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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의 과학담론 전유 양상 : 이해조·이광수·김동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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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학영
Advisor
김종욱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8-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2018. 8. 김종욱.
Abstract
한국 현대소설의 과학담론 전유 양상

- 이해조․이광수․김동인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20세기 초 한국 소설의 근대 과학담론 전유(專有) 양상과 그 서사적인 의미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시기에는 증기와 전기를 동력으로 한 각종 기계들과 함께 서구의 근대 과학지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됨으로써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지적인 조건을 크게 바꾸어가고 있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문명개화(文明開化)와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기치 아래 산업진흥을 위한 과학기술의 도입과 과학지식의 보급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각종 신문과 잡지, 학회지와 과학 교과서를 통해 과학담론이 적극적으로 생산되었다. 다양한 분과학문의 자연과학 지식이 담론화되었고, 그 지식들에 깔려있는 기계론적 자연관은 속신(俗信)이나 유교의 유기체적인 자연관에 충격을 주었다. 특히 진화론과 에너지론은 단순한 과학적 가설이나 학설의 차원을 넘어서 일종의 과학사상으로서 당시 지식인들의 패러다임과 세계관의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학만능주의적 입장에서 과학이 신화화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과학의 양가성에 대한 인식을 담은 과학담론도 적지 않았다. 특히 1920년대의 많은 과학담론들은 기술 문명이 인간의 물질적 생활에 가져다준 혜택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그것이 만들어낸 사회적 폐해나 인간의 정신생활에 미친 부정적 영향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러한 과학담론은 언제든 과학자를 넘어서 이질적인 독자층의 다양한 인식론적 체계와 만날 수 있으며, 그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의해서 그 잠재적 의미가 새롭게 드러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과학 텍스트는 사회적, 예술적 질문에 편입(編入)되고, 그에 따라 그 의미는 고정되지 못하고 동요하게 된다. 문학의 차원에서 보자면, 작가의 사상, 혹은 문학 작품이 제기하는 질문은 과학 담론이나 과학적 아이디어의 변형을 촉발하고, 그 의미의 동요와 확장을 이루어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학은 그 속에 내장된 질문에 따라서 과학 담론을 전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본고는 20세기 초 한국에서 전개된 과학담론에 대한 소설적 전유를 뚜렷하게 보여준 이해조․이광수․김동인을 대상으로 소설 구성에 짜여 들어간 과학 지식이 어떠한 종류의 문학사상에 의해 초대된 것인지, 그리고 작품의 다양한 구성 층위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구명하였다.

2장에서는 서구 자연과학 지식과 기계적 우주론을 담은 과학담론에 대응한 텍스트로서 이해조 소설을 독해하여, 그의 소설이 유교주의의 필터를 통해 과학담론을 전유하고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 이해조는 기상학과 천문학의 신지식들을 소설에 배치하면서 민담과 전설, 신화와 속신(俗信)에 담겨 있는 마술적 세계관을 비웃고 자연과학이 제공하는 지식에 지지를 보낸다. 그렇지만 자연관이나 우주론의 차원에서는 서구 자연과학의 기계론과 인과론을 채택하지 않고 유교의 자연철학과 감응론(感應論)을 고수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이와 같이 감응론으로 인과론을 밀어내고, 윤리성을 매개로 한 유기적 우주론으로 기계적 우주론을 밀어내려는 노력에 의해서 이해조 소설은 서구의 추리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범죄서사를 다루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소설에서 범인의 죄상을 밝히는 데 있어서 합리적 추론이나 추리는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정탐자의 지적인 추론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피해자나 정탐자의 도덕적 판단력과 그에 감응한 천리(天理)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해조는 소설이 마치 정대(正大)한 마음과 같이 진상(眞相)을 소소히 비추는 거울이라는 인식을 보여준 바 있다. 그것은 단지 소설이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물의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을 모두 아우르는 천리(天理), 혹은 이치(理致)를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소설관은 이해조 소설의 많은 형식적 특징들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조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추리소설이 추리소설로서 성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결말에 도달하기 전까지 독자는 사건의 진상을 확실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 즉 일종의 미망(迷妄)에 빠진 상태에 있어야한다. 그렇지만 이해조 소설의 서술자나 내포작가는 맑은 거울과 같이, 천리를 체인한 정대한 인격으로서의 자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잠시나마 거짓되고 왜곡된 상(像)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조는 추리소설보다는 독자의 시야에서 악인들의 악행이 항상 투명하게 제시되는 범죄소설 창작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3장에서는 과학담론으로서의 진화론과 에너지론에 대응한 텍스트로서 이광수의 소설들을 고찰하였다. 그는 당시에 크게 유행했던 진화론과 에너지론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에너지 우주론이라 명명할만한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정립해나갔으며 『無情』과 『개척자』, 『사랑』 등은 이러한 사상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에서 쓰인 소설임을 논했다. 이광수는 자신의 상상공간에서 에너지로서의 전기 현상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표한다. 가령 초기 시 「獄中豪傑」에서는 호랑이의 뼈와 힘줄에 흐르고 있는 전기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갈바니즘에서 파생된 하나의 발상, 즉 전기를 생명의 정수, 혹은 생명의 원인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의 영향이 있다. 이와 같은 고찰을 거친 뒤에 이광수는 情이 일종의 마음의 에너지이자, 마음의 엔진으로 파악하게 된다. 「情育論」을 쓸 무렵부터 이광수는 에너지론의 관점에서 감정(情)이나 정신적 활동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는 마치 발동기가 열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전환시켜 물리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을 분출하듯이, 마음의 엔진인 情은 사람이 지닌 에너지를 정신적인 동력으로 전환시켜 마음에 가공할 만한 격동을 일으킨다는 구상을 한다. 이어서 그는 감정을 창조적 에너지나 진취적 기상, 생존 욕망과 연결시키고 세속적인 일의 능률과 경쟁력을 강조하는 등 情의 해방론을 점차 에너지의 사상으로 심화시켜간다. 그는 욕망 → 요구 → 의지 → 활동 → 문화로 이어지는 문명화를 위한 에너지 전환의 과정을 도식화하고, 그러한 에너지의 효율적인 전환이 문명인과 문명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역설하였다. 이처럼 1910년대 이광수의 담론에 깔려있던 에너지의 사상은 1930년대 이후에, 우주의 모든 현상을 에너지의 변화와 발현으로 이해하는 에너지 우주론으로 정식화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광수의 장편 소설 『무정』은 에너지 사상을 성공적으로 소설화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이 소설에서 퍼텐셜 에너지로서 인간의 내부에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고양하고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상을 펼친다. 이 소설은 자신의 힘의 왜소함을 발견한 청년(들)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잠재력을 자각하고 그것을 민족 단위의 추진력으로 고양함으로써 만족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정』은 에너지로 충만한 주체의 탄생 과정을 생물학자 헤켈(Ernst Haeckel)이 제시한 개체발생론(ontogeny)을 참조하여 그려낸다. 헤켈의 이론은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원리로 요약되는데, 『무정』의 주체 발생론은 이 원리와 유사한 점이 있다. 이 소설에서 속 사람은 장차 서로 다른 종이라고 할 만큼 개인마다 서로 완연히 다른 성체로 성장해갈 인간 정신의 수정란이자 에너지이다. 속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오고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에 따라서 누군가는 예수가 되고, 누군가를 그를 찌른 로마병정이 되며, 누군가는 야만인이 되고, 누군가는 문명인이 된다는 『무정』의 발생론은 개체의 발생 속에 종의 진화의 전 과정을 압축해 넣은 헤켈의 발생론과 유사한 발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무정』의 발생론은 개체의 진화적 성장을 위한 주체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헤켈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4장에서는 과학이 상대화되고 그 양가성이 부각되는 과학담론에 대응하는 텍스트로서 김동인의 소설을 고찰하였다. 그는 창조적인 자기실현이라는 낭만주의적인 목표를 지상 과제로 삼고 있었던 만큼 과학의 분석이 닿을 수 없는 영역, 즉 과학의 외부가 존재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소설을 통해 근대과학이 배제하고자 했던 우연성, 불확실성, 예측불가능성, 비결정론 등에 대해 탐구했음을 논했다. 과학으로서의 소설을 주문한 졸라의 실험소설론이 1920년대 한국에서 커다란 호응을 얻지 못한 데에는 과학에 대한 지식인들의 인식 변화, 즉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능력뿐만 아니라 그 한계와 폐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정과 관련되어 있다. 김동인 역시 과학에 대한 양가적 인식을 담은 과학담론과 유사한 태도로 과학을 평가한다. 그는 과학자와 테크놀로지스트를,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존재라고 찬양했지만 과학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그것에 의해서 완벽하게 합리적인 사회 질서가 마련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목숨」, 「K박사의 연구」에는 의사나 과학자에 대한 그의 불신이 드러나 있다. 이 소설들은 인간의 목숨이나 미각은 과학의 공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이나 차원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지대에서 과학은 무력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그가 거부하려했던 것은 인간 전체를 공식이라든가 학설로 환원하여 단순화하고 마치 그 공식이 실재인양, 보편적인 진리인양 간주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김동인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인공적 체계인 법률과 사법체계가 그 질서를 위협하는 우연성의 파괴적인 힘을 온전히 통제하거 제거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가 하면, 더 나아가 그것이 제 기능을 수행함으로 인해서 사회의 무질서를 악화시키는 아이러니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의 소설이 보여주는 이러한 비극들은 줄곧 어떤 합리적인 계획, 지배와 조절, 예측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가능하지 않은, 우연성이나 카오스적 복잡성이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세계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이해조의 범죄서사에 나타난 기계론과 감응론의 혼종성, 그리고 이광수의 에너지 우주론, 김동인의 우연성에 대한 탐구 등은 서구 근대과학을 상상력의 한 원천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단순성 패러다임에 응전해온 20세기 초 한국 근대문학의 폭과 깊이를 아울러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20세기 초 한국 근대문학은 과학기술, 혹은 과학적 세계관과 교섭하며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고 있었다. 이 시기 과학은 문학의 한 원천으로서 문학세계의 폭을 넓혀주었으며, 또 하나의 타자로서 자의식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43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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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Ph.D. / Sc.D.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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