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有光 散文에 나타난 집의 의미

Abstract

귀유광(歸有光, 1506～1571)은 명대(明代)의 대표적인 산문가이다. 그의 산문은 동시대와 후대의 문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귀유광 산문의 문학사적 위상과 예술적 특성에 대해서 적지 않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는 그의 텍스트 자체에 대한 심층적 분석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에 본고는 소재와 내용에 따른 분류에 치중하는 기존의 연구 방식에서 벗어나 그의 산문 전반을 관통하는 일정한 내적 질서를 밝혀내고자 한다. 본고는 귀유광의 작품에서 집에 대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와 같은 특징은 평생에 걸친 그의 칩거 생활과 관련되어 있다. 먼저 그는 대인 관계에 대한 선천적인 공포증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외출을 몹시 꺼렸다. 여기에 40년간 과거 시험에서 낙방한 경험이 더해짐에 따라 그의 폐쇄적인 성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집에 대한 서술은 이와 같은 전기적 사실의 재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본고는 귀유광의 산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집에 대한 이미지를 분석하고 이를 세 가지 주제로 재구성하였다. 먼저 귀유광의 산문에 나타나는 집은 실패로 점철된 현실에서 도피하는 장소로 묘사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과거 시험에서의 오랜 실패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같은 부정적 현실 속에서 그에게 집은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은밀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는 세상과 단절된 집에서 즐기는 은밀한 휴식을 통해 실패의 아픔을 안분지족의 정서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내밀한 은신의 장소로서 집이 지니는 모성적 속성은 집에 대한 또 하나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모성의 원형으로 가득한 집의 이미지이다. 집과 모성의 결합은 귀유광이 어린 시절 체험한 정신적 외상에 기인한다. 그는 8세에 어머니와 사별하였는데, 이로 인해 결핍된 모성을 갈망하는 무의식은 그의 산문에서 모성 원형의 상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어머니를 향한 그의 간절한 그리움은 어머니가 살아 있던 시절을 넘어 모태에 있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태아의 상태로 회귀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은 집 안 여러 장소에서 자궁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현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귀유광의 산문에 나타나는 자궁 회귀의 욕망은 단순한 퇴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생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집에 대한 서술에서 발견되는 재생의 이미지는 본고의 마지막 주제가 된다. 귀유광에게 집이 재생의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특히 아내와 자녀들은 그가 심리적으로 회복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가 심기일전하여 수험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은 살아 있는 가족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존속들이 자신에게 걸었던 기대를 상기하며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을 재확인했다. 조상들의 유지를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에서 재기에 대한 그의 굳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귀유광의 산문에 보이는 집에 대한 서술에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본고는 집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산문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상징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귀유광의 산문에 나타나는 집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모티프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