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로-퐁티의 존재론적 회화론

Abstract

메를로-퐁티의 회화론은 심오한 철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진리의 근원은 지각 경험에 있고, 회화는 우리와 세계의 지각적 접촉을 가장 잘 드러낸다. 이러한 메를로-퐁티의 독창적인 회화론은 그 중요성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들 중 하나는 회화에 관한 저술들이 시기별로 구분되어 현상학 혹은 존재론으로 해석된다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논문은 메를로-퐁티의 전·후기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은 존재의 문제에 있고, 회화론은 이러한 존재론적 철학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일관성 있게 전개된다고 상정한다. 그리하여 이 논문은 존재 문제를 중심으로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존재론으로 구축하고, 이러한 존재론에 기초하여 회화론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존재의 현상과 존재의 근원을 기본 축으로 삼아 전기를 대표하는 『행동의 구조』와 『지각의 현상학』에서는 존재론적 함의가 무엇인지 밝혀내고, 후기를 대표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존재의 가능 근거는 무엇인지 전기 철학과 연계하여 해명한다. 이렇게 구축된 철학적 존재론에 기초하여 회화론을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이를 위해 회화론의 주축이 되는 세 저서, 「세잔의 회의」,「간접적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눈과 정신」을 화가와 회화작품으로 대별하여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 방법을 통해 메를로-퐁티의 철학과 회화론에서 존재의 문제가 어떻게 하나의 그물망으로 조밀하게 짜여 펼쳐지는지 확인한다. I장은 먼저 행동의 현상에 관한 경험과학 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여 자연과 의식의 본질적 구조와 양자의 관계를 존재론적으로 확립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놓는다. 다음은 지각의 현상에 관한 분석을 통해 경험주의와 지성주의의 객관적 사고를 극복하고 세계와 의식의 본질적 구조와 변증법적 관계를 존재론적으로 새롭게 구축한다. 후기 존재론에서는 주관-객관의 궁극적 근원과 양자의 상호관계의 가능 원리를 시각으로 접근하여 해명한다. II장 화가에 관해서는, 화가의 행동, 지각, 시각이 어떻게 회화적 표현으로 이행되는지 논의한다. 행동과 표현에 관해서는 화가의 표현 행위가 주어진 내적·외적 조건에 영향을 받지만, 이를 초월하여 자유로운 창조성을 실현한다는 점을 논의한다. 지각과 표현에 관해서는 세잔을 중심으로 지각에 현상으로 나타나는 존재를 포착하여 표현하는 과정을 논의한다. 이와 같이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려는 화가의 노력은 시각의 문제로 심화된다. 화가의 눈과 정신의 가역성을 중심으로 가시성의 수수께끼와 회화적 표현의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해명한다. III장 회화작품에 관해서는, 회화의 진리와 의미, 회화의 구성 요소, 회화의 역사에 관한 문제를 탐구한다. 회화는 철학과 마찬가지로 은폐된 진리를 발견하는 임무를 지닌다. 회화에서 표현되는 선, 색, 깊이는 화가의 시선에 포착된 존재의 파편들로,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무한한 존재들을 품고 있다. 그래서 회화는 침묵의 목소리로 그 의미를 전달한다. 존재의 지평 위에서 작업하는 모든 화가들의 스타일과 표현적 제스처는 시공간을 초월해 보이지 않는 진정한 회화의 역사를 형성해 나간다. 이 논문은 이와 같이 회화작품의 표층과 심층을 동시에 분석함으로써 회화가 존재의 현상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표현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결론에서는 메를로-퐁티의 회화론과 철학은 존재의 문제를 중심으로 내적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아가 미술가와 미술작품에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