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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 渡滿 日本人의 눈에 비친 中國人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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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정동연
Advisor
柳鏞泰
Major
사범대학 사회교육과(역사전공)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제국의식 도만일본인 중국인상 지배논리 통제논리 방어기제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교육과(역사전공), 2014. 2. 柳鏞泰.
Abstract
본고는 러일전쟁에서부터 본격화된 일본인의 만주 이주 과정을 통해 형성된 중국인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본인의 제국의식이 크게 작용하였음을 규명하고, 나아가 이것이 그들의 중국인상과 어떠한 관련을 맺으며 진전되어 갔는지를 분석하였다.
19세기 일본의 국가적 차원의 제국화는 일본인으로 하여금 제국의식을 갖게 하였다. 제국의식이란 이족, 이역을 지배하는 제국체제를 형성, 유지, 강화하려는 의식이다. 일본인들은 자국이 대만, 조선으로 팽창하고 청과 러시아라는 강대국을 격파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제국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1905년 히비야 폭동은 이러한 일본인의 제국의식이 집단 행동으로 표출된 대표적 사건이었다. 이처럼 일본인들의 제국의식은 도만 이전에 이미 형성된 것이었다.
1905년 포츠머스 조약으로 일본은 여순, 대련을 비롯한 관동주, 그리고 만철 부속지를 획득하였고, 이곳을 통치하기 위해 관동도독부, 만철 등을 설립하였다. 일본의 만주 지배욕은 1915년 남만동몽조약, 1920년대 후반의 만몽 분리를 거치며 점차 강화되었고, 결국 1931년 만주사변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만주 지배는 도만 일본인으로 하여금 이곳에 대한 제국의식을 형성케 하였다.
이와 더불어, 일본인이 이주한 만주라는 장소가 갖는 공간성은 그들의 제국의식을 더욱 심화시켰다. 관동주는 일본인이 특권을 갖는 장소였고, 이곳에서 자국의 제국 지배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반면, 나머지 만주 지역은 관동주에 비해 낙후된 곳이었다. 또한 만주로 이주한 일본인은 식민통치와 관련된 중간층 이상이 많았으나, 중국인들은 주로 산동성, 하북성으로부터 이주해온 빈농이었다. 따라서 일본인의 제국의식은 만주에서 훨씬 강렬해졌고, 이는 실제 여러 행동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은 그들끼리만 집거하려 하였고, 중국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으며, 만주 오지로의 여행은 꺼렸고, 만주에서 하루빨리 떠나고자 하였다. 특히, 일본인의 중국인에 대한 오만한 태도는 그들의 제국의식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인에 있어 만주 체험은 그들의 제국의식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에 도만 후 일본인의 중국인상은 다소 변화하였다. 먼저, 무지한 중국인상은 중국인의 신앙이나 교육 수준을 근거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또한 단결할 줄 모르는 분산된 중국인상도 만주 사회에 널리 유포되었다. 이 두가지 중국인상은 공통적으로 일본의 만주 지배 논리를 강하게 드러냈다. 중국인은 무지하고 단결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국가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록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도 이러한 중국인상에 공감하였으나, 그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했던 반면, 도만 일본인들은 이를 근거로 중국, 중국인을 지배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불결한 중국인상은 만주의 쿠리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더욱 구체화된 인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은 쿠리뿐만 아니라 중국인 전체로 확대 적용되었고, 때로는 이것이 일본인에 위해를 가하는 요소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범죄자 중국인상은 주로 마적으로 인해 생성된 것인데, 일본 언론의 악의적 보도를 통해 더욱 과장되었다. 이 두가지 중국인상은 주로 일본의 실질적 지배하에 있는 관동주와 만철부속지의 중국인을 통제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중국인은 불결하고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인은 전차, 기차와 같은 교통수단이나 그 외 생활공간에서 각종 통제를 받았다.
모리배 중국인상은 본디 상업적 재능이 뛰어난 중국인상이 부정적으로 변형된 것이다. 일본인들은 만주의 중국 상인들의 적극적인 이윤 추구 활동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주의 일본 상인들은 점차 중국 상인들과의 경쟁에서 열세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는 그들의 제국의식에 걸맞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중국인의 이윤 추구 활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들이 처한 불리한 상황을 합리화하였다. 즉, 이는 방어기제로서의 중국인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도만 일본인의 중국인상은 제국의식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본고에서 분석한 중국인상은 각각 제국의식의 지배논리, 통제논리, 방어기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제국의식이 투영된 중국인상은 일본 대중에 널리 받아들여져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지지하고 합리화하였다. 따라서 이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침략은 단순히 정치인이나 군부뿐만 아니라, 이를 암묵적 또는 공개적으로 지지한 전체 일본인에 의해 실행된 것이다.
1945년의 패전으로 일본 제국은 무너졌다. 그러나 40여 년 간의 만주 지배 동안 일본인의 심리 깊숙한 곳에 제국의식이 각인되었기에, 그에 의거한 중국인상은 아직까지 일본 사회에 잔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양국의 관계 회복을 위해 대중 차원의 인식에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7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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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ducation (사범대학)Dept. of Social Studies Education (사회교육과)History (역사전공)Theses (Master's Degree_역사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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