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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미국 디자인외교와 한국공예시범소 : The Cold War U.S. Design Diplomacy and Korea Handicraft Demonstration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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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최정원

Advisor
김민수
Major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Issue Date
2015-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디자인외교한국공예시범소수공예산업디자인디자인진흥냉전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디자인학부(디자인역사문화), 2015. 6. 김민수.
Abstract
이 연구는 그동안 한국디자인사 연구에서 단발적인 사건으로 다루어져온 한국공예시범소를 냉전기 미국 디자인외교라는 동시대의 국제정치적 흐름 속에서 바라봄으로써, 공예시범소를 둘러싼 맥락을 재구성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담론 구축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각종 1, 2차 자료를 통해 디자인을 활용한 외교 정책의 사례들을 수집하고, 이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디자인이 냉전기 미국의 대외 구상에서 담당한 역할을 밝혀낸 뒤에, 이를 한국공예시범소의 사례와 비교분석함으로써 동시대의 국제정치적 맥락 속에서 한국공예시범소가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시작된 냉전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의 이데올로기 경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재래식 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의 개발은 두 진영의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동시에 안보 상의 위협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은 군사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우선순위에 있었던 경제와 문화를 외교정책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부상시켰다. 예술적 창의성의 산물로서 문화적인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며 생산과 소비라는 경제의 순환 고리 속에 깊숙하게 위치한 디자인은 냉전에 딱 어울리는 무기였기에, 이 시기 미국의 외교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냉전기 미국의 디자인외교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국제정치 상의 변화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서유럽의 경재 재건에 있었던 1948년부터 52년까지 디자인은 마셜플랜 하에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 시기의 주요 활동으로는 서유럽 디자이너들에 대한 디자인 교육과, 유럽 상품의 수출 증진을 위한 미국에서의 박람회 개최 등이 있었다.
마셜플랜의 성공으로 서유럽의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음에 따라 대규모의 경제원조보다는 각종 문화 활동을 통한 이데올로기 경쟁이 외교 정책의 핵심으로 부상한 1950년대에는 디자인 또한 문화냉전의 무기로 이용되었다. 주로 해외에서의 전시회에 활용된 디자인은, 때로는 미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때로는 미국식 소비생활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프로파간다로 나타났다.
1950년대 중반에는 제 3 세계 신생독립국들이 미국 외교의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원조가 실시되었다. 원조 자금의 상당 부분은 개발도상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 쓰였는데, 그 일환으로 ICA는 미국 내의 유망한 산업디자인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개발도상국에서의 상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ICA 프로젝트의 강조점은 무엇보다 단기간에 수출이 가능한 상품을 개발하는 데 있었으나, 몇몇 국가들에서는 산업디자인에 대한 전문 교육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시행된 일련의 디자인외교 활동들을 살펴보면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디자인은 대체로 두 가지 측면에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조정책에서 디자인은 주로 생산논리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경제적 가치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면, 공보선전정책에서는 디자인이 미국의 문화적 우수성과 생활에 있어서의 풍요로움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활용되었다.
ICA의 개발도상국 원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설립된 한국공예시범소의 사례에서, 디자인은 일상 문화의 구성물보다는 경제적 도구로서의 성격이 강조되었다. 한국공예시범소의 활동에서 드러나는 강한 경제지향성은 당시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에 비추어 볼 때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한은 자유진영의 방위선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으므로, 한국공예시범소의 활동 역시 수공예 및 경공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소규모 산업체를 육성하고 수출 시장을 개척하여 경제적 안정을 이룩하고자 하는 목적에 수렴하는 것이었다.
냉전기 미국 디자인외교 활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한국공예시범소는 한국 최초의 디자인진흥기관으로서 한국 사회에 산업디자인 개념이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실제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 동시대 미국 디자인이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특성들 중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고려는 제쳐 두고 경제적 수단으로서의 면모만을 받아들임으로써, 훗날 한국디자인이 문화적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로 작용하였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8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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