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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Boundary: South Koreas Democratization during the Chun Doo-Hwan Administration
미국의 범위: 전두환 정권 시기 민주화 과정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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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서지형
Advisor
신성호
Major
국제대학원 국제학과(국제협력전공)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American BoundaryU.S. interventionROK-U.S. RelationsDemocratization1980s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 국제학과(국제협력전공), 2014. 2. 신성호.
Abstract
한미동맹은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이로서 시작된 군사협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미 간 국력의 차이로 인해 이 초기 군사 협력이 일방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면, 이후 한국의 눈부신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 성장은 한미 간의 역학관계를 바꿔놓았다. 교류와 협력의 범위가 사회, 경제, 문화를 포괄하는 보다 넓은 범위로 확대되고, 한국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국익을 추구하면서 대북정책, 주한미군, 통상협상 등 여러 민감한 이슈들을 둘러싼 갈등의 여지도 커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사고방식과 한반도에서 그들의 외교정책이 구현되는 방식 등 미국의 행동 양식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분석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국내 인식은 여전히 감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잣대 위에서 이루어지며, 여기에서 파생된 뿌리깊은 친미, 반미 논쟁은 객관적인 현실 인식을 저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간 학계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미국을 한국의 수호자로 파악하거나, 그와 정 반대인 필요악으로 파악하는 등 편향된 연구 패턴을 보여왔다. 하지만 다행히 최근 들어 한미관계의 연구 범위와 접근 방식이 다양해 지면서, 미국과 한국 사이의 역학관계를 보다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시도 또한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본 연구는 그러한 시도 중의 하나로 제시된 냉전시기 미국의 한반도 국내정치 침투에 관한 이론인 미국의 범위라는 개념을 수정, 발전시켜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 국내 정치에 침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턴을 분석하고자 시도했다.
미국의 범위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에서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의 상한 (공산주의 혁명화)과 하한(파시스트 독재화)을 설정해 놓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미국의 범위) 한국의 주체들이 국내 상황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이 미국의 범위를 넘어서 미국의 국익을 해칠 것으로 생각되면 적극적으로 개입해 상황을 미국의 범위 안으로 재설정하기 위해 힘썼다. 본 논문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구체적인 개입 방식은 한국 국내 상황 전개에 대한 미국의 판단을 바탕으로 결정되었으며, 우선 한국 정부에게 상황 통제를 일임한 뒤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될 때서야 비로소 직접 개입하는 등 순차적 절차를 따른다고 보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냉전 시기 동안 한반도의 민주주의 증진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살펴보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반도의 불안정은 또 다른 세계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므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가장 큰 국가 전략은 한반도의 안보와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의 신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장려되었으나, 이 또한 남한의 내부 안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했으므로 정부가 주도하는 점진적인 민주화가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전두환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아시안게임, 88올림픽 등을 앞두고 시행된 다양한 유화정책으로 인해 민주화로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 보였으므로 미국은 전두환 대통령의 1988년 평화적 정권 이양 선언을 주시하며 점진적인 정부 주도의 민주화를 지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5년 김대중의 정치권 재등장,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신한민주당의 압승으로 정치권에서의 여야 경쟁이 본격화되고, 덩달아 뜨거워진 민주화 열기는 한국의 내부 불안정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일단 직접적인 개입을 삼간 채 정부를 통한 점진적 민주화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한편, 한국의 국내 상황 추이를 관망한다.
하지만 1986년 신민당이 개헌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고, 같은 해 5월 인천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와 민주화 요구세력의 갈등은 심화된다. 미국은 같은 달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의 방한 시 정부를 통한 점진적 민주화 달성이라는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재강조하는 한편, 야당과 민주화 운동 세력에게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로운 민주화 달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미국의 행동은 한국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1980년 광주사태로 인해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전두환 정권과 미국의 결탁에 대한 확신이 심화되며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지는 역효과를 낳은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에 대한 이미지, 기대와 이를 배반하는 듯한 미국의 태도는 반미구호를 드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7년,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박종철이 경찰 심문 과정에서 고문으로 인해 사망하고, 이를 정부가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음이 밝혀지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는 극을 향해 치닫는다. 전두환 대통령이 평화적 정권 이양에 대해 뚜렷한 계획을 제시하지 않은 채 약속한 1988년이 다가오자, 미국은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한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개스톤 시거의 1987년 2월 연설이 대표적인데, 시거는 연설을 통해 군부 정권의 퇴진과 국민의 힘에 의해 선출된 정권으로의 평화적 이양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와 민주화 세력의 대결이 심화되는 와중에 전두환 대통령은 국내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직선제 개헌 논의를 1988년 올림픽 이후로 미루고, 선거인단의 투표를 통해 노태우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다. 반정부 시위 도중 연세대학교 학생이었던 이한열이 경찰이 발포한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이 되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전두환 정권 내부에서 무력 사용 의견이 적극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은 이러한 시도를 적극 제지하고 전두환 정권에게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종용한다.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후보가 민주화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헌법 개헌,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면서 같은 해 최초로 직선제를 통한 대통령이 탄생한다.
Language
English
URI
https://hdl.handle.net/10371/12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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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국제대학원)Dept. of International Studies (국제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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