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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共産黨의 新疆 農業區 土地分配와 鄕村權力 革新(1951~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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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은주
Advisor
유용태
Major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Issue Date
2016-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新疆減租反覇土地改革民主改革鄕村權力建黨靑年團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교육과 역사전공, 2016. 8. 유용태.
Abstract
본고는 中華人民共和國 건립 직후 中國共産黨(이하 中共)이 단행한 토지개혁의 실시 배경, 전개 과정, 성과 및 한계를 新疆지역 사례연구를 통해 탐구한 논문이다. 중공이 내지 漢族地區의 경험에 의거해 만든 토지개혁의 주요 기준과 원칙 및 방법을 자연조건과 종교·인종 면에서 내지의 한족지구와 구별되는 특수성을 갖고 있는 新疆지역에 어떻게 적용하였는지를 분석하였다.
중공이 실시한 토지개혁은 잔존한 전근대적 요소를 소멸시키기 위한 民主改革으로 당국은 토지개혁을 통해 봉건 수탈 관계가 타파되고, 인민은 봉건적 속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논리로 공작을 단행하였다. 당국은 南疆 향촌 조사 사업을 통해 新疆의 향촌 사회를 봉건 농촌 경제라 규정짓고, 이러한 봉건성을 타파하기 위해 토지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 내지보다 늦은 2년 후에야 貧雇農에 의거하고, 中農과 단결하며, 富農을 중립시킨다는 총노선 및 총방침 아래 봉건적 수탈 관계를 소멸시키기 위한 減租反覇運動과 토지분배에 이르는 토지개혁이 전개되었다.
중공은 新疆 농업구에서의 토지개혁을 통해 자영농을 확대하고 생산 도구를 분배함으로써 생산력을 증강시킬 수 있었고, 일반 지주의 地租 수탈에 의한 봉건적 수탈을 일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혁을 통해 당국은 新疆의 향촌 사회 말단까지 장악할 수 있는 조직망을 구축하게 됨으로써 향촌 권력의 혁신을 도모할 수 있었다.
감조반패운동과 토지 분배 공작을 통해 적극적인 활약을 보이는 적극분자들이 배양되었고, 이들 중 일부는 中國共産黨員과 靑年團員으로 선발되어 인민대표대회에 참가하거나 鄕長 및 區長이 되어 향촌의 기층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로서 신생 국가는 保甲制와 鄕約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던 구제도를 폐지하고 區-鄕-村으로 이어지는 기층 향촌 정권을 건립하게 되었다. 말단의 향촌 정권은 省-縣-市의 인민정부와 연결되어 당국에서 추진하는 각종 국가사업을 향촌 구석구석까지 전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新疆은 내지와 달리 종교의 영향력이 상당히 큰 지역이었다. 종교인은 1천여 년 넘도록 향촌에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종교 토지는 향촌 경지 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었다. 종교 토지 중 대부분은 地權이 종교 기관에 속해 있었는데, 종교 토지를 빌려 경작하는 자들은 종교 사찰 및 학교에 지조를 납부해야만 했다. 지권이 종교 기관에 속해 있지 않은 경우 지주나 소토지 출조자가 관리의 명목으로 私用하였으며 이들 역시 종교 토지를 빌려 주는 대가로 지조를 수취하였다.
중국 중앙 인민정부 政務院은 봉건 수탈의 가장 대표적인 방식으로 地租 수탈을 꼽았고, 이에 의지해 생활 하는 자를 지주라고 규정하였다. 이에 근거하면 토지를 빌려준 대가로 지조를 수취하는 종교 토지 역시 명백한 봉건 수탈의 장이었고, 지조에 의지해 생활하는 종교인은 봉건 세력에 해당되었다.
하지만 종교 토지 및 종교인 지주에 대해 당국은 온건한 태도를 취하며 종교 토지를 개혁 대상에서 제외시켰고, 종교인 지주에 대해서는 일반 지주와 다르게 관용적으로 대우하도록 하였다. 이는 新疆에서 종교가 갖는 영향력을 감안한 조처로서 四面出擊의 위험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종교 토지는 토지개혁을 거치는 동안 몰수되지 않았고, 종교 토지를 매개로 한 지조 납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新疆 농업구에서 실시된 중공의 토지개혁은 생산력의 증대 및 일반 지주의 봉건적 수탈 타파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고, 중공의 지배 아래 들어온 新疆을 향촌 말단까지 장악할 수 있는 혁신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봉건 세력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종교인과 봉건 수탈의 장인 종교 토지가 개혁의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중공이 추구한 민주개혁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은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은 新疆의 토지개혁을 중국 내지의 한족지구와 다른 특수성에 입각해 민주개혁의 실현 여부 및 향촌정권의 혁신과 연관 지어 연구한 지역 사례 연구이며, 중국 학계에서 그동안 언급하지 않았던 新疆 토지개혁의 문제점을 제시한 점에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 데 의미가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7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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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ducation (사범대학)Dept. of Social Studies Education (사회교육과)History (역사전공)Theses (Master's Degree_역사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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