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전후 러시아 성매매 정책의 변화: 질병담론에서 노동담론으로

Abstract

본고는 1917년 혁명 전후 러시아에서 일어난 성매매 정책의 변화가 질병담론에서 노동담론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1843년 러시아 제국은 성병통제를 주목적으로 하는 규제주의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 제도는 성판매 여성을 등록하여 주기적인 성병 검진을 받도록 하였으나 질병통제에 실패했다. 1917년 두 차례의 혁명으로 수립된 볼셰비키 정권은 규제폐지주의 기조 하에 비범죄화를 골자로 하는 법령을 공포하고 탈성매매 지원 기구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비범죄화 법령은 성판매자의 강제노동과 성구매자의 처벌 등의 실제와 괴리를 일으켰고, 탈성매매 기구 역시 자원부족과 성판매 여성의 저항에 부딪혔다. 결국 스탈린의 집권 이후 성판매자의 사회복귀에 목표를 둔 탈성매매 기구는 폐지되었으며 성판매 여성은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기존 연구는 성매매 정책의 변화를 체제의 성격 변화를 통해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 제국의 규제주의 제도는 혁명에 의해 폐지되었고, 혁명의 역동성이 유지되던 1920년대에는 성판매 여성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이 유지되었다. 스탈린의 집권은 전통적 가족제도를 다시 불러들였으며 따라서 성매매 정책 역시 억압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서술은 성매매 문제의 복잡한 성격을 간과하고 있다. 전시공산주의 시기 볼셰비키는 성판매자 여성을 노동이탈자로 간주하였으며, 1920년대 말까지 당 활동가들은 성매매에 대해 도덕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본고에서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성매매 정책이 다면성을 고려하여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성매매 정책의 골자인 공공보건의 증진은 의사들로부터, 규제폐지주의는 제국 말 여성주의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은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국가의 새로운 구성 원리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것은 곧 모든 시민이 성별과 계급에 무관하게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성판매 여성들 역시 소비에트 시민이 되기 위해서 생산적 노동에 종사해야 했다. 전시공산주의 시기와 신경제정책 시기에 성매매 정책의 성격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성판매는 노동이 될 수 없다는 일관된 관점이 존재했다. 높은 여성 실업률이 성매매 정책의 억압적 성격을 약화시켰던 1920년대에 수립된 노동교화소는 이점을 잘 보여준다. 노동교화소는 성병치료소에서 출발하였으나 치료, 교육과 노동 훈련을 통해 성판매 여성을 소비에트 여성 시민으로 개조하려는 기획으로 나아갔다. 이 기구에서도 정책 결정자들과 실무자들은 성판매를 생산적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성판매 여성들에게 새로운 사회의 조직 원리인 노동을 가르치고자 했다. 노동교화소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일부 전업 성판매자에게는 유효하지 않은 전략이었다. 볼셰비키는 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새로운 통치원리에 의해 사회 전반에 도입된 보편적 위생 교육과 보건 정책은 성병을 완만하게 정복해 나갔다. 탈성매매 기구와 여성 고용 증진은 자원 부족과 실업난의 장벽에 부딪혔다. 여성인구 전반의 실업, 더 나아가 빈곤 문제 해결은 산업화 드라이브 이후에나 해결될 문제였다. 그러나 여성노동력의 고용이 본격적으로 증가하는 5개년 계획의 시대에 성판매자에 대한 정책은 다시 한 번 억압적인 방향으로 선회한다. 본고는 이런 변화를 정권의 성격 변화보다 성매매에 대한 일관된 태도 탓으로 해석한다. 소비에트 당국에게 성매매는 여성노동력의 활용과 분리할 수 없는 문제였다. 드디어 성병과 분리된 성매매 문제는 여성노동과 노동시장이 맺는 관계의 일부로 자리 잡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