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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몽골의 대소 종속 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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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뭉후절멍

Advisor
전재성
Major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
Issue Date
2018-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1946년의 몽골몽골독립몽골-소련초이발상-스탈린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 2018. 2. 전재성.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몽골이 독립운동을 시작한 1911년부터 당시 지도자였던 초이발상의 정책 전략 때문에 소련의 위성국이 된 1946년까지의 몽골의 독립 진행과 몽골의 정치적 변화의 이유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몽골은 오늘날까지 소련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지정학 위치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있다.
1911년 당시 인구 800.000명의 작은 국가였던 몽골은 독립 국가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두 강대국 사이에 한 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당시 몽골의 지도자였던 초이발상은 소련 편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초이발상의 선택에 의해 몽골은 소련과 관련된 모든 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1991년 소련붕괴까지의 몽골역사를 보면 국제무대에서 독립국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 위성국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946년에 많은 논물, 땀과 피를 흘린 끝에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1946년은 몽골이 독립을 얻은 해로서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몽골이 소련과 중국의 경쟁 사이에서 소련을 선택한 사건은 초이발상의 영도 하에 몽골 자체의 역동적인 독립 운동의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몽골의 전략, 다시 말해서 초이발상의 전략은, 강대국 사이에 처한 운명을 가진 몽골이 힘겹게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 시기 외교 정책 목표의 최우선은 무엇보다 국가 안보의 문제인 생존, 즉 독립의 유지였다. 만약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만한 국력이 없는 상태에서 중립 정책을 고수하였다면 독립을 쟁취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독립이 되었다 하더라도 양측의 경쟁 속에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초이발상이 중국보다 소련을 선택한 것은 상당한 부작용이 있긴 하였지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의 정책이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4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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