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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왕의 권위와 권력의 관계 ―황극개념의 해석을 중심으로―
The Relation between Power and Authority of Kings in Late Choson Dynasty -Interpretations of the Concept of Hwangk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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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소진형
Advisor
김영민
Major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Issue Date
2016-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황극왕권권위권력도통왕통홍범구주심법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2016. 2. 김영민.
Abstract
본 논문은 17, 18세기 조선에서 황극(皇極)개념이 사용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조선후기 왕권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기존의 왕권연구들은 조선후기에 왕권이 주목되는 현상과 황극개념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으나, 황극과 왕권의 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황극 개념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의 경우 황극을 성리학적 통치론의 관점에서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왕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지 못한다. 본 논문은 황극개념을 성리학적 통치론과 연관시켜 설명한 뒤, 조선후기라는 맥락 속에서 이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를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본 논문이 분석하고자 하는 황극개념은 조선후기 파벌간의 대립을 종식하고자 하는 사대부들의 주목을 받았다. 17세기 이후 당쟁이 격화됨에 따라 파벌들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게 판단하고 당쟁을 조정할 수 있는 존재로 왕이 부상하게 되었다. 성리학은 왕은 인간적 한계를 가진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치통(治統)을 가진 왕과 도통(道統)을 가진 사대부들이 함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을 이상적인 정치라고 보았다. 사대부들이 당쟁으로 인해 공정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판단자이자 조정자로서의 왕을 주목하게 만들었지만, 일시적으로 강화된 왕권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왕의 공정성을 담보해줄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필요했다. 그 이론과 관계되어 있는 개념이 황극이다.
황극은 조선시대에 “왕의 표준”으로 이해되었다. 황극은 우주의 본체로서의 태극(太極), 대중(大中)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다가 송대에 이르러 왕과 연관되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는데, 이를 “왕의 표준”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한 사람은 남송대 성리학자인 주희이다. 주희는 황극을 왕의 표준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정치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었다.
문제는 황극으로 왕의 판단과 왕이 만든 제도가 공정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이다. 홍범구주의 주석자들은 황극의 조건으로 심법(心法)을 제안함으로써 아포리아를 해결하고자 한다. 주석자들 중 도덕으로 황극을 설명하려는 입장은 심법을 경(敬), 즉 신중한 태도라고 규정한다. 한편 상수학(象數學)으로 황극을 설명하려는 학자들은 판단의 대상이 되는 존재와 사건들을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 상황에 따른 판단과 결정을 강조한다.
황극을 도덕적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이나 상수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은 모두 공통적으로 왕의 권위를 이론적으로 강화시키고 권력의 자의적 사용을 제어하고자 한다. 이들은 권력을 권위로부터 구분한 뒤 다시 권위에 귀속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권위가 그 의미에서 강조됨에 따라 황극은 왕들에 의해 적극적인 정치수사로 사용된다. 왕들이 황극개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자 사대부들은 황극을 대중이나 중(中) 개념으로 재규정함으로써 황극과 왕권의 이론적 연속성을 단절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황극이 정치수사로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주석자들이 왕의 권위를 강화하고 권력을 제한하려는 이론적 시도들은 마치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황극개념을 통해 왕의 권위를 강화하고 권력을 제한하려는 이론적 시도들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조선의 두드러진 특징은 관료제가 발달하고 개혁적인 제도들이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관습과 다른 제도가 확산되고 작동할 수 있으려면 관료제가 발달해야 하며, 동시에 강한 국가의 힘이 필요하다. 왕의 강한 권위는 이러한 개혁들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한편 관료들은 제도의 변칙적 적용이나 제도적 규정을 넘어서는 판단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왕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정조가 왕의 절대적 권위를 강조하며 제도를 넘어선 권력인 권도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관료제에 의해 그 권력을 제한당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황극의 이론적 설명과 정치수사로서의 사용되는 방식을 살펴보면 조선후기에 적어도 왕권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왕권을 제도에 종속적인 것으로 규정하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왕권을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권력으로 인식하는 입장이다. 전자가 왕을 제도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제도에 종속되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후자는 사대부나 관료들을 정치의 조언자나 통치의 파트너가 아닌 왕의 가신으로 격하시킴으로 왕의 결정에 복종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왕권에 대한 이러한 입장차는 당대인들이 황극개념을 통해 왕권을 권력과 권위로 구분했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9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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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Political of Political Science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정치외교학부)Political Science (정치학전공)Theses (Master's Degree_정치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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