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와 '4차 산업혁명' 담론의 확산: 과학기술 유행어(Buzzword)의 수사적 기능 분석을 중심으로

Abstract

지난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사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 이후 우리 사회는 알파고 쇼크라 할 만한 커다란 충격과 마주하게 되었다. 구글 딥마인드 사의 제안으로 성사된 인공지능 알파고 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대결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인간 대 기계 구도의 변주이기도 했다. 일찍이 체스 경기에서 인간은 그 왕좌를 기계에게 내준 바 있으나, 기계의 계산 능력만으로는 모사할 수 없는 인간만의 직관이 강조된 바둑 경기에서 인공지능의 승리를 예상한 전문가는 가히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의 직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알파고의 압승이라는 경기 결과는 바둑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알파고의 승리는 곧 인류의 패배를 의미하는가? 1950년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모방하는 기계를 만들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현대 인공지능 분야는 오늘날에 이르러 보다 인간적인 기계가 아닌 보다 합리적인 기계의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공상과학 작품을 비롯한 대중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인공지능의 이미지는 인간과 같이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는 또 다른 인간종의 형태에 가까웠다. 딥마인드 사의 알파고가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둑을 두는, 오직 바둑에 최적화된 인공지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의 결과는 곧잘 인류의 적인 터미네이터 알파고와 그에 맞서는 인류 대표 이세돌의 영웅 서사로 묘사되었다. 다른 한편, 그러한 디스토피아적인 서사에 대해 단지 공상에 불과한 것이라 치부하는 반응 또한 존재하였다. 인공지능 알파고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알파고의 정체를 속시원히 밝혀줄 수 있는 것일까? 본 연구는 알파고의 정체성이 이미 어딘가에 있는 정답으로서 존재하기보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의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보았다. 인공지능 알파고의 의미가 이를 논하는 사람들의 전제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알파고 쇼크 이후 한국 사회에 퍼진 4차 산업혁명 담론은 4차 산업혁명을 유행처럼 말하는 각 개인, 집단의 목적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 그대로 알파고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신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혁명적인 변화를 일컫는 것일까? 알파고 쇼크 이후 한국 사회에서 특히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혁명에 관한 기술결정론적 접근은 흔히 사회의 진보를 사회적 요소와 무관한 독립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로 간주하지만, 많은 과학기술학 연구는 사회와 기술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강조하며 양자간의 공동 구성(co-construction)을 역설해온 바 있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본 논문은 유행어(buzzword)와 사회기술적 상상(socio-technological imaginaries)에 관한 과학기술학 논의의 함의에 주목, 알파고 쇼크 이후의 유행어가 정부・기업・개인에게서 사용되는 양상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유행어의 수사적 기능 분석을 통한 접근은 4차 산업혁명 담론 확산을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결과물이 아닌 이를 논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목적과 상상을 통해 이해하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