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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의 재해석: 교육내용으로서의 내러티브
A Reinterpretation of Narrative: narrative as educational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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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상현
Advisor
곽덕주
Major
사범대학 교육학과
Issue Date
2016-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내러티브매킨타이어이해가능성서사적 자아교육내용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교육학과 교육학전공, 2016. 8. 곽덕주.
Abstract
이 연구의 목적은 내러티브를 교육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보임으로써 내러티브가 지닌 가치를 재탐색하는 데에 있다. 과거에 연구의 방법으로 이해되던 내러티브는 최근 교실의 수업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내러티브를 통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교과의 내용을 쉽게 연결하게 함으로써 교과의 내용에 학생들이 흥미를 붙이고 그것을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처럼 내러티브를 학생들의 흥미 유발 및 이해의 보조를 위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교과의 내용이 학생들에게 전달되어야만 하고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내면화라고 지칭되는 이러한 패러다임은 오늘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왜냐하면 인식의 주체 바깥에 객관적인 진리가 있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할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감각기관 등을 통하여 대상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인식 대상의 모습을 우리의 주관에 따라 재구성하게 된다. 이 점에서 우리가 파악하는 외부의 대상은 모두 우리가 재구성한 모습이며, 외부에 있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이해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교과의 내용을 전달한다는 내면화 패러다임은 학생이 그의 외부에 있는 지식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교과의 내용이 학생에게 왜곡되지 않고 있는 투명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보지만, 애초에 이 가정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내면화의 과정 역시 성립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교과를 내면화하는 방법으로서 내러티브를 활용한다는 기존의 인식을 재고해야만 할 필요가 생긴다. 이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답변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이 글에서는 브루너의 내러티브 개념을 들었다. 그는 내러티브를 ‘사고와 감정의 양식’, 다시 말하여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앎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의 속성이나 특징 등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것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우리 바깥에 객관적으로 있는 진리를 투명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그 사건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구성하고자 한다.
내러티브가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면서 앎의 방식이라면, 거꾸로 우리가 의미를 구성하기까지는 내러티브의 도움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몸짓이나 행동을 통해서도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비언어적 수단 역시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말과 동일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매킨타이어가 제안하는 이해가능성이라는 개념은 브루너가 제안하였던 앎의 방식으로서 내러티브의 개념을 더욱 확장시킨다. 그는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 우리 각자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비록 말로 분명하게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각자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한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그 의도를 드러낼 수 있기에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을 통하여 그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게 된다. 매킨타이어의 이해가능성이라는 개념에 따른다면,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위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의미를 구성해 낼 수 있는 셈이다.
우리가 행위를 통해서 의미를 구성해 낼 수 있다면, 각각의 행위가 모여 이루어진 우리의 삶 전체의 의미를 구성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삶 전체의 의미를 구성해낼 수 있다면, 이것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는 하나의 이야기 혹은 내러티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자아라는 개념은 바로 이것을 지칭하는데,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로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내러티브로서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환언하면 내러티브는 이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서 성립하기에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겪는 각각의 경험들을 이을 수 있는 일관성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이 일관성을 실제로 보증해 주는 것은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덕이다. 이것들은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으며, 우리의 동일성을 객관적으로 보증해 줄 뿐만 아니라 일관된 가치를 추구하면서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으며, 이들 중 어떤 것들은 상충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결과로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꿈꾸지 않은 입장은 없을 것이다. 이때 교육을 통해서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려면, 어떤 방식으로건 우리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우리 삶의 방식인 내러티브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교육내용이 될 만한 정당성을 획득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며, 그 이야기에 기초하여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지를 이해한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야기를 직접 배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늘어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내러티브를 단순히 교수방법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교육내용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기존의 논의에서 벗어나 내러티브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 본 것이다. 이것은 교육실천의 현장에서 내러티브가 가지는 가치를 재인식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렇게 내러티브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의의로서 개인의 배움과 삶이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하고 개인의 삶에서 교육이 지니는 위치를 재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 글에서 드러나는 연구의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우리의 앎의 양식으로서 내러티브가 교육내용이라고 할 때 이 교육내용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바를 조금 더 제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교육적 근거가 필요하다. 만일 학생이 학교 바깥에서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하였을 때, 이것은 교육내용으로 볼 수 있는가? 둘째는 앎의 양식으로서 내러티브가 교육내용이라면 교사의 역할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충분하게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생이 자기 삶을 내러티브로 구성한다는 말은 그가 직접 교육내용을 구성한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우리의 논의에 따르면 교육내용을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교사가 직접 교육내용을 학생에게 전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학생이 자신의 삶을 내러티브로 이해할 때에 교사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이 점은 추후의 또 다른 연구를 필요로 한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7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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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ducation (사범대학)Dept. of Education (교육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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