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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트뵈프 시에서 가난의 의미들 : Sens de la pauvreté chez Rutebe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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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문성욱

Advisor
김정희
Major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Issue Date
2013-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가난도시종글뢰르자기의식이데올로기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불어불문학과, 2013. 2. 김정희.
Abstract
가난은 뤼트뵈프에게 각별한 중요성을 갖는 소재이다. 현실을 관찰하는 그의 시선은 자주 가난의 고통에 주목하고, 개인적 시들은 그것을 시인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이렇듯 자명한 사실에서 출발하는 우리의 연구는 뤼트뵈프의 시에서 가난이 점하는 위상을 밝히고 그 맥락과 효과를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둔다.

뤼트뵈프 당대, 즉 13세기는 교환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가난 문제가 심화되던 때이다. 그 여파는 도시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사회경제적 변화는 이데올로기에도 영향을 미쳐, 대응책으로서 자선 활동과 자애의 미덕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가난뱅이들을 도움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사고와 실천은 이들을 소외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더불어, 궁핍을 죄의 뿌리라 여기는 전통적 관점이 잔존하면서, 자애의 구호 이면에서는 경계와 경멸이 퍼져갔다. 요컨대 연민과 혐오의 양극 사이에서 정작 가난뱅이들은 발언권 없이 대상화, 주변화되고 있었다.
가난을 소외시키는 이데올로기는 뤼트뵈프의 시에서 여러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이 점은 그가 관찰자의 눈으로 주위 현실을 응시할 때 특히 분명하다. 시인은 자애를 찬양하고 인색과 탐욕을 규탄하지만, 가난뱅이들은 결국 시혜의 대상으로 간주될 따름이다(「세상의 상처들」). 그가 가난뱅이들에게 호의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저들의 욕심과 게으름을 질책하기도 하고(「세상의 상태」) 추위로 인한 괴로움을 조롱하기도 한다(「그레브 거렁뱅이들의 이야기」). 어떤 시에서도 뤼트뵈프는 동시대의 일반적 태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탁발수도회를 겨냥한 논쟁시에서도 가난 소재는 큰 역할을 한다. 그는 한편에서, 가난을 타락과 연결짓는 흔한 사고방식에 기대어, 탁발수사의 가난이란 미덕 아닌 악덕의 징표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 그는 저 거짓 가난뱅이들에 의해 피해를 입는 진짜 가난뱅이들의 처지를 개탄한다. 가난에 대한 불안과 의혹은 대중이 흔히 느끼는 감정이었기에, 뤼트뵈프는 여기에서 전략적으로 유용한 논거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난은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다. 가난뱅이들을 대변하는 것은 뤼트뵈프의 소관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 본 시들로부터 가난의 다른 의의를 끌어낼 수도 있다. 내용의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뤼트뵈프의 현실 묘사에서 가난이 그토록 자주 다루어진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사적이기 때문이다. 부(富)를 기준으로 사회를 분할하는 13세기 도시에서 가난을 향한 유다른 관심은 현실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증명한다.

타인의 가난을 바라보던 뤼트뵈프의 시선은 개인적 시들에서 자기 자신에게 적용된다. 그는 여타 가난뱅이와 똑같은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시인이 고백하는 불행의 일화들을 순전한 자전적 기술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뤼트뵈프가 불행의 책임을 우선 자신의 과오에, 즉 노름, 술, 잘못된 결혼에 돌릴 때(「겨울의 그리에슈 노름」, 「여름의 그리에슈 노름」, 「뤼트뵈프의 결혼」), 여기에서는 하나의 전통적 토포스를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 토포스는 시인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종글뢰르(jongleur)로서 뤼트뵈프는 청중의 연민을 자극하면서도 즐거움을 줄 만한 이야깃거리를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그는 가난뱅이 바보의 역할을 연기하면서, 당장의 현실에 짓눌린 자기 자신의 희망 없는 무력함을 부각시켜 스스로를 조롱한다. 하지만 시인의 결핍을 매개로 하여 현실의 구체적 상황이 시 속에 스며들 때, 시에는 역설적으로 더욱 풍요로운 정경이 만들어진다.
개인적 시들은 온순한 하소연에 그치지 않는다. 뤼트뵈프는 여기서 자신의 곤궁을 이야기할 뿐 아니라 사회를 향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자애의 상실을 한탄하는 비판의 내용은 새롭지 않지만, 가난뱅이의 시점과 목소리는 시의 기법을 다채롭게 하면서 상투어에도 새로운 힘을 부여한다. 그는 1인칭과 3인칭 사이의 시점 전환을 통해 가난뱅이의 사소한 경험을 일반적 예화로 변모시키고(「겨울의 그리에슈 노름」), 가난뱅이의 거친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충격효과에 힘입어 자신의 괴로움을 표현한다(「뤼트뵈프의 평화」). 세상의 구석에 처한 가난뱅이가 보편적 진리를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말은 체험에 바탕을 둔 독특한 진실성을 갖는다. 또한 가난뱅이를 변두리로 배제하던 당대 도시에서, 시인의 비좁고 비뚤어진 시야는 파편화된 세상의 이면을 직시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수단이 된다(「뤼트뵈프의 비탄」).
자기조롱과 사회비판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개인적 시들은 시인의 자기의식을 드러난다. 세상에 공격을 퍼붓다 말고 가난뱅이다운 겸손한 태도로 타인의 도움을 청하는 뤼트뵈프는 자신의 시에 청원서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뤼트뵈프의 비탄」). 하지만 그의 겸손은 양가적이다. 그는 종글뢰르로서 살아온 과거를 참회하기도 하지만(「뤼트뵈프의 회개」), 생계를 위해 시를 지어야 하는 옹색한 처지를 핑계 삼아 종글뢰르를 향한 종교와 사회의 단죄를 피하려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구원의 가능성을 남기고자 애쓰며, 시라는 하찮은 노동에도 최소한의 존재 자격이 부여되기를 희망한다(「뤼트뵈프의 결혼」).

「뤼트뵈프의 가난」은 이 가난뱅이 시인의 온갖 면모를 집약하는 사례이다. 또한 여기에서는 가난뱅이의 목소리가 시적 언어에 미치는 영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 목소리가 아노미나티오(annominatio)와 같은 기성의 수사 규칙을 동요시키며 무람없는 말장난으로 빠져들 때, 그것은 세상의 질서와 시인 사이의 격절을 암시한다. 자신을 배제하는 세상을 유쾌하게 풍자하면서, 그는 동시에 종글뢰르로서의 죄의식과 불안을 드러낸다. 이 모순은 규범에서 일탈하는 부정합의 시구들로 표현되고, 그 결과 하나의 시적 혁신을 만든다.

뤼트뵈프의 시에서 가난의 모습은 단일하지 않다. 그는 이데올로기에 침윤된 토포스를 반복할 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반복의 과정 속에서 시인은 토포스를 변주하여, 그것이 현실의, 또 시인 자신의 해결 불가능한 모순을 가리켜 보이도록 한다. 이데올로기의 제약은 시의 자원이 된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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