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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 출신 근대 건축가 조승원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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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송승엽
Advisor
전봉희
Major
공과대학 건축학과
Issue Date
2017-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조승원대목근대 건축가전통건축근대 건축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과대학 건축학과, 2017. 8. 전봉희.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1901년 10월 2일에 출생하여 1987년 1월 16일에 사망한 대목 출신 근대건축가 조승원(趙承元)의 생애와 그가 남긴 저술 및 작품들의 특성과 의미를 고찰하였다. 조승원의 건축 활동은 1923년부터 1978년까지의 긴 시간 범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해방을 전후로 평양과 서울을 넘나드는 지역 범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대목, 청부업, 근대 건축가의 다양한 직능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한국건축의 근대화 과정을 구체적 대상을 통해 미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그의 자습을 통한 건축 학습의 과정과 그가 1960, 70년대 남긴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 및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은 전통과 근대를 넘나드는 복합적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한국 근대건축의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
조승원의 작품 활동은 1923년에서 1931년의 대목으로서 건축 입문 시기, 1931년에서 1943년의 토목건축청부업회사 건평사 시기, 1943년에서 1953년의 건축 활동 불능의 혼란기, 1953년에서 1965년의 철근콘크리트조 학습 시기 1965년에서 1978년의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 시기의 총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정리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는 1960년대 전통 건축의 재학습을 수행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63년부터 1969년까지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을 저술하여 1981년에 출간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그의 전체 건축 활동이 수렴되는 지점을 5기에 해당하는 1960, 70년대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으로 보아, 이를 조승원 건축으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1기와 2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조승원 건축의 발단으로 보았고, 이후시기를 조승원 건축이 형성되어 전개되는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이를 통해 확인한 조승원과 조승원의 건축 활동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조승원은 대목 출신이지만 전통건축의 장인이 아니며 주로 근대적 건축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정식의 근대적 제도권 건축 교육을 받지 못하였지만, 구체적으로 1926년에 만난 백기환과 1930년을 전후로 교류한 미국 선교사 맹로법, 곽안련을 통해 근대적 설계도서의 작성법과 시공법을 이른 시기에 학습하였고, 줄곧 벽돌, 석조, 철근콘크리트조 등 근대적 재료와 구법을 통한 건축을 설계, 시공하였다. 그는 1923년 대목으로 건축에 입문하였지만, 이 시기 그가 시공한 건축 역시 주로 벽돌과 석조를 곁들인 근대적인 목조건축이었고, 그의 전체 작품 목록에서 전통적 방식의 목조건축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1925년 도편수 한성룡을 방문하여 전통건축을 학습하였지만, 이는 깊이 있는 학습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이 시기 그가 전통건축의 학습을 시도하고 한계에 부딪친 아쉬움은 이후 그가 전통건축의 학습을 재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1931년 설립되어 1940년대 초까지 활동한 조승원의 평양 토목건축청부회사 건평사는 시공 뿐 아니라 상당한 비중의 설계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며, 이들 작품의 활동 범위는 평양에 국한되지 않았다. 당시 건평사의 활동은 평양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활동 범위는 선교부의 관할 구역 전체에 해당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건평사 김준식이 1933년 설계하여 1936년 완성한 현존하는 대구제일교회의 건축을 통해 확인된다. 이를 통해 조승원이 1934년 설계, 시공한 신양리 교회당의 실체도 가늠해볼 수 있는데, 이는 대구제일교회와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따라서 건평사는 소속원들이 개별적으로 본인의 작품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이를 통해 동일 작품의 반복이 아닌 각자의 개성이 반영된 건축을 설계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결론적으로 건평사의 활동을 통해 일제시기 토목건축청부회사의 특성과 평양 장로교 중심의 미션계 건축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세 번째, 조승원은 1956년부터 1957년까지의 기간에 참여한 춘천사범학교의 공사를 통해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의 발상을 체득하였다. 이는 이른 시기에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의 발상이 정치적 목적과 별개로 시공의 현장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당시 피바디 사범대학의 사절단으로 국내에 파견되어 춘천사범학교의 기술교육을 담당했던 허만 박사의 제안으로 한식목조건축양식을 철근콘크리트조에 반영하는 건축을 계획하였다. 이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가 이후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을 전개하는 주요한 배경이 된다.
네 번째, 조승원은 1960년대 전통건축의 학습과 함께 스스로 대목 출신 근대 건축가로서의 전통 계승을 의식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통해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고민하게 된다. 그의 전통건축의 학습은 현장답사, 도편수 박기섭을 통한 목가구 접합 기법 및 문양 제도 학습, 전통건축의 용어 및 도구의 수집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그는 대목 출신 근대건축가로서 본인이 전통 계승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자각했으며, 일시적 권력의 예술이 아닌 영원한 예술로서의 전통을 현대적 재료와 구법을 통해 계승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그가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과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을 남기게 되는 사고의 배경으로서 중요하다.
다섯 번째, 조승원이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저술한 전통목조건축에 관한 저서인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은 그가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의 한계를 스스로 인식한 결과물이다. 조승원은 전통건축의 진체가 목조라는 점과 이에 따라 그가 제시한 새로운 재료와 구조를 통한 전통의 계승이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스스로 인지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그는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서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을 저술하였다. 이는 대목 출신 근대건축가로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과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은 결과물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실천하고자 했던 전통의 현대적 계승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본 연구에서 고찰한 조승원의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의 특성에 따른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조승원의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은 『영조법식』, 『화성성역의궤』, 『저승전의궤』, 『인정전중수의궤』, 『택리지』, 『세종실록』등을 참고하는 바탕에 개인의 경험적 학습 성과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른 시기에 이루어진 전통건축 관련 고문헌의 기초 연구로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이러한 기초연구로서의 책의 특성은 용어의 측면에서도 드러나는데, 책에서는 『영조법식』과 『화성성역의궤』등에 등장하는 낯선 용어들을 해설하고 있으며, 사라져가는 용어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어 이를 복원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두 번째, 조승원의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은 한국 전통건축의 고유한 특성에 관한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책은 한국 건축사의 개괄, 익공, 온돌, 민가, 풍수지리, 조선시대 가옥규제 등의 내용을 『화성성역의궤』, 『택리지』, 『세종실록』등의 문헌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러한 특성은 함께 수록된 설계도의 구성과 내용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저술에 가장 중요한 참고 문헌이었던 『영조법식』과의 차별성을 획득하며 한국 전통건축을 전달하는 책의 궁극적인 저술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세 번째, 조승원의 『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은 전통건축의 제작, 제도의 기법을 구체적인 설계도로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록된 설계도는 능숙한 근대식 제도 기법으로 작성되었으며, 전통건축의 제작과 제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법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조승원의 전통과 근대의 복합적 성격을 드러내는 실례이면서 동시에 건축 실물로 가늠할 수 없는 조승원의 전통건축에 대한 학습 수준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 고찰한 조승원의 1960, 70년대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의 특성에 따른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건축가 개인의 관점에서 조승원의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은 구체적인 전통 건축의 학습을 바탕으로 이룬 성과로서 의미가 있다. 그는 대목으로서 건축에 입문하였고, 일찍이 전통건축에 관심을 가져 도편수 한성룡을 방문하여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후 긴 시간 근대적 건축의 설계와 시공에 종사하였지만, 1960년대 전통 건축을 재학습하며 그 구체적 성과를 글과 도면으로 남겼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얻은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는 그의 건축을 전통을 주제로 한 당대의 다른 건축가들의 작품과 차별화하는 근본적인 배경이 된다.
두 번째로 건축 기술의 관점에서 조승원의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은 한국 건축사에서 매우 이른 시기에 달성한 철근콘크리트조의 성과로서 의미가 있다. 그의 서울여자상업학교 소석관과 도선사 호국참회원은 각각 1967년, 1968년에 완성된 것으로, 이는 기술의 관점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철근콘크리트조로 한옥의 상세를 모사한 것으로 평가 받는 강봉진의 복원 콘크리트 광화문(1968), 국립중앙박물관(1972)과 동시기 또는 더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조승원 건축의 세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철근콘크리트에 의한 전통의 표현은 강봉진의 기술적 성과와 동일선상 또는 그 이상에서 그 의미를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세 번째로 건축 표현의 관점에서 조승원의 한식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은 전통 표현을 위한 완전한 모사도 완전한 추상도 아닌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의미가 있다. 그는 전통의 표현과 철근콘크리트조 표현 간의 조화, 긴장, 갈등의 관계를 통해 건축 형태를 결정하였는데, 이의 결과물에서는 세부에서 모사된 전통의 표현과 추상적인 철근콘크리트조의 표현이 공존한다. 이러한 방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은 그의 첫 번째 한식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인 서울여자상업학교 소석관(1967)으로, 이는 건축 형태에서 전통 표현을 위해 추상과 모사의 극단의 방법을 취한 당대의 여타 건축들과의 비교에서 조승원 건축의 차별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7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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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ngineering/Engineering Practice School (공과대학/대학원)Dept. of Architecture and Architectural Engineering (건축학과)Theses (Master's Degree_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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