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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본 총동원론의 형성과 전개 : 1920年代日本の総動員論の形成と展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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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안재익

Advisor
박 훈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3-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전간기일본 육군총력전총동원 체제총동원론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동양사학과, 2013. 2. 박훈.
Abstract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 후, 일본은 육해군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연구에 착수하였다. 특히 육군의 경우 臨時軍事調査委員을 설치하여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각국의 제도, 교육, 위생, 전술, 병기 등에 대해 상세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육군의 1차대전 연구 가운데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각국의 군수 동원을 중심으로 한 동원제도에 대한 연구였고, 이들 연구의 성과는 거의 동시에 육군 전체에 공개되고 전파되어, 총동원론의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총동원론은 대규모 병력의 동원을 핵심으로 하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대비책이었다. 대규모 병력이 소모할 막대한 군수품의 생산을 위해서는 풍부한 자원과 높은 수준의 산업 생산 능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지 못한 일본의 상황에서, 대규모 물량전을 실시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구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육군은 해외의 자원을 확보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한편,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전쟁에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강력한 통제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통제 체제가 戰時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 강화를 촉진하고 부족한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平時부터 작동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 일본 총동원론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동원 체제의 구축, 통제의 강화가 주장되었다고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통제의 주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명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통제의 목적이 결국 전쟁의 수행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군부가 이와 같은 통제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점이다. 총력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양상이 단순한 군사력의 경쟁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이 투입되는 전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가 내 모든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육군은 대중군의 동원을 중심으로 한 총력전의 수행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총력전의 수행을 가능하게 할 동원 체제의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원 체제의 구축은 결국 육군이 軍事라는 고유한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인다.
총동원론 속에 내포된 이러한 육군의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1920년대의 동원 체제의 구축 과정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20년대 초반 군축 여론의 沸騰과 동원 중앙 기관의 폐지 등 상당한 장애에 부딪친 육군은 동원 체제의 구축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정부 내 다른 부처에 대해서도 저자세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한 차례 폐지된 동원 중앙 기관을 부활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군축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 역시 총동원론이 일본 사회 내에 자리잡는 과정의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총동원론은 육군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만을 담고 있었던 주장은 아니며, 오히려 총력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양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국방론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육군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가 수반된 점에 충분히 주목할 필요는 있지만, 1920년대의 맥락에서 이를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총동원론은 등장과 동시에 일본 사회에 전격적으로 수용되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것의 전파는 20년대 전반에 걸쳐 복잡한 양상을 띠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동을 겪으며 총동원론의 전개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과정이 결국 30년대 이후 육군의 파시스트化와 연관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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