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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 현상학의 범주적 직관 : Categorial Intuition in Hussel's Phenome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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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종우

Advisor
이남인
Major
인문대학 철학과
Issue Date
2016-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범주적 직관범주감성파악파악내용직관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철학과 서양철학전공, 2016. 8. 이남인.
Abstract
이 논문은 『논리연구』를 중심으로 후설 현상학의 범주적 직관이 무엇인지 자세히 규명하고 잘못된 해석들을 논박한다.
후설에게 직관은 대상 자체를 주는 작용이다. 이때 범주적 직관은 한갓 감성적(sinnlich)이지 않은 직관, 그래서 지성적(intellektuell)인 기능을 하는 직관을 일컫는다. 그래서 범주적 직관은 사태연관(Sachverhalt), 집합, 본질 등과 같은 지성적인 대상(범주적 대상) 자체를 주는 작용, 다시 말해 인식(Erkenntnis)에 기여하는 작용이다. 이처럼 범주적 직관은 극히 넓은 외연을 지니는 기초개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현상학계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범주적 직관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였다. 구체적으로 이 논문에서는 『논리연구』의 범주적 직관의 영향력 있는 해석자인 투겐트하트(E. Tugendhat)와 로마(D. Lohmar)를 비판한다.
쟁점이 되는 것은 『논리연구』의 범주적 재현(Repräsentation) 학설이다. 『논리연구』에서 후설은 직관을 재현, 즉 파악(Aufpassung)으로 간주한다. 파악은 주관적 체험인 파악내용(aufgefaßte Inhalt)을 객관적 대상(지향적 질료Materie)으로 해석하는 기능이다. 후설에 따르면 직관 역시 이러한 기능을 하며, 이때 특정한 파악 작용 혹은 파악된 대상을 직관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대상에 관련된 특정한 파악내용들이다.
그리고 후설은 범주적 직관 역시 파악(재현) 기능을 한다고 간주한다. 「제6논리연구」 6장과 7장에서 후설은 이 범주적 재현을 자세히 기술하고 관련된 개념을 정리한다. 특히 7장에서 후설은 감성적 직관에 특유한 것이 아니라 범주적 직관에 특유한 파악내용, 즉 범주적 재현자(Repräsentant)가 무엇인지 규명한다. 후설에 따르면 이 파악내용은 바로 작용들 간의 수동적이거나 능동적인 결합, 소위 심리적 연결(psychisches Band)이다. 이것은 작용들의 성격이므로, 『이념들 I』의 용어에 따르면 노에시스(Noesis)이다. 범주적 재현 학설에 따르면, 범주적 직관은 바로 범주적 파악내용을 범주적 대상의 형식(범주)으로 파악하는 작용이다.
그러나 후설은 범주적 직관과 관련하여 중요한 두 가지 점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 이 점들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심리적 연결은 작용들 간의 수동적인 결합일 수도 있고 능동적인 결합일 수도 있다. 이 차이는 참과 거짓이 구별되는 사태연관 같은 범주적 대상과, 참과 거짓이 구별되지 않는 집합 같은 범주적 대상의 차이를 낳는다. 결국 범주적 직관 및 범주적 대상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둘째, 범주적 직관은 종합적 작용에 정초되는 명사적 작용이다. 범주적 직관은 범주적 대상 자체를 주는 작용이다. 그런데 후설에게 대상은 (적어도 본래적으로) 명사적 작용에서 주어진다. 그러므로 범주적 직관은 범주적 종합 작용을 단적으로 돌이켜보는 작용, 즉 명사화(Nominalisierung, Substantivierung)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설은 종합적 작용을 자주 범주적 직관의 사례로 취급한다.
한편 우리에게 특별히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제6논리연구」 제2판 서문의 언급이다. 거기서 후설은 더 이상 범주적 재현 학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 말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범주적 재현 학설의 대체물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학설을 과연 포기해야 하는가, 받아들인다면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겨난다.
먼저 투겐트하트는 후설이 말하는 심리적 연결은 체험이고, 체험은 바로 감성이므로, 심리적 연결은 범주적 형식으로 파악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투겐트하트에 따르면 바로 이 때문에 후설은 범주적 재현 학설을 포기한다. 그러나 비록 파악내용이 감성이더라도, 이것으로부터 파악되는 대상이 감성적 대상일 필요는 없다. 그 자체가 감성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연결은 그리고, 맞음, 틀림, ...이다, 모든 같은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지며, 그래서 범주적 형식으로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겐트하트는 범주적 직관이 바로 범주적 종합 작용이라고 주장하지만, 후설의 체계에서 범주적 직관은 이 범주적 종합 작용에 근거하는 명사적 작용이다.
한편 로마는 심리적 연결이 바로 작용 체험(노에시스)이므로, 범주적 파악은 작용 자체를 대상으로 지향하는 작용, 즉 반성(Reflexion)이 되어 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논리연구』에서 후설은 그때그때 체험 자체를 대상으로 파악하는 내적 지각과, 그때그때 체험을 이 체험이 아닌 대상으로 파악하는 외적 지각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그리고 이때 범주적 직관은 외적 지각이다. 범주적 직관은 작용들의 갖가지 방식의 연결을 범주적 대상의 형식으로 파악하지, 작용들의 결합으로 파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주적 직관은 전혀 반성일 필요가 없다.
나아가 이후 『경험과 판단』에서도 후설은 범주적 재현 학설을 유지한다. 여기서 후설은 대상이 노에시스로부터 구성되는 것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적인 것, 즉 노에마(Noema)로부터 구성되는 것을 분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설에 따르면, 대상을 지향적으로 구성하는 노에시스를 분석하는 관점(내실적 분석)과, 노에마를 분석하는 관점(지향적 분석)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평행한다. 따라서 『경험과 판단』에서 범주적 대상을 지향적으로 구성하는 대상들의 종합(노에마)에는, 작용들의 연결(노에시스), 즉 심리적 연결이 평행한다. 그러므로 후설의 평행론에 의하여, 『논리연구』의 범주적 재현 학설은 『경험과 판단』의 시기에도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논리연구』의 범주적 재현 학설은 견지된다. 이 학설은 투겐트하트나 로마가 말하는 문제점을 지니지 않으며, 후설 자신에 의하여 후기에도 유지된다. 그래서 후설이 이 학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는 주변적인 것이라고 짐작된다.
따라서 『논리연구』에서 후설은 범주적 직관이라는 기초적 개념을 성공적으로 정당화한다. 이로써 명제, 의미, 진리, 사건, 집합, 수, 일반적인 것, 개념, 본질, 이름, 주어, 술어, 학문, 과학적 법칙들, 분석적 법칙들, 그 외 경험적이거나 선험적인 법칙들 같은 모든 관념적인 것들을 인식하는 작용들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할 토대가 놓인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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