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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미술과 초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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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혜성
Advisor
정영목
Major
미술대학 협동과정미술경영
Issue Date
2018-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미술대학 협동과정미술경영, 2018. 8. 정영목.
Abstract
한국근대미술과 초현실주의



이문화는 이질적인 것들이 혼란, 오해, 갈등 등 진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내면화되거나 때로는 거부된다. 이문화 수용을 문화전이(轉移)로서의 번역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본고는 지금까지 한국근대미술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초현실주의라는 이문화가 일본을 통해 근대기 조선화단에 유입될 때 발생했던 진통과 그 이후 전개된 변모의 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펴본다. 1930년대 일본에서는 초현실주의 미술에 대한 정의와 범주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이는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현실주의 미술 관련 번역문과 저작물이 다수 출간되고 국제전시가 개최되고 초현실주의 미술을 지향한 여러 군소단체가 설립되었다. 때문에 이 무렵 동경에서 화력(畵歷)을 시작한 조선의 청년화가들이 이해한 초현실주의는 번역자의 해석까지 가미되어 더욱 혼성적인 성격의 초현실주의였다.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있어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의 신비를 일깨우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변혁시키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초현실주의는 특정 예술사조라기보다는 어떤 정신 혹은 태도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주요 기법과 도상으로 분류되는 양식적 특성보다는 브르통이「초현실주의와 회화」(1928)에서 강조한 순수한 내적 모델을 기준하여 지금까지 주로 민족주의와 향토주의의 관점에서 논의되던 작가와 작품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유럽의 정치적 격변기에 태동한 초현실주의는 모더니즘(예술지상주의), 리얼리즘(현실참여)과 삼각의 대립구도를 이루며 성장했다. 조선화단에 초현실주의가 유입되었을 때도 양상은 유사했으나, 일제의 통제와 탄압에 의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해체되는 등 삶이 더욱 위선적이고 공포스럽게 변하여 초현실주의가 목표로 삼았던 삶의 중요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또 개성과 본능의 자유로운 분출보다 균형과 질서, 도덕과 건설을 중시했던 조선의 사회적, 사상적 분위기 속에서 저항, 부조화, 경이, 유머를 추구했던 초현실주의는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1930년대 초중반, 김용준, 윤희순, 정현웅 등 미술평론가들이 초현실주의의 예술적, 사회적 혁명성을 인식하기는 했으나 카프와 순수회화론자의 비판과 몰이해 속에서 담론적으로 확장되지 못하였다. 1930년대 말 일부 동경 유학생들에 의해 초현실주의 미술의 구체적인 방법론과 작가 등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으나 일제의 군국주의가 심화되면서 이 역시 지속되지 못했다.

초현실주의의 실천은 1930년대 말 동경 재야단체에서 활동하던 유학생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1930년대 조선화단에서 문학수, 이중섭, 유영국, 이쾌대 등(특히 신미술가협회)의 작품은 이질적이었다. 그들 작품에서 보이는 환상, 죽음, 어둠, 사랑, 성적 욕망 등은 식민 치하에서 강요된 도덕적, 건설적 규범과 생명과 아름다움의 미학이라는 금기를 깨는 것이었다. 이들의 작품은 당시에는 낯설고 첨단적인 미술이었는데, 그 낯섦은 그 시절 미술작품이 다루던 외부세계의 기계적 또는 인상주의적 모방이나 표현주의적 감정의 분출이 아닌 상상과 정신의 힘을 보여준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었다. 이들이 그린 세계는 그저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낯설게 보게 만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현실의 부조리성을 일깨우고 현실 재구성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초현실주의가 강조한 시적 세계다. 이들은 -브르통의 말을 빌리면- 관습적인 기호의 교환을 넘어 야만의 상태에 존재하는 야생의 눈으로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고 이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1930년대 말-1940년대 초 일본에서 한창 전개된 전위로서의 고전 담론은 조선에도 영향을 주었으나, 이들은 프랑스, 일본 초현실주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고전을 소환했고, 일본 초현실주의 미술에 드러난 초국가주의적 파시즘의 그림자를 감지하고 작품으로써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한국근대미술에 초현실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일반적인 가정과 달리 혁신적인 예술형식과 예술의 현실참여, 전통과 근대, 추상과 구상 등 한국근대미술의 정체성과 향방을 둘러싼 주요한 논쟁 속에 초현실주의가 항상 문제의 핵에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업은 비록 일제 군국주의의 강화, 해방, 전쟁, 분단을 겪는 동안 단절을 겪기도 했지만 전후 추상 일변의 화단에서 형상성과 문학성을 지닌 회화 경향의 전사(前史)에 머물지 않고, 후세대에 현실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현실과 부단히 관계를 맺는, 구태를 벗어난 형식을 추구하되 형식에 매몰되지 않는, 상상력과 정신적 활동을 중시하는, 달리 말하자면 평범하지만 진리와 본질을 품은 살아있는 미술언어의 예를 제시했다.



주요어

초현실주의, 순수한 내적 모델, 문화번역, 전위미술, 신흥미술, 추상, 금기와 저항, 고전의 재발견, 신화적 상상력, 고대에의 동경, 독립미술협회, 구실회, 미술문화협회, 자유미술가협회(미술창작가협회), 신미술가협회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43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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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Fine Arts (미술대학)Program in Arts Management (협동과정-미술경영전공)Theses (Ph.D. / Sc.D._협동과정-미술경영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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