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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성화로서의 <모세의 발견>: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그림 속 그림 연구
Hidden Epiphany in Moses Disguise: A Study on The Finding of Moses within Paintings by Johannes Verm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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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한지희
Advisor
신준형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요하네스 베르메르모세의 발견그림 속 그림에피파니예형론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2017. 2. 신준형.
Abstract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c.1632-c.1675)는 17세기 네 덜란드의 대표적인 장르화가이다. 베르메르가 말년에 그린 (1668)와 (1670-71) 두 점에는 그림 속 그림으로 동일한 이 등장한다. 그림 속 그림 (Picture-within-a-picture)은 17세기 장르화에 빈번히 등장했던 모티프 로, 그림 액자나 지도같이 화면 속에 또 다른 화면을 제시하는 구성 요소 를 가리킨다. 이 모티프는 보통 전경의 내용을 해석하기 위한 실마리로 이 해된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베르메르의 작품 총 36점 중 21점에 회화 작 품이나 지도의 형태로 그림 속 그림 모티프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베르메 르가 그림 속 그림 모티프를 무척 즐겼음을 증명한다. 지금까지 베르메르 연구자들은 그의 화면 속에 나타난 그림이 누구의 그림이며, 작품 전체를 고려하였을 때 이것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만 집중했을 뿐 모티프 그 자체에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본 연구는 베 르메르의 그림 속 도상에서 보이는 독특함에 착안하여, 기 존의 연구방식이 소홀히 다루었던 그림 속 그림의 도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구약성경 탈출기 2장에서 전해지는 모세의 발견은, 파라오의 명령으 로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에 처한 모세가 누이의 기지로 강물에 흘려보 내졌다가 때마침 강가에 목욕을 하러 나온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가 까스로 회생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빈번히 그려졌 던 주제이다. 모세의 발견 그림은 대개 이집트의 공주가 하녀를 시켜 아 기를 물에서 막 건져 올리는 장면을 포착하였다. 이와 달리 와 속 에 묘사된 이집트 공주는 무 릎으로 아기 모세를 받치고 두 팔로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의 상을 연상시킨다. 본 연구는 베르메르의 삶과 그가 살았던 17세기 네덜란드 사회의 문화적 토양을 고려했을 때 화가의 두 작 품 속 이 성모자 에피파니로 이해될 수 있음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숨겨진 에피파니로 이해할 때 전체 그림의 해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였다.
베르메르의 화면에 성경 속 인물인 모세가 그려질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당대 네덜란드 공화국(Dutch Republic)의 종교화 제작 양상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모세라는 인물이 당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네덜란드 공화국은 1568년부터 1648년까지 80년의 긴 세월 동안 저지대 국가에 속한 여러 개의 주들이 에스파냐 제 국에 맞서 투쟁한 끝에 맺은 결실이다. 16세기 에스파냐 제국의 펠리페 2 세(Felipe II el Prudente, 1527–1598) 치하에서 높은 세금과 종교적 탄 압을 견뎌내던 네덜란드 지역은 1568년 오라녜 공 빌럼(Willem de Oranje, 1533-1584)이 일으킨 봉기를 계기로 80년 전쟁(Eighty Years War)에 돌입하였다. 이는 네덜란드의 정치적, 종교적 독립을 도모하는 독 립 전쟁으로, 이 무렵 중부 유럽 지역에서 교세를 확장하던 프로테스탄트 들의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과 맥을 같이 하였다.
그러나 각 주마다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에 17개 주 연합체를 결성하 지는 못하였다. 그 중 가장 독립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던 북부 7개 주 만이 합심하여 1581년 에스파냐 제국으로부터 공식적인 독립을 선언하였 다. 독립과 함께 프로테스탄티즘, 그 중에서도 이미지에 가장 엄격한 태도 를 취했던 칼뱅주의가 공화국의 공식 종교로 선포되었다. 성경 속 인물이 나 사건을 소재로 한 이미지, 특히 예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그린 이미지는 프로테스탄트 교리 상 결코 환영 받는 장르가 아니었다. 가톨릭의 교부들 은 종교적 수행에서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함을 인정하며 이를 적극적 으로 제작, 배포하였던 반면,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는 성경 말씀을 가장 중 시하며 신자들이 일상에서 그 말씀에 충실할 것을 가르쳤다. 종교 개혁가 들은 특히 모세가 신으로부터 받은 10계명 중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을 근거로 성삼위(聖三位)와 성모를 포함한 모든 성인들의 이미지 제 작을 엄격히 금하였다. 따라서 종교화는 공개된 장소, 특히 교회에서 자취 를 감추게 되었고 새로이 그려지는 수도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종교화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당시 모세 이야기를 주제로 한 그림들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이는 모세가 당대의 네덜란드가 처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인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신앙의 중심에 두었던 프로 테스탄트 신자들에게 신의 말씀을 직접 들은 최초의 인물 모세는 교리의 핵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또한 파라오의 폭정에서 민족을 구하 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운 모세의 이미지는, 스페인으로부터 네덜란드를 독립시키고 공화국을 세운 국부 오라녀 공 빌럼에게 꼭 들어맞았다. 최초 의 항해자이자 인도자이기도 했던 모세는 무역을 위해 위험한 항해도 무 릅써야했던 네덜란드 상인들에게 수호성인처럼 여겨졌다. 따라서 당대 모 세를 주제로 한 문학이나 이미지가 많이 만들어졌다. 모세 이야기 중에서 도 모세의 발견은 작품의 단골 주제로 다뤄졌는데 이는 이 사건이 일어 난 장소가 목욕 터이므로, 나체의 여인을 그리는 면서도 이를 성경의 이야 기로 포장할 수 있는 좋은 주제였기 때문이다. 모세 이야기, 그리고 모세 의 발견은 당대 사회, 문화계에 이미 널리 퍼져있던 주제였으니 베르메르 가 을 화면에 넣은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베르메르가 모세의 상에 예수의 상을 투영할 수 있었던 근거는 기독교 신학 이론인 예형론(Typology)을 통해 구체화된다. 예형론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내용이 단절된 내용이 아니라 연장선상에 있음을 주장하는 신 학 이론으로, 이에 따르면 구약성경의 인물 또는 사건은 신약성경의 예수 와 그가 행한 일들로 대체되며 이를 통해 완전해진다. 초기 기독교회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예형론은 중세 교부들에 의해 체계화된 후 지속적 으로 교회 내에서 인기를 끌었고, 종교개혁기 칼뱅주의 사회에서도 크게 유행하였다. 프로테스탄트 교부들은 성경을 종교적 의례의 핵심으로 여겨 성경 그 자체에 집중할 것(Scripta sola)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성경 말씀 을 근거로 논증을 풀어나가는 예형론을 강력히 옹호하였다. 또한 예형론은 역사적으로 기록된 실체가 있는 사건에 근거를 두었으므로, 모호한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여 모두가 제대로 성경 말씀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리하여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프로테스탄트 교리에 알맞은 성경 해석 방법으로 써 예형론은 교부들의 설교나 성경 주석서에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모세는 대표적인 예수의 예형으로, 그의 삶은 예수의 삶과 상당히 유사 하다. 특히 베르메르의 그림 속 그림이 다루는 유아기에서 유년기에 일어 난 사건들은 예형론적 시각을 잘 드러내는 예이다. 모세와 예수 둘 다 영 아 살해령이 내려진 시기에 태어나, 탄생 직후 죽을 고비에 처했다. 그리 고 여성 조력자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그들의 보살핌 아래 장성하 여 각자의 소명을 무사히 이루었다. 예형론에 따르면, 두 인물의 삶에 보 이는 이러한 공통점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모세의 삶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은 훗날 예수가 겪을 사건의 미리 보기이며, 예수의 삶에서 재 현됨으로써 궁극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따라서 모세의 탄생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모세를 예수의 예형으로 받아들이고, 구약성경의 내용을 신약성 경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게 된다.
종교적 이미지를 그리는 일종의 회화적 전통으로서, 또는 신학 이론으 로서 베르메르는 서적이나 화가 수업을 통해 예형론적 아이디어를 접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해한 예형론을 그림 속 그림이라는 방식으로 통해 자신의 화면에 구현함으로써 이 모티프를 이용하여 그림 전체의 주제에 새로운 해석을 더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그의 그림에서 모세 와 예수를 잇는 예형론적인 관점은 예형과 대형이 되는 두 인물의 이미지 를 병치하는 방식이 아닌, 모세와 공주의 모습을 성모자가 전통적으로 그 려지던 도상과 꼭 닮게 그리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그래서 베르메르의 와 속 은 해당 주제 를 그리던 기존의 전통과는 다른 독특한 도상을 보였다. 같은 주제를 그린 동시대의 작품만 보더라도, 화가들은 대개 이집트의 공주가 하녀를 시켜 버려진 아기 모세를 물에서 건져 올릴 것을 명하거나 이제 막 건져 올리 는 장면을 포착한 반면, 베르메르의 그림 속 모세는 공주의 품에 이미 안 겨 있다.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물에서 건져 올리는 장면은 배제되고 마치 물가에 나들이를 나온 모자처럼 묘사됨으로써 이 아기와 여성은 오히려 모세의 발견 일화와 거리를 두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림의 세부 묘사에도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기존의 은 대부분 갈대 숲, 아기가 담겼던 바구니 등 성경에 언급된 세부 사항을 꼼꼼히 묘사하는 데 비해, 베르메르의 에는 이 부분이 누락 되었거나 흐릿하게 처리되어 확인이 어렵다. 또한 베르메르의 그림 속 공 주는 화려한 치장을 하지도, 나체이지도 않은 대신 기독교 시각문화 안에 서 성모의 지물로 여겨지는 검푸른 망토를 입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목자 들의 경배 또는 동방박사의 경배에서 보이는 에피파니의 회화적 전통과 흡사하다. 따라서 감상자에 따라 베르메르의 속 아기와 여 성을 성모자로 인식하고, 일종의 에피파니의 장면이라 받아들였을 가능성 을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다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화면 구성을 좋아하였던 베르메르는 어디선가 모세의 발견을 성모자처럼 그린 도상을 접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본인의 화면 속에 모티프로 도입함으로써 화가로서 갖는 시각적 유희에 대한 욕 구를 충족시키고자 하였다. 여러 17세기 네덜란드미술 연구자들이 밝혔듯 당대 화가들은 대개 그림 속 그림에 어떤 상징성을 부여하였으며 전체 그 림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이용하였으므로, 베르메르 또한 이 독특 한 도상이 은밀한 방식으로 두 가지 주제를 전달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조 금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시각적 유희를 시도한 것이다. 그는 모세와 공 주의 모습을 빌려 성모자를 한 번 숨기고, 모세와 공주의 모습을 한 성모 자상을 다시 그림 속 그림으로 화면 뒤 쪽에 한 번 더 숨겼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숨은 성화를 발견한 감상자는 보다 쉽게 이 모티프가 전체 그 림의 맥락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기존 연구들은 모세의 발견이 무엇을 상징하고, 이것이 전체 그림 해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지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주장하는 모 세의 발견의 상징성, 즉 절대적 이성 혹은 신의 섭리라는 의미는 모세를 예수로 치환할 때 감상자들에게 훨씬 직설적이고 강렬하게 연상된다. 이에 따라 그림 속 그림에 부여된 의미 역시 심화된다. 따라서 감상자는 그림 속 그림의 주제를 성모자상으로 이해할 때, 베르메르가 그림 속 그림 모티 프를 이용하여 의도한 바를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베르메르의 그림 속 그림을 숨은 성화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것이 모세의 발견 보다는 성모자를 그리던 회화 전통에 더 잘 들어맞는 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전경과 그림 속 그림 모티프의 연계성을 설명하 기 위한 기존의 연구 내용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 림 속 그림을 단초 삼아 베르메르의 그림을 해석하고자 했던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 모티프를 시각적 근거로 활용하기 보다는, 그 주제나 장르만을 참고하였다. 그림 속 그림의 주제, 혹은 장르가 제공하는 정보도 물론 유 용하나, 와 속 의 경 우 같이 그림의 도상을 살펴보는 일 역시 전체 그림 해석에 보다 풍부한 맥락을 제공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작품 해석의 도구로서 그림 속 그림을 활용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베르메르의 그림 속 그림 모티프 연구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던 모티프의 도상을 재조명하였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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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rchaeology and Art History (고고미술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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