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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記를 통해 본 북송 문인들의 원림 향유 양상 : 从杂记看北宋文人享有园林的状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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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노현리

Advisor
오수형
Major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Issue Date
2016-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원림 향유원림기(園林記)북송 문인문인원림(文人園林)시은(市隱)의경(意境)호중천지(壺中天地)시정화의(詩情畫意)문인 교유문인 심미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중어중문학과, 2016. 2. 오수형.
Abstract
본고는 雜記 중 園林記를 통해 북송 문인들의 원림 향유 양상을 고찰해보려는 시도이다. 원림은 산수경관과 건축물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臺閣亭記에서 언급되는 단순한 건축물이나 山水遊記에서 언급되는 자연산수와는 구분되는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그간 원림은 주로 건축학과나 미학과에서 다뤄져왔으며 중문학과에서는 그 공간에 대한 특별한 고찰 없이 원림을 詩文 창작의 소재나 장소 혹은 정원의 동의어 정도로 간주해왔다. 원림 관련 詩는 대개 山水詩의 하위 범주에서 연구되어 왔고, 원림 관련 산문은 臺閣亭記와 山水遊記의 범주에서 다뤄져왔다. 원림 공간에 주목한 일부 연구 역시 《洛陽名園記》와 같은 한 두 편의 巨作만을 다루거나 원림의 성숙기인 明淸 시기를 대상으로 삼아 원림산문의 전반적인 모습이나 文人園林의 발생과 가치에 대해 살펴보기가 어려웠다.
본고는 원림이 문인에게 갖는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북송 시기에 주목하였다. 북송 시기는 문벌귀족이 몰락하고 중소 지주 출신의 사대부 계층이 등장한 시기로, 과거제도를 통해 성장한 그들은 그 어느 시기보다 강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행정체제로 인해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또한 북송 문인사대부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그 계층을 공고히 하면서도 지속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 북송대 예술의 괄목할만한 발전과 상업, 도시의 급격한 발달로 사상적, 물질적 기반이 갖춰지면서 많은 문인들이 원림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본격적인 의미의 문인원림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본고는 북송 문인사대부 27인을 선별하고 그들이 실제로 원림을 造營하고 유람한 기록을 담아낸 32편의 작품을 통해 문인의 원림 향유 양상에 관한 전반적이면서도 심층적인 연구를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기존의 山水遊記나 臺閣樓亭記식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園林記라는 분석 틀을 제시하였다. 원림 관련 산문의 전개와 특징, 구성과 주제 등을 살펴본 결과, 산수유기나 대각정기에 비해 원림기가 私的⋅親交的, 審美的 글쓰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 틀을 바탕으로 본고는 북송 문인사대부의 원림 향유 양상을 4가지 방면에서 고찰하였다. 그들의 생활, 이상, 예술에 초점을 맞춰 실용적, 대안적, 상징적, 역사적 공간으로 분류한 결과, 다음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북송 문인들은 현실 생활과 밀접한 실용적 공간으로 원림을 향유하였다. 문인들은 원림에서 인격과 학문을 도야하고 휴식과 여가를 즐겼으며 다양한 계층과 교유하였다. 북송 문인들은 원림을 지인, 文士들과 詩文을 창작하며 雅集하는 공간으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사방의 빈객과 백성에게 휴식과 遊樂을 제공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하였다.
두 번째로 북송 문인들은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를 해소해주는 대안적 공간으로 원림을 향유하였다. 魏晉시기 竹林七賢이 깊은 산속에 은거했던 것과는 달리, 북송 문인사대부들은 市井에 원림을 만들어 出仕와 隱逸 간의 갈등을 해소하였고 현실에서 좌절된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한편 현실에서의 해방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세 번째로 북송 문인들은 그들의 사상과 감정, 아취를 기탁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원림을 향유하였다. 문인들은 원림공간에 壺中天地를 구현하고 景點題名에 詩情畵意를 추구하였으며 원림경물에 문인의 아취를 기탁하였다.
마지막으로 북송 문인들은 원림을 역사적 공간으로 향유하였다. 그들은 원림의 옛 터를 복원하거나 존경하는 문인의 사상을 원림에 직접 구현하는 방식으로 前人의 정신을 계승하였다. 또한 원림을 통해 자기 집안의 뜻을 대대로 전승하였고 문사들과 그 뜻을 공유하기도 하였으며 역사의 흥망성쇠를 조망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북송 문인사대부들은 원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자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원림을 통해 그들의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 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문인사대부 간의 유대관계를 형성하면서도 대외적으로 폐쇄적이지 않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원림은 북송 문인들에게 자아수양과 은거의 공간이자 與民同樂과 충전의 공간이었으며 그들 계층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관계망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자 그들 집안의 존속과 발전을 꾀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園林記를 통해 북송 문인들의 생활방식과 의식세계를 고찰한 본고의 작업은 雜記文의 연구 영역을 넓히고 文人畵에 비해 그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文人園林에 대해 再考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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