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화가 부부의 수행적 정체성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오세현
Advisor
김영나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잭슨 폴록리 크래스너수행적 정체성냉전 이데올로기젠더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2014. 2. 김영나.
Abstract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리 크래스너(Lee Krasner)는 1945년부터 1956년까지 뉴욕 미술계에서 함께 활동한 화가 부부이다. 미국의 현대 미술에서 손꼽히는 두 화가의 파트너십은 개별 화가에 대한 연구 이상으로 주목되어야 할 중요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두 화가의 성숙기 양식으로 평가되는 폴록의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 크래스너의 리틀 이미지(Little Image), 콜라주(collage) 시리즈와 화가로서의 페르소나는 결혼 전후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두 화가의 1945년 이후 부부로서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본 논문은 당대의 평가에서 최근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성 역할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폴록과 크래스너의 화가로서의 이미지와 작품 연구에 무리 없이 부합하면서, 화가 부부가 미술사에서 일방향적 영향관계라는 한정된 모습으로만 비춰진 점에 문제의식을 갖고 진행되었다. 그 이면에는 두 화가가 정형화된 남편과 아내 역할을 수행(performance)한 과정이 존재했다는 점이 본 논문의 제안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구축된 부부의 이미지가 두 화가 모두 미술계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모태가 되었으며,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며 화가 부부로서 실천한 대안이었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화가 부부의 활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사회적 성을 의미하는 '젠더(gender)'와 이를 수행하면서 구축되는 '정체성(identity)'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화가의 젠더 정체성은 고정된 역할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통해 미술계라는 공간 안에서 극화(劇化)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가 부부라는 특수한 관계는 회화적 측면 뿐 아니라 사회적 배경까지 입체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대공황 시기부터 2차 대전까지 축적되어온 남성성의 위기의식이 냉전 시기 대중 심리학, 문화 비평, 필름 누아르, 예술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타자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정당하게 하고, 여성에게 복종과 유순함을 재확인하면서 남성의 정체성에 영웅적인 속성을 부여하고자 한 문화적 논리가 예술계 전반에 지배적인 경향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 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은 여성과 동성애자들의 경향이라는 사회적 관념이 당시 미술계의 남성 비평가와 화가들을 위협하였다.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작품 평가에 있어 메이저 아트(major art)를 남성 화가의 내적 시험의 장이자 여성적인 특성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미술계에 형성된 젠더와 작품 가치의 연계는 남성 화가들에게 영웅적이고 강력한 남성의 이미지를 고무하였다.
여성 화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남권주의적 미술계에 대응하였는데, 남성성이 거칠게 수행되는 공간으로 스스로를 위치시켰던 일부 여성 화가들은 그들의 젠더를 무효화 하거나 남성성의 기표를 전유(appropriation)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대체로 이들의 독창성을 의심하며 이들을 공식적인 화가로 여기지 않았다. 반면 크래스너와 같은 화가의 경우 전통적인 젠더 스테레오타입에 따라 남성의 시각에서 합의된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기도 하였다.
폴록과 크래스너는 결혼 생활에서 얻은 정서적 안정과 화가로서의 민주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부부로서 함께 활동하면서 점차 위와 같은 젠더화된 평단에 발맞추어 남성과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을 적극적으로 선전하였다. 시대의 규범이었던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에 동조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크래스너도 폴록과의 결혼 전후를 기점으로 자기 설정에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다. 폴록과 함께 생활하면서 크래스너의 작품 제작량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화가로서의 활동이 소극적이었던 점은 1930년대 초 대담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자화상, 사진의 이미지와도 매우 대조적이다.
사회적 관념에 의도적으로 부응하는 것은 두 화가의 공동 전시 활동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두 화가가 함께 참여한 대표적인 전시인 1949년 《예술가들: 남성과 아내(Artist: Man and Wife)》는 화가 부부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지속적으로 두 화가가 함께 전시에 참여하면서 활기 넘치는 물감의 흔적을 가시화한 드립 페인팅과 비교적 작은 스케일로 촘촘한 구성을 띄었던 리틀 이미지 시리즈를 공적 영역에 반대항으로 제시하는 것은, 화가로서의 페르소나를 남편과 아내로서 더욱 강화하는 측면이 있었다. 특히 크래스너는 리틀 이미지를 단독으로 출품하지 않고 리틀 이미지로 개인전을 열고자 한 제안을 거절하면서까지 폴록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되는 것을 선호하였다.
두 화가의 정형화된 이미지는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하나의 상징이 되어갔다. 매체에 실린 화가 부부의 내밀한 삶에 대한 묘사는 권위적인 남편 폴록의 모습과 요리를 만드는 크래스너의 가정적 역할이 두드러지도록 한다. 또한 두 화가의 사진에서 폴록은 스튜디오를 지배하는 중심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제스처의 연속성을 그대로 시각화하며 제작 과정의 역동성을 전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크래스너는 걸작을 낳는 창조적인 남성의 공간에서 여신 같은 포즈로 남성 화가의 뮤즈가 되어 수동적인 역할로 나타난다.
남성성, 여성성이라는 역사적 개념이 당대 평단에 의해 작품에 있어서도 이분화된 관계로 정립되었고, 폴록과 크래스너의 작품에서도 젠더의 기표로 극화되었다. 그러나 크래스너가 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에서 일탈하는 실험적 작품들을 파기하거나 재활용하면서 작품의 젠더 기표를 일관되게 통제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면, 폴록의 작품에는 간헐적으로 남성성의 메타포를 깨뜨리는 전복적 기표가 드러난다는 차이가 있다. 이는 개인적 기질과 화가로서의 개성을 넘어선 젠더 역할의 수행, 체제와의 동일시에서 기인한 갈등이 작품에서 저항의 징후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급진적인 추상 미술을 남성성이 실행되는 장소로 보는 것은 특수한 역사적 문맥이 만들어낸 믿음이었으며, 그 논리를 생산한 주체 또한 미국의 남성 비평가들이었다. 폴록은 분명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남성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드립 페인팅의 사회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폴록은 드립 페인팅 작업이 한창이었던 1948년, 드립 페인팅의 한 가운데를 오려내거나 덧붙이는 콜라주/데콜라주 작품을 제작하여 평단을 당혹시키기도 했다. 드리핑 기법이라는 극화된 행위 이면에는 보다 재현적이고 구상적인 작품을 제작하고 싶어한 폴록의 예술적 의지가 꾸준히 이어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폴록은 데콜라주 작품들에 매우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자신의 위치를 수호하고자 했던 사회적 욕구와 이에 기인한 내적 갈등을 반영한다. 또한 1950년 이후 본격적으로 구상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이래 비평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불편해할 것이라며 두려워하기도 했다. 이에 크래스너도 데콜라주에 대해, 폴록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그의 액션 화가(action painter)로서의 면모를 함께 수호하려 하였다. 즉 폴록의 드립 페인팅은 미술계의 젠더 의식 내에서 극화된 예술적 결과물이며, 아내의 작품과의 관계가 이를 강화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크래스너의 경우, 폴록을 비롯한 가까운 동료 화가들이 그녀의 작품 활동을 독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이후 전시 활동에 소극적이었으며, 주로 집안에서 소규모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1948년 가구 전시회에 출품했던 크래스너의 모자이크 테이블과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한 리틀 이미지 시리즈의 격자 구조, 리드미컬한 작은 색면의 배열은 같은 시기 폴록의 드립 페인팅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여성 화가로서의 감수성과 가정적인 아내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측면이 있다. 그린버그는 부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리틀 이미지를 요리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1953년부터 제작된 콜라주 시리즈에는 폴록의 1950년대 구상 회화가 포함되었는데, 이는 침체기를 겪던 폴록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크래스너는 자신의 작품과 폴록의 버려진 작품들을 모아 콜라주를 제작하였으며, 평단의 호평을 폴록의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오려내고 덧붙여진 콜라주의 외양과 질감은 폴록의 드립 페인팅과 유사해 보인다. 찢겨진 드로잉 조각들은 제작 과정의 물리적 행위를 가시화하며, 제스처를 통해 뻗어나간 물감의 흔적처럼 확산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콜라주는 결과적으로 남편에게 종속된 아내로서의 정체성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실추된 폴록의 권위를 바로 세우는 데 기여한 셈이다.
폴록은 미술계에서 합의된 남성 화가의 규범, 권위적인 남편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였고, 비평가들의 이해관계에 적합했던 그의 급진적인 추상 미술은 화가로서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크래스너도 냉전 시기 사회에서 요구한 이상적인 여성,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였고 화가로서의 이미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로 폴록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이른 시기 대형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질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성에게 배타적이었던 미술계에서, 크래스너의 새로운 페르소나의 내면화는 파트너십을 우선으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시대의 시공간에 적응한 대안적인 선택으로 보여진다.
본 논문은 기존의 화가의 전기, 연구 논문의 비평 언어를 재조명하고 학문적으로 배제되어 온 사안들에도 중점을 두어, 이를 통해 두 화가의 커리어와 작품을 동반자적 삶에서 시작한 역사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폴록과 크래스너의 목표가 각자의 예술적 기질과 개성을 발휘하기보다 파트너십을 통해 안정적인 위치를 구축하는 것이었다는 점은, 두 화가에게 미친 부부로서의 삶의 영향력을 발견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나아가 그간의 미술사에 존재해온 많은 화가 부부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 수 있기를 바란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275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rchaeology and Art History (고고미술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고고미술사학과)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