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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 南京國民政府의 金換本位制 도입 시도와 그 의미
1930年代初期南京国民政府导入的金本位制及其意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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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주형준
Advisor
김형종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3-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關稅海關金單位金換本位制케머러 위원회宋子文에드윈 월터 케머러(Edwin Walter Kemmerer)幣制改革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동양사학과, 2013. 8. 김형종.
Abstract



본고는 南京國民政府 시기 金換本位制 도입 시도를 海關金單位制度를 통해 검토한 글이다. 南京國民政府는 1930년 2월 1일부터 1948년 8월 19일 金圓券 개혁까지 해관세 징수단위를 금폐(금단위)로 징수하는 海關金單位制度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화폐가치가 불안정한 시기 해관세수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선행연구에서는 케머러 위원회가 제출한 금환본위제 폐제개혁안의 본위화폐 孫과 海關金單位의 공통점에 着目하여 케머러 위원회의 영향력을 想定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재정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海關金單位制度의 폐제개혁적 성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28년 全國經濟會議와 全國財政會議에서 南京國民政府는 금환본위제 도입을 폐제개혁의 최종단계로 설정하고, 준비단계로 廢兩改元을 실시하는 先廢兩改元, 後金換本位制를 결정하였다. 1928년 회의에서 결정된 재정ㆍ경제정책은 범위와 정도에 차이는 있더라도 일정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폐제개혁과 관련된 사항에서는 불안정한 정국으로 실시되지 못하였고, 특정 외부조건이 형성되는 1933년에야 비로소 폐량개원이 실시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국제 金換本位制가 붕괴하는 상황에서 실시한 廢兩改元은 金換本位制 도입을 위한 준비단계의 성격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선행연구에서는 大恐慌의 여파로 실시될 수 없었다고 언급할 뿐, 금환본위제 도입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不在한 상황이었다.
금환본위제 도입 문제는 케머러 위원회를 재검토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였다. 1928년 회의에서 결정된 재정ㆍ경제정책 방침은 1928년 8월 세계적인 금환본위제 폐제개혁 전문가 에드윈 월터 케머러(Edwin Walter Kemmerer)와 접촉으로 이어졌다. 1929년 2월 구성된 케머러 위원회는 폐제개혁 건의안인 「점진적 금본위제 도입법 계획안」(이하 「도입법」)과 海關金單位制度 건의안인 「해관수입세 금본위화폐 징수법 계획안」(이하 「징수법」)을 제출하였다. 본고에서는 선행연구에서 주목하지 못하였던 「징수법」을 통해 海關金單位制度의 금환본위제 폐제개혁적 성격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1928년 회의에서 1933년 廢兩改元에 이르는 시기 명확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는 南京國民政府의 폐제개혁 추진 과정을 밝힐 수 있고, 이를 통해 南京國民政府 폐제개혁사의 정책적 연속성을 재검토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케머러 위원회가 건의한 폐제개혁 방식은 廢兩改元을 생략한 직접도입방식에 의한 금환본위제 도입이었다. 그리고 省을 단위로 개혁범위를 확장해 가는 점진적 방식이었다. 액면가치와 소재가치가 다른 신용화폐(孫幣)를 주조ㆍ유통하는 금환본위제의 특성상 점진적으로 지역을 확대하는 방식은 폐제개혁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폐제개혁 과정에서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廢兩改元의 실시 여부를 두고 케머러 위원회와 재정부장 송자문의 폐제개혁 방침에 차이가 발생하였다.
1920년대 국제은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에서 1929년 大恐慌을 前後로 급락하면서 중국의 화폐가치(은폐가치)가 폭락하게 되었다. 화폐가치 하락은 외채ㆍ배상금 상환 과정에서 환차손을 발생시키고, 關餘 감소로 이어져 재정손실을 유발하였다. 케머러 위원회는 關平銀 가치를 금 가치로 고정하여 銀幣로 징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징수법」을 제출하였다. 「징수법」에서는 점진적으로 폐제개혁 범위를 확대하는 「도입법」의 특성상 금환본위제 도입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환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사용할 것을 명시하였다. 하지만 南京國民政府는 「도입법」을 번역하여 공개한 반면, 「징수법」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海關金單位制度는 「징수법」이 아닌 「도입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에 따라 海關金單位制度의 폐제개혁적 성격에 주목하지 못하고, 南京國民政府가 변용하여 재정수입 증가를 위해 실시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송자문은 1928년 회의에서 결정된 先廢兩改元, 後金換本位制의 폐제개혁 방침을 유지하고 있었다. 1929년 5월 「징수법」 초안에 대해 송자문은 실시 불가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1929년 6월을 전후로 변화하게 된다. 同年 7월 송자문은 케머러 위원회에서 제시하는 직접도입방식에 따라 1930년 6월 혹은 7월 廣東省에서 금환본위제 도입을 시작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어서 케머러 위원회는 1929년 10월 「징수법」 및 理由書를 제출하였다. 南京國民政府는 금환본위제 폐제개혁의 준비단계로 1930년 1월 15일 海關金單位制度의 실시를 공포하였다. 케머러 위원회가 제출한 「도입법」과 「징수법」은 폐제개혁 실시 절차상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南京國民政府는 「징수법」에 의거하여 海關金單位制度를 실시하였고, 결국 海關金單位制度의 실시는 「도입법」의 실시를 의미하였다.
송자문의 입장이 변화한 직접적인 원인은 1929년 大恐慌을 전후로 한 국제은가의 폭락에 있었다. 은본위제 이탈과 금환본위제 도입에 딜레마는 중국이 은본위제 국가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은 수요국이었고, 또한 대량의 은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20세기 국제은가는 과대한 누적 공급량에 기인하여 수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금환본위제 도입은 국제은가의 추가적인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었다. 송자문은 이를 명확히 인식하였다. 송자문이 「징수법」에 따라 海關金單位制度를 실시하였으면서도 孫 대신 海關金單位라는 명칭으로 바꾼 것은 금환본위제 도입을 천명할 경우 초래하게 될 국제은가의 붕괴를 피하고자한 것이었다. 「도입법」은 액면가치와 소재가치 차이(33%)나는 신용화폐를 주조ㆍ유통하였고, 폐제개혁 과정의 廢貨銀은 다시 주조용도로 흡수할 수 있었다. 宋子文과 孔祥熙가 국내 생산력 회복을 중요하게 지적한 것도 廢貨銀의 재흡수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었다.
金貴銀賤 현상의 심화로 각계에서는 금ㆍ은 거래통제 및 수출입 제한정책을 제출하여 은폐가치를 유지할 것을 건의하였다. 하지만 상해 금업교역소의 금 거래는 환위험 관리 및 환율 조정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투기매매와의 구별이 쉽지 않았다. 또한 은 수입 금지안과 은 수입세 징수안은 중국의 은폐가치 결정 과정에서 국제은가의 영향을 단절시킨다는 것이었다. 송자문은 중국 화폐가치 문제가 국제시장과의 단절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금ㆍ은 거래통제 및 수출입 제한정책은 금본위제 국가에서 실시할 수 있는 정책으로 은본위제 중국에서는 절대 실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폐제개혁 실시 예정인 1930년 6월을 전후로 전환되었다. 송자문은 同年 5월 불과 2-3달 전까지 절대 실시 불가 입장이었던 금 수출 금지안, 외국 은폐 수입금지와 은 수입세 징수의 실시를 결정하였다. 송자문은 이러한 태도변화의 이유를 금환본위제 폐제개혁 실시 과정으로 설명하였다. 그의 설명대로 南京國民政府의 금환본위제 폐제개혁은 同年 7월 법률적인 준비를 마친 상태로 폐제개혁 시행일 발표만을 앞둔 상태였다. 하지만 1930년 추가적인 은가폭락으로 폐제개혁 시행일 발표는 지연되었다. 1931년 6월 금환본위제 폐제개혁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全國幣制委員會를 설립하였지만, 1931년 9월 국제 금환본위제가 붕괴하기 시작하며 금환본위제 도입 시도는 포착되지 않는다. 南京國民政府의 금환본위제 도입 시도는 좌절되었지만 海關金單位制度는 계속 시행되었고, 환율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재정 수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제어: 關稅, 海關金單位, 金換本位制, 케머러 위원회, 宋子文, 에드윈 월터 케머러(Edwin Walter Kemmerer)

학번: 2010-20040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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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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