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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한국의 핵개발 정책결정요인 비교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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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서민정
Advisor
노경수
Major
행정대학원 행정학과(정책학전공)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핵개발핵무기한미동맹Waltz신현실주의박정희 대통령카터 대통령닉슨독트린데탕트탈냉전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 정책학과, 2014. 2. 노경수.
Abstract
요약(국문초록)

동 연구 마무리에 한창이던 지난 2013년 11월 24일, 제네바에서 P5+1국가들(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과 이란이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초기 단계에 합의하여 이란이 우라늄 농축과 중수로 활동을 동결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의한 검증을 강화하기로 하였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란의 핵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이제 국제사회에서 미결의 핵문제는 한반도,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파생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반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만 남게 된다.

동 연구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북한 핵개발 정책의 결정요인 분석에 주목하는데, 그중 제반 선행연구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과거 한국 정부의 핵개발 정책과 북한의 핵개발 사례를 비교분석함으로써 북한의 핵개발 정책결정에 있어 주요결정요인이 무엇이었는가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20여년의 격차를 두고 국가정책으로 가시화되었던 한국과 북한의 핵개발 정책결정에 대한 주요결정요인 분석은 동 결정요인의 해결이 바로 현 북한 핵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는데 그 연구의의가 있다.

한국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핵개발 정책과 북한 김일성, 김정일 정부가 추진한 핵개발 정책은 Waltz의 신현실주의 시각이 말하는 위협에 대한 자국 안보 확보가 그 정책적 목표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차이점은 바로 양국의 핵개발 정책결정에 대한 위협의 정도가 상이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비록 1960~70년대 데탕트라는 국제체제변수의 영향이 있기는 하였으나 당시 한국이 자국의 안보를 한미동맹에 거의 전부 의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동맹관계변수는 체제변수를 능가하는 효과가 있었다. 따라서 동맹이 국제체제변수의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존슨행정부, 닉슨행정부, 포드행정부 시기 데탕트로 인한 양국의 위협 인식에 대한 불일치와 더 나아가 카터행정부 시기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가치를 둘러싼 박정희 대통령과 카터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갈등이 동맹변수에 있어 위협으로 대두하였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부는 동맹국 미국에 대한 배신감과 더 이상 미국에 안보를 의지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이러한 위협에 대한 '자국 안보 추구의 방법으로 자주국방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동 자주국방정책의 최종 목표는 당시 동맹국 미국이 한국에게 제공하고 있던 핵우산의 대체물, 즉 핵무기 보유였다.

북한의 경우는 동맹관계변수 보다는 체제변수 차원의 위협이 핵개발 정책결정에 있어 가장 큰 요인이었다. 한국에 비해 북한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시소외교를 펼치면서 동맹변수에 자국의 안보를 전부 의지하고 있지 않았던바, 동맹변수의 영향은 1980~90년대 탈냉전이라는 체제변수의 영향을 능가하지 못하였다. 북한은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핵무기에 대한 정책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980~90년대 경제난과 국가체제 유지, 정권이양이라는 국내정치경제환경요인 하에서, 체제변수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탈냉전이라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개발 정책결정을 가시화하게 되는 것이다. 공산주의권이 해체되고 소련과 중국이 사실상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한국과 수교를 맺는 상황은 북한 김일성, 김정일에게는 자신들이 아는 세계관 자체가 무너진 것과 같은 상황이었으며, 이러한 국가의 근본이념과 최고지도자들의 세계관 자체가 무너지는 위협에 직면하여 북한은 안보확보 차원에서 핵개발을 추진하게 되는 것이다.

동 연구는 상기와 같은 한국과 북한의 핵개발 정책결정에 대한 주요결정요인을 설명함과 더불어, 정책결정과정 측면에서 핵개발 정책결정에 대한 주요 정책결정행위자를 살펴보았다. 한국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최고지도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으며, 상대적으로 군부는 박정희 대통령의 군부분할통제방식으로 인해 국가정책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되었다고 보았다. 또한 군부 일부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 정책에 대한 반대의견도 제시하는 등 동 정책결정에 있어 군부의 참여는 예상보다 제한적이었다. 외부행위자 미국도 한국의 핵개발 정책결정에 있어 주요행위자이다. 박정희 정부의 핵개발 정책은 미국과의 상호반응(feedback)을 통한 정책결정이라는 측면이 존재하기에, 미국이라는 주요행위자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의 경우는 김일성의 유일체제 당시는 한국과 같이 최고지도자의 정책결정력이 강력하였으나, 김정일로의 정권 이양과 탈냉전 시기에는 경제난 극복을 위한 사회내부통제 필요성에서 군부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이는 북한이 대내정책으로 선군정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고, 김정일 역시 국가주석이 아니라 국방위원장의 직함으로 최고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점에서도 증명된다. 한편,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북한의 핵개발 정책결정과정에 외부행위자를 포함하기는 어렵다. 북한에게는 미국과 같은 전적인 안보제공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양국은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는 정책결정요인 측면 뿐 아니라 정책결정과정상 주요행위자 측면에서도 차이점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 연구를 통한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탈냉전 하 국가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북한에게 북한의 국가체제를 보장함으로서 핵개발 정책의 결정요인을 해소하고 또한 이러한 해결책을 북한 최고지도자 및 군부와 협상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여타 다른 가치의 문제, 다른 방향의 정책문제를 수반한다. 즉,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할 것인가,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함으로써 현재의 한반도 분단 상태를 영원히 고착시킬 것인가 하는 정책문제들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들 문제에 대한 입장을 먼저 결정하는 것이 바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전제라는 점을 제시하면서, 동 정책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연구는 향후 별도의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Abstract

Comparative Study on the Decision Factors in North Korea's Nuclear Policy in the 1990s and the Factors in South Korea's Nuclear Policy in the 1970s


Suh, Minjeong
Public Policy Major
Graduate School of Public Administration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a long way to resolve the North Korean nuclear crisis, overwhelming volumes of research have been conducted in regards to Pyongyangs continuous nuclear drive
yet, the academia has largely overlooked South Koreas own nuclear policy during the 1970s. North and South Koreas launched their nuclear programs in a time-gap of approximately 20 years, respectively. What led to both governments on the Korean Peninsula to initiate their nuclear policies? What factors have made not only North Korea, a repressive authoritarian regime, but also the democratic South to pursue nuclear armament? It should be noted that while South Korea has eventually given up its nuclear policy, the North continues to hold fast to the position that its nuclear program is non-negotiable. Indeed, Pyongyang continues to pursue nuclear weapons regardless of tremendous pressure and crippling economic sanctions from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f this difference can be sufficiently explained, I may argue that such explanation could provide an insightful hint in resolving North Korea's nuclear problem.

To analyze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wo Koreas' nuclear policies, this study aims to find out what was the most crucial factor in Seoul and Pyongyangs decision-making for their nuclear programs.

In conclusion, as Kenneth Waltzs Neo-realism theory suggests, both Koreas sought to ensure their national security against potential threats by acquiring nuclear weapons. Clearly, dissimilarities exist between the factors that led Seoul and Pyongyang to initiate the policy of nuclear armament. For example, in the era of "détente" between the Free World and the Communist bloc in the 1960s and 70s, South Korea perceived that perception gap between U.S. and South Korea on external threat was another threat for the South. Further, the bigger threat lies in the so-called "alliance factor" on the R.O.K.-U.S. Bilateral Alliance. If the bilateral ties between the two countries had been solid, the alliance would have been sufficient to defend Seoul not only from the shifting international environment under détente, but also from the constant military threats from North Korea. However, South Korea and the U.S. underwent a crisis in their alliance during the 1970s, first due to the Nixon Doctrine, and finally due to personal disagreements between South Korean President Park Chung-hee and his American counterpart President Jimmy Carter on their individual values.

On the other hand, the biggest threat to the North Korean regime in the 1990s was the newfound international system of Post-Cold War framework per se. All other communist countries disappeared on the earth only except for the North. The whole new world was ever first chapter for North Korea in its history. Further, North Korea did not fully rely on its alliance with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PRC) or with the Soviet Union in a way to fully ensure its national security. North Koreas lack of external security guarantee was a big difference from the situation of South Korea. Facing the demise of the entire communist bloc, North Korea did not have the diplomatic leverage to counterbalance the threat from the shifting international system, and as a result, Pyongyang had no choice but to initiate its nuclear policy to ensure its own national security.

This study also analyzes the roles of main actors behind the decision-making of Seoul and Pyongyangs nuclear drive. In the case of South Korea, President Park held absolute power and authority over both policy-making and policy-implementation, while the South Korean military was restricted in action due to the Presidents "divide-and-control policy" over the men-in-uniform. Also, the United States took a significant role in South Korea's nuclear policy by exerting influence and pressure on the Park administration. In North Korea, the ultimate authority lies in the hands of the head-of-state, but throughout the era of Kim Jong-Il, the Korean Peoples Army(KPA) enlarged its role to the sphere of policy making under the banner of "Military-First Politics." Unlike the case of South Korea, the North did not experience significant influence or pressure from external actors, which could have reined in the regimes aggressive drive for nuclear armament.

After all, this study suggests that, in order to resolve the North Korean nuclear crisis, Pyongyang needs to be secured against the threats that it perceives from the international community. Yet, the suggestion above raises additional policy issue that North Korea should be recognized as a normal state. Thus, it should be emphasized that the position on these questions remains as a critical premise of resolving North Korea's nuclear issue.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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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 of Public Administration (행정대학원)Dept. of Public Administration (행정학과)Theses (Master's Degree_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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