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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ier van der Weyden's Sculptural Painting: Fifteenth-century Art Market and Painter's Strategy in De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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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남지현
Advisor
신준형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Issue Date
2014-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로지에르 반 데어 바이덴십자가 강하제단조각매장 조각 군상미술 시장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 2014. 8. 신준형.
Abstract
1435년, 로지에르 반 데어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 1399/1400-1464)은 뢰벤(Leuven)의 석궁수 길드의 주문으로 (1435)를 제작한다. 는 로지에르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후 같은 주제를 다루었던 화가들에게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섬세한 인물 묘사와 감정 표현뿐 아니라, 조각과의 유사성으로도 주목받았다. 많은 선행 연구들이 와 조각과의 연관성을 언급했으나, 그 이면에 있는 작가의 의도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따라서 본 고는 의 조각적 재현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사회 경제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제단화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널리 제작되었던 제단조각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철(凸)자 프레임, 풍경이 생략된 막힌 배경, 좁은 공간에 빽빽히 들어찬 인물 배치, 트레이서리(tracery) 모티프는 15세기 네덜란드 제단조각의 특징이다. 한편, 작품의 화면 구성은 당시 프랑스와 남 네덜란드 지역에서 널리 제작되던 매장 조각 군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도상적으로도 는 전통적인 십자가 강하 보다 매장에 더 가깝게 묘사되었다. 따라서 로지에르의 는 형식에 있어서는 제단조각을, 화면 구성과 장면의 재현에 있어서는 매장 조각 군상을 참조하여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각을 모방한 로지에르의 회화 작품은 가 처음이 아니다. 로지에르의 초기작인 두 (1432)는, 당시 널리 제작되던 소형 채색 조각상을 연상시키록 좁은 벽감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형식의 회화는 브뤼셀 미술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다지기 위한 화가의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로지에르는 1432년 투르네(Tournai)의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 문하에서 도제과정을 마친 뒤, 1435년 무렵 브뤼셀로 이주했다. 그러나 당시 네덜란드 시각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던 브뤼셀에는 이미 많은 수의 화가와 조각가가 거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로지에르는 시장경쟁력을 획득하기 위하여 조각적 회화 를 상품으로 내세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로지에르가 차별화 전략으로 조각을 선택한 것은, 당시 조각이 패널화보다 상대적으로 더 값비싸고 고급한 매체로 인식되었으며, 종교 미술품으로써도 회화보다 더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각처럼 묘사된 패널화는 조각보다 저렴하면서도 조각이 가지는 이점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값비싼 조각을 구입할 수 없는 구매자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트롱프뢰유(tromp loeil) 회화에 대한 당시의 선호 또한 조각을 모방한 회화 작품이 미술시장에서 성공한 요인 중 하나로 생각된다.
의 조각적인 특성은 로지에르가 단기간에 시립화가의 지위를 얻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브뤼셀이 브라반트(Brabant)의 중심 도시로 부상함에 따라 시청사 건물이 증축되었고, 시 당국은 시청사 장식을 맡아 줄 시립 화가를 필요로 하였다. 로지에르의 는 화가가 회화 뿐만 아니라 조각의 재현, 또는 조각의 디자인에도 능하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이러한 특성은 브뤼셀 시 행정 담당자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의 조각적인 외형은, 화가 자신뿐 아니라 작품의 후원자에게도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는 뢰벤의 석궁수 길드가 주최하는 대규모 사격 대회를 기념하여 길드 소유의 채플 주제단에 봉헌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행사 예산과 관련하여 지원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석궁수 길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주제단에는 제단조각을 봉헌하는 것이 전통적이었으나, 길드는 값비싼 제단조각 대신 제단조각을 모방한 제단화를 구입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이점은 뢰벤의 대형 길드가 뢰벤의 시립화가가 아닌 브뤼셀의 신인화가에게 제단조각 대신 제단조각처럼 보이는 제단화를 주문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로지에르 반 데어 바이덴의 는 패널 위로 옮겨진 조각, 이른바 조각적 회화로써, 조각이 우위에 있던 당시 미술시장에서 화가가 빠르게 성공하고, 나아가 시립화가의 지위를 얻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의 조각적 성격은 브뤼셀에서 빠르게 입지를 다지고자 했던 화가의 전략과 재정 문제를 효율적으로 타파하고자 한 주문자의 요구사항이 부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Language
English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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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rchaeology and Art History (고고미술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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