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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의 메이지 유신: 복고의 착종으로부터 신도를 창출하기까지
Kokugaku in the Meiji Restoration: Creating Shintō from the Confusion of Rest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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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배관문
Issue Date
2018-08
Publisher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Citation
일본비평, Vol.19, pp. 70-95
Keywords
히라타 아쓰타네야노 하루미치오쿠니 다카마사복고신도국가신도Hirata AtsutaneYano HarumichiŌkuni TakamasaRestoration ShintōState Shintō
Abstract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근대 전환기에 히라타파 국학은 왕정복고와 진무 창업의 기치 아래 이루어진 천황친정 체제에 복고신도 사상의 실현을 기대했다. 고대 율령제 시대의 태정관과 신기관 제도의 부활에 따라, 이들이 제정일치 국가를 꿈꾸며 구체적인 정치강령을 구상한 것은 야노 하루미치의 건백서 등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복고를 선언하는 동시에 새로운 국가제도의 창출이라 할 만한 대개혁이 시작되자, 이들은 곧 정치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만다. 근대적 신기 행정과 제도 정비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은 오쿠니 다카마사, 후쿠바 비세이 등의 쓰와노파 국학자들이었다. 여기에 이른바 히라타파 국학의 패배와 좌절이 확인된다. 시마자키 도손의 유명한 역사소설 『동트기 전』이 보여주는 것도 거의 그에 가깝다. 확실히 대교선포 운동과 제신 논쟁에 이르기까지 국학자들이 그리는 복고는 서로 대립하고 복잡하게 착종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히라타파 국학의 영향력이 설령 일시적이고 한정적이었다 해도, 다양한 갈래의 국학 사상이 일원화되면서 이후 국가신도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은 신사 비종교론을 표명하면서도 천황제와 표리일체를 이루듯, 다분히 정치적인 상황과 결합되어 있었다. 일례로 요시오카 노리아키의 『고사기전략』은 당시 국학의 합리화 및 단일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메이지의 건국신화이자 기원신화가 수렴된다는 점에서 메이지 초기 『고사기전』의 수용의 일면이 아니라 그 자체라는 의미를 갖는다.
In the transformative era spanning both the late Edo period and the beginning of the Meiji period, the Kokugaku school led by Hirata Atsutane envisioned a revival of Shintō and the imperial rule.
Nonetheless, this group of scholars lost dominance in the political stage due to the revolutionary outbreak of new government system right after they declared a restoration. Instead, scholars from Tsuwano area took the leading role in the modern administration for Shintō and court rituals. This fact demonstrates the frustration that the Hirata group went through. The narrative from Yoakemae[Before the Dawn] written by Shimazaki Tōson illustrates the same story. It seems clear that the restoration envisioned by Kokugaku scholars was a complicated entanglement of opposing ideas including the Declaration of Great Teaching and the controversy over rituals. Although it may be true that the influence of Hirata group was limited and short-lasted, the fact that they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national Shintō cannot be denied as their various ideas amalgamated into the modern Kokugaku studies.
ISSN
2092-686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42799
DOI
https://doi.org/10.29154/ILBI.2018.19.070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국제대학원)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일본연구소)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KJJS)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ume 19 (201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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