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1907년 베트남 東京義塾의 교육·계몽활동과 국민 양성론
Education and Enlightenment Activities for Cultivating Nations by Dong Kinh Free School in Vietnam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채푸르니
Advisor
유용태
Major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Issue Date
2016-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동경의숙문명화국민 양성여성 국민양성온고지신등고총보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교육과 역사 전공, 2016. 2. 유용태.
Abstract
본고는 베트남 東京義塾 관계자들이 남긴 1차 자료에 의거해 그들의 교육·계몽활동을 국민 양성론에 초점을 두고 고찰하였다. 이 때 근대국가의 국민자격과 여성국민에 관한 논의에서 당시인들이 온고지신의 자세를 취한 점에 유의하였다.
동경의숙은 1907년 하노이에 세워진 북부 지방 최초의 근대식 민립 교육기관으로, 9개월 만에 식민당국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구국을 위한 베트남인의 근대적 교육·계몽활동의 선구로서 큰 영향을 남겼다.
동경의숙은 민지를 확장하여 서구식 국민국가를 건설한다는 교육 목적 아래 활발한 교육활동을 벌였다. 교사들은 교과서 편찬에 직접 간여하였고, 학생들은 전통 학문과 근대 학문을 모두 수학했다. 교내 수업활동 이외에도 신문을 발행하고, 신서번역모임을 갖고, 연설회를 여는 등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활발한 계몽활동을 벌였다. 동경의숙은 기존의 한자로 발행되던 신문을 인수하여 『등고총보』로 제호를 바꾸고 국어와 한문을 병기해서 발행하였다.
동경의숙 교과서와 신문에는 문명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과 근대국가 구상이 드러나 있다. 동경의숙 구성원들은 새롭게 건설할 근대 국민국가의 국가체제로 입헌군주제를 목표로 삼았다. 기존의 베트남 왕조를 그대로 인정하여 군주를 애국의 대상으로 보면서도 입헌군주제로의 체제 변화를 주장한 것이다. 명목상이나마 응우옌 왕조와 그 행정기구가 남아 있었고, 군주제 전통이 강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확한 정치 계획이나 모델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는 초기 내셔널리즘이 중국이나 조선과는 달리 완전히 식민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삼엄한 식민 정부의 감시 아래 구체적인 정권론은 전개될 수 없었고, 국민의 자격을 갖추는 문제가 주로 논의되었다.
동경의숙은 국민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교육을 국민교육이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실업교육·도덕교육·위생·체육교육을 강조하였다. 국민의 자격을 갖추는 교육은 법률이나 제도의 정비보다는 개인의 인성과 소양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 주안점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愛國하는 인간을 기르려고 했다. 애국적인 인간은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국가 번영과 사회 진보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강조되었다. 그러나 동경의숙의 애국은 여전히 충의로움, 존왕애국을 의미했고, 효와 분리되지 않는 등 전통 유교 윤리 사상과 닮아있었다.
둘째, 愛群하는 인간을 기르려고 했다. 구국이든 사회진보든 단체의 힘이 커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에서 단체결성과 단체생활을 잘 하는 사람을 기르려한 것이다. 愛群은 종족과 마을 등 소공동체 위주의 베트남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대적 애군의 대상은 그보다 상위의 광역적 사회와 국가였다.
애군하는 방법으로는 애군심을 기르는 도덕적 수양과 실제로 단체를 구성하여 행동하는 실천이 강조되었다. 애군론은 동경의숙 내의 논의로만 그치지 않았고, 실제 사회 각 분야의 단체 결성을 촉진하는 작용을 하였다. 애군론의 대두 이후 새롭게 구성된 단체의 이름은 『등고총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경의숙 구성원들이 주장한 세계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愛群하고 愛國하는 국민은 문명개화와 주권 회복을 되찾기 위한 전제였다. 그리고 그 국민의 절반인 여성의 국민자격을 함양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었다. 여성도 국가 조직의 일부이며 국민이라고 주장하는 의견과 여성은 남성의 보조자이며 여성의 역할을 가정 내로 제한하여 보는 시각이 양립했다. 그러나 양자 모두 여성 교육을 강조하였다. 여성 교육을 선진국의 기준으로, 국가 독립과 문명화의 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여성 교육의 수업 내용으로는 전통적인 소양과 근대적 지식을 모두 강조하였다.
한편, 여권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여권은 대체로 여성 교육을 전제로 했고, 문명화된 사회에서 획득할 수 있는 권리로 보았다. 1900년대 초 여권이 가장 많이 논의 된 곳은 『등고총보』였다. 『등고총보』의 여성 칼럼 여성의 말에서는 여권과 관련하여 정략결혼, 결혼 지참금 문제, 일부다처제, 자유연애, 남성의 여성 희롱, 임신, 자녀 양육, 고아원 설립, 의복 문제, 장례식, 미신탐닉, 남존여비 사상을 얘기하였다.
동경의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통 교육과 구분되는 신교육을 실시했지만, 상당정도 전통적인 유교 교육의 토대 위에서 추구되었다. 한문을 가르치고, 충의심과 존왕애국 정신을 우선하며, 중국에 의존적인 대외인식을 보인 점에서 그렇다. 이는 동경의숙 관계자들이 전통 유교 교육을 받고 과거를 통해 관료가 되었거나,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경의숙의 온고지신적 국민국가 구상과 중국 중심의 대외 인식은 20세기 초 베트남 개명적 지식인들의 사상적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본고는 동경의숙의 교육·계몽활동과 그 속에 나타난 국민양성론을 1차 자료에 의거해 규명하고, 그 교육내용이 근대성과 전통을 온고지신의 관계로 아우르는 것이었음을 강조하였다. 이 점에서 본고의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765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ducation (사범대학)Dept. of Social Studies Education (사회교육과)History (역사전공)Theses (Master's Degree_역사전공)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