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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시 형성과 漢文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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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정기인

Advisor
김유중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7-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한문맥시경(詩經)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문장보국(文章報國)천리(天理)사무사(思無邪)정성위음(鄭聲衛音)대장(對仗)격조시시혼최남선이광수김억김소월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2017. 8. 김유중.
Abstract
본 논문은 한국 근대시 형성에 기여한 주요 문인들이 한문맥(漢文脈)의 자원을 활용하여 근대시를 창안했다는 데에 주목하여, 한국 근대시 형성과 한문맥의 연관성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한문맥이란 한문이 속해있는 맥락, 즉 한문을 포함하여 그것이 속해 있고 나타내는 사고, 감각, 세계관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한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한시적 특성, 시론에 나타나는 유학적 사유, 그들이 쓴 한시를 통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선택된 개념이다.
근대시 형성기 시인들은 표면적으로는 한문에 배타적이었지만, 그들은 이를 활용하면서 자신의 시론과 시를 썼고, 한시를 읽고 번역했으며 한시를 직접 쓰기도 했다. 특히 근대문학 형성기 문인들은 유년기에 한학을 학습하고 한시를 읽었기 때문에, 서구나 일본 근대문학을 수용할 때 이러한 한문맥의 관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서구적 근대에 비추어 한국 근대시의 근대성을 추출하거나 언어 민족주의적 전제에 따라 조선(어) 전통만을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근대시의 실상에 비추어 한국 근대시의 독특한 근대성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거의 주목되지 못했던 한문맥과 한국 근대시 형성이라는 주제에 주목이 필요하다. 근대시 형성기 한문맥은 단지 조선의 한문전통만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이라는 상황 속에서 일본의 한문맥까지 포함하는 매우 복합적인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 한문맥이라는 중층적이고도 거대한 맥락을 제한된 분량 속에서 모두 서술할 수 없으므로, 구체적으로 첫째는 시론(문학론)에서 어떻게 한문맥적 개념들이 논리적 계기로 전제되어 있고 활용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로는 그들의 국문시가 한문맥의 이미지나 한시적 특성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이들에게 한시는 무엇이었는지를 서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근대시 형성에서 한문맥적 요소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제II장은 근대시 형성기에 한문맥 문화관습이 어떻게 지속되고 활용되었는지를 해명하려 했다. 이의 배경으로 당대 한문 교육의 비중과 그 의미를 설명하고, 한시가 융성했던 상황을 밝혔다. 이를 통해 한문맥은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구문맥을 수용하고 번역하면서 갱신되는 중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문으로 번역되면서 국문을 풍요롭게 만들었던 사정을 검토했다.
제III장은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과 한문맥의 관계에 대해서 해명하였다. 최남선과 이광수는 한문맥의 이념을 활용했다. 최남선은 입지(立志)나 성(誠)과 같이 한문맥의 존숭받는 개념을 사용하고 과거의 권위를 공개적으로 이용하면서 계몽의 논리를 펼친다. 그는 어수와 구수의 정형을 인식하면서 어수를 고정한 채 4행씩 2연이나 8행씩 2연 구성으로 대부분의 국문시를 쓴다. 특히 근체 한시를 본격적으로 <>에 게재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국문시 또한 4행 4연 7·5조를 기본형으로 하는 국문 정형시로 수렴된다. 그는 시를 읽는 시와 노래하는 시로 구분하면서, 노래하는 시는 창가나 시조형식으로 썼다면, 읽는 시는 다양한 음수율과 운을 한시 번역을 토대로 실험했다. 최남선은 한시의 형식을 강하게 의식한 신체시 형식을 창안하지만, 조선적 특수성에 대해서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지는 않는다. 그는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그리고 서자(逝者)로서의 물이라는 한문맥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국문시를 창작했다. 이는 최남선이 지속했던 문(文)의 이념하에서는 당연한 귀결로, 열심히 수양하자는 계몽적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한문맥의 이미지와 상상력을 활용한 것이었다. 이는 일제의 국권침탈 이후, 인자요산을 바탕으로 한 준비론적 수양론의 상상력을 토대로 조선의 특수성을 강조할 수 있는 산의 이미지로 변화된다.
이광수는 표면적으로는 기존 한문맥과의 단절을 주장했지만, 근본적으로 사(士)의 이념을 지속했다. 그는 광이충지(擴而充之) 등의 한문맥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이들의 권위를 공개적으로 이용하지는 않는다. 또 기존 한문맥에서 배척당한 정(情)을 주장했지만, 실상 그 논리는 기존의 양성(養性)의 내용이었다. 즉 최남선은 적극적으로 한문맥을 다른 문맥들과 병치하면서 다른 문맥들을 한문맥을 바탕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다면, 이광수는 표면적으로는 한문맥을 거부하였지만, 그 거부의 논리 속에는 한문맥이 계기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광수는 한시 형식을 차용한 언문풍월을 쓰고, 송(頌), 송(送), 악부시(樂府詩) 등 한시 형식을 국문시로 실험했지만, 이 실험은 지속되지 못하고 조선어의 특수성에 대한 이론적 인식도 개진하지 못한다. 그리고 문장보국(文章報國)을 내세우면서 기존의 士와 文의 이념을 자신의 한시에 담으며, 자신의 국문시에도 표출했다. 최남선과 이광수의 시는 개인적인 내면의 고백이나 풍경의 발견이 아니라 선재해있는 문의 이념을 바탕으로 형상적(figurative)인 물의 이미지를 그리거나(최남선), 사의 이념을 바탕으로 시적 자아를 구성하고 있었다(이광수). 즉 이들은 개성적인 자아의 내면이 아니라, 선재한 이념을 표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제IV장은 김억의 문학과 한문맥의 관계에 대해서 해명하였다. 김억은 개성적인 문학을 옹호하며 언어 자체의 심미성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문이재도론(文以載道論)을 벗어나며, 서구 낭만주의적 문학론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천리(天理)나 사무사(思無邪)와 같이 한문맥에서 존숭받는 개념을 전유하며 논증했다. 김억은 개인적인 서간에는 한시를 써서 지인들에게 보내며, 한시의 형식을 그대로 국문시로 전유해서 썼고, 한시를 번역하는 것이 낙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800여 편에 달하는 한시 번역을 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하면 조선(어)에 적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여, 한시에 강력한 영향을 받은 조선적 근대시 형식인 격조시형을 창안했다. 김억은 근체시의 언술 구조인 대장(對仗)구조를 그의 초기 시부터 1920년대 시까지 반복하며 이러한 대의 구성으로 개인의 내면을 포착했다. 앞서 최남선과 이광수의 시에서는 선재하는 문과 사의 이념이 시에서 나타난다면 이제 김억의 시에서는 그러한 선재하는 이념이 자아를 굳건하게 지탱하지 못한다. 그의 시적 자아는 지평의 상실로 인해 해파리처럼 의지할 곳 없이 유랑할 뿐이다. 아무런 방향성 없이 외부의 힘에 몸을 맡기는 해파리라는 상징은, 정체성을 굳건히 지탱하던 기존의 외부적 가치 지평 상실에 따른 정체성 혼란의 이미지를 포착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내면은 여전히 한문맥적인 대의 구성과 특히 자연과 인간의 대비를 통해서 포착된다.
제V장은 김소월의 문학과 한문맥의 관계를 해명하였다. 그는 정성위음(鄭聲衛音)과 같이 기존 한문맥에서 부정되던 개념을 오히려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시혼」에서 한문맥을 심층적으로 구문맥과 국맥과 결합하여 변형했다. 소월 또한 한시를 번역하면서, 정성위음적 성격을 강화하려고 노력했고, 한시의 형식을 바탕으로 국문시를 실험했다. 또 유배객의 심정을 담은 한시를 번안하고 이에 기반을 둔 국문시를 써서 망국민의 설움을 유배객이라는 한문맥의 주요한 전통에 기대어 표현했다. 김소월은 영원한 것과 변화하는 것, 그리고 빛과 그늘이라는 각기 구문맥과 한문맥 그리고 국맥이 상징하는 핵심적인 세계관의 충돌을 동력으로 삼아서 시를 썼다. 그의 국문시에는 한시의 영향이 세계관의 차원에서 하나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또 김억이 형식적인 대의 구성을 통해 개인의 내면을 드러냈다면, 소월은 심층적으로 영원한 것과 변화하는 것의 대립을 통해서 개인의 내면을 드러냈다.
본 논문은 기존의 한국문학사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근대시 형성과 한문맥의 관련성을 고찰했다. 이렇게 근대시 형성과 한문맥의 관계를 해명한 작업은 한반도의 문학사가 한문 문학과 국문 문학의 상호교섭으로 이루어졌다는 장기적 안목을 근대 이후로까지 확장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한문맥, 구문맥, 일문맥, 국맥을 뒤섞으며 이를 원천으로 삼아 풍요로운 시들을 창출해 낸 것이야말로, 한국 근대시의 근대성을 특징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사상과 문학을 소개하면서도 문과 사의 이념에 근거해서 시를 썼던 최남선과 이광수, 낭만주의적인 개성적 문학을 옹호하기 위해 한문맥의 개념을 전유한 김억, 구문맥, 한문맥, 국맥의 세계관의 긴장과 갈등을 샤먼이라는 국맥의 방법론과 노래의 정신을 바탕으로 풀어낸 김소월, 이러한 특징들은 한국 근대시의 근대성과 그 풍요로운 맥락들을 잘 보여준다. 한문맥을 방법으로 하여, 구문맥과 한문맥을 상대화하고, 내재적으로 한국 시사를 재구성하며, 잊혔던 실험들을 복원하는 것, 이를 통해서 한국 시사를 서구중심주의나 조선(어) 민족주의를 넘어서 복수의 근대를 복원하며, 나아가 동북아 한문 문화권의 유사와 차이를 견줄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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