 행위자와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으며, 그럼으로써 논쟁을 인간 행위자 간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통찰을 얻고자 했다. 논문은 과학적 조사 보고서인 합조단의 『천안함 피격 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중심 텍스트로 삼고, 또한 당시 조사위원들의 인터뷰 또는 법정 증언 내용, 그리고 논쟁 당사자들에 대한 인터뷰 내용, 국방부의 기자회견 자료와 속기록, 공개된 미 해군 조사팀장의 서신 자료 등을 분석하여 이런 구성의 과정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 논문에서는 또한 천안함 침몰 사건을 둘러싼 거시적 공간의 논쟁에서 과학적인 것이 그 논쟁의 성격과 구조를 형성하는 데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초점을 두어 논쟁을 이해하고자 했다. 합조단의 과학 활동으로서, 채증과 선별, 증거물 분석, 데이터 산출과 해석, 방법론의 적용, 결과물의 발표와 논증, 반론에 대한 대응과 토론과 같은 법과학과 일상적 과학 활동의 요소들은 논문에서 주요한 관찰과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이 논문은 제3-6장에서 증거물 중심의 쟁점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과학 논쟁의 주요한 주제로서, 그리고 북한 어뢰의 공격이라는 합조단 결론의 근거가 된 중요한 증거물로서, 첫째 파손 선체의 형상과 그것을 구현하는 시뮬레이션 작업을 둘러싼 논쟁, 둘째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어뢰 추진동력장치를 둘러싼 논쟁, 셋째 천안함이 어뢰 추진동력장치의 폭발에 의해 침몰했음을 입증하는 흡착물질의 분석 데이터를 둘러싼 논쟁, 넷째 수중폭발 사건을 해석하는 관측 데이터로서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둘러싼 논쟁을 각각 다루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이 논문은 먼저 천안함 과학 논쟁이 증거물별로 서로 다른 전문 분야의 분과적 성격을 지니며 전개됐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각적으로 가장 강한 증거물로서 제시한 천안함 선체의 파손 형상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시뮬레이션의 표상이 실제 상황을 충분히 근사적으로 보여주었는지, 결과의 발표에서 시각적 효과는 적절히 사용되었는지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번 어뢰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요소를 지닌 복잡한 증거물인 1번 어뢰는 결정적 증거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논쟁적 증거와 의문을 낳으면서 결정적 증거에 걸맞은 충분한 검증이 사전에 이루어졌는지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흡착물질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실험실 내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과학 실행에 비추어 합조단의 조사 과정이 적절했느냐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폭발량과 폭발수심 추론의 출발점이 되는 버블 주기 값을 구할 때에 기존의 지진파의 방법론이 배제되고 선행연구의 전거가 없는 공중음파의 방법론이 선택된 것은 과학 실행에서 방법론의 정당화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논문에서는, 천안함 침몰 원인이라는 문제풀이 과제의 복잡성에 비추어, 또한 법정에서 요구되는 증거 요건의 엄격성에 비추어 볼 때, 합조단이 적합한 전문가 인적 자원을 활용했는지, 과학적 조사 활동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서 실행되었는지, 그리고 실행 표준 또는 암묵지로 정착한 실험실의 과학 실행과 방법론을 좇아 이루어졌느냐가 중요한 관심사로 다루어졌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합조단이 설명되지 않은 증거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 과학 실행과 방법론에 대한 정당화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런 점들이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배경이자 요인이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불충분한 설명과 불안정한 정당화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조사의 기성물로서 제시된 합조단의 블랙박스는 어떻게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이 논문은 일상적 과학 활동이나 법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과학 실행 논쟁, 또는 증거 논쟁이 한국 사회에서 활발히 이뤄지지 않은 데에 어떠한 요인이 작용했을지를 탐색하고자 했다. 여기에서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으로서 분단체제 이데올로기, 국가안보 프레임, 그리고 군사기밀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군사적인 요소가 과학 논쟁에 상당한 정도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살펴보았으며, 이런 요소들이 과학적 사실의 블랙박스를 에워싸면서 그로 나아가는 잠재적 논쟁 참여자의 접근을 막는 일종의 블랙박스의 보호 외투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주로 제7장과 8장에서 다루었다.
이 논문은 과학과 기술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로 논의되는 민주주의의 문제가 대형 사건과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공적 조사기구의 구성과 그 법과학적 결과물의 객관성과 관련한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음을 주장했다. 과학적 사실의 객관성은 과학 실행 그 자체의 결과물에서 곧바로 나오지 않으며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인 연구와 토론을 거쳐 합의와 동의를 획득하는 과정을 통해 누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과학 논쟁은 한 사회에 민감하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과 사고의 처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학적 조사, 조직적 판단, 정치-사회적 관심/고려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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