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혼종적 정체성(hybrid identity)에 관한 연구: '페미니스트 교사'의 사례를 중심으로

Abstract

연구자는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사례를 통해 직업적 전문직성을 중심으로 논의되어온 국내 교사 정체성 연구의 한계에서 벗어나, 교사 정체성의 다층성 및 혼종성(hybridity)의 실재를 탐색하고자 한다. 더불어, 페미니스트와 교사 정체성 사례를 통해, 교사 정체성은 다층적인 정체성 범주(페미니스트 및 교사)에 의해 구성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교사 개인의 주체적인 해석 및 실천에 의해 성취되는 것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최근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등장한 페미니스트 교사 사례에 주목하여, 이들의 정체성 형성 과정과 그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교사로 인식하고 있는 세 명의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실시하였으며, 현지 자료를 참조하여 연구 자료를 수집하였다. 수집된 자료에 대한 분석은 수립된 연구 문제의 방향에 따라 분석되었으며,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페미니스트 교사의 교사 정체성 형성 과정은 어떠한가?

둘째,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을 이루는 구조는 어떠한가?

셋째,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사례를 통해 드러난 교사 정체성 형성의 특징과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 번째 연구결과에서는 연구 참여자들의 페미니스트 교사이기 이전의 생애경험과,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주요 계기 및 사건, 그리고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양상이 그들의 교육실천과 이를 통한 성찰과 변화를 중심으로 드러났다.

연구 참여자들은 페미니스트 교사이기 이전에 상이한 생애 경험을 갖고 있었으나, 교직 선택의 계기에 있어서는 공통적으로 교직이 여성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작용하였다. 여성이나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당위적인 입장에서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자기 삶과 관련한 실존의 문제로 파악하진 못했다. 연구 참여자들이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주요 계기로는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학교 전반의 성차별적인 문화 및 구조에 대한 인식, 그리고 초등성평등연구회의 결성이다.

연구 참여자들은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학교 안팎으로 다양한 실천들을 꾀한다. 학교 내에서는 그들의 성 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규 수업과 교실 일상 전반에서 그들의 페미니즘 교육실천을 구성해 나간다. 정규 수업 내에서는 교과서 및 교육과정에 그들의 성인지적 관점을 녹여서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다양한 수준에서 재구성 및 비판하는 가운데 수업을 기획한다.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지도에 있어서도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성인지적 관점을 녹여낸다. 학교 밖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전문성 개발에 힘쓴다. 초등성평등연구회를 중심으로 기초적인 수업연구부터, SNS와 출판 기획, 연수 및 강연 등을 통해 그들의 수업기획안과 교육실천 사례, 그리고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공론화하면서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자체적인 담론을 생산하고, 학교 밖의 다양한 페미니스트 교사와 연대하는 기회를 마련하여 사회적인 소통에도 참여한다.

이러한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자기 성찰과 변화의 순간을 경험한다. 연구 참여자들은 교육실천과 전문성 개발에 있어 자기 자신의 삶과 서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관점 변화를 겪으면서 학생들을 자신과 동등한 동료이자 시민으로 존중하게 된다. 연구 참여자들의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은 학교 안에서의 나와 학교 밖에서의 나가 조우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연구 참여자들은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을 통해 자기 내면의 성차별적인 관점과 폭력적인 기제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더불어, 자신이 부정했던 여성으로서의 자기 자신 또는 페미니스트 교사라기에는 부족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은 연구 참여자들로 하여금 단순히 여성 범주에 그치지 않고, 여성,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확장된 관심과 그 관심을 넘어서는 실천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이로 인해 연구 참여자들은 지속적으로 자기 경계를 깨트리는 가운데 타자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을 확장하게 된다.

두 번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연구 참여자들의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과정 이면에는 다양한 상황적 요인들이 영향을 끼쳤으며, 그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연구 참여자들은 갈등 상황에 놓인다. 이에 연구 참여자들은 그 맥락과 상황에 따라 나름의 방식으로 특정한 행위전략을 채택한다.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과정을 구성하는 요인들은 사회문화적 요인, 학교 차원의 요인, 그리고 개인 차원의 요인으로 드러난다. 연구 참여자들은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모순과 갈등 상황에 부딪힌다. 연구 참여자들이 학교 교사로서 가지는 제도적인 권위는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내적 모순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더불어 연구 참여자들은 학생(특히, 남학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이 이중적인 위치(교사이면서 여성)에 놓여있는 상황을 자각하게 된다. 또한 연구 참여자들은 학교 밖의 페미니스트들의 지지와 함께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공격적인 여론과 학교 전반에 퍼져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 사이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의 교육실천 수준과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페미니스트 교사는 자신의 역할 경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에 대해서도 갈등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페미니스트 교사이기에 주어지는 이중적인 압박을 경험했는데, 페미니스트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기대되는 이중의 요구와 시선에서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다. 학교 밖에서는 다양한 페미니스트 교사들과의 연대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같은 학교 내 동료 페미니스트 교사가 없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연속적이고 일관된 성인지적 관점을 전달하는 것을 어렵게 했고, 학교 차원에서 그들의 페미니즘 교육실천을 확장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그리고 연구 참여자들은 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실천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자원과 전문성 권위가 결여되어 있다고 느낀다.

다양한 갈등과 모순 상황에 부딪혀, 연구 참여자들은 그들이 마주한 맥락과 대상에 따라 다양한 행위전략을 꾀한다. 연구 참여자들은 그들의 제도적인 교사 권위를 페미니즘 교육실천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면서도, 권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기존의 전통적인 교사 권위와는 다른 방식으로 권위의 효과를 기대하고자 했다. 그리고 페미니즘 교육실천을 홍보하기 위해, 기존의 교사 연수 제도 등을 활용하여 공적인 경로를 통해 페미니즘 교육을 하나의 전문 분야로 편입시키는 방법을 고려했다. 더불어 자신들의 페미니즘 교육실천에 대한 담론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통한 학위 취득 등 제도적인 전문성 권위를 갖추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설득의 전략으로서 겉모습 꾸미기와 부드러운 톤앤매너 전략을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의 정서를 완화하고 대화를 가능케 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반면 연구 참여자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성차별적인 문화와 언행을 지적하고 공격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

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탐색한 세 번째 연구결과에서는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사례를 통해 드러난 여러 가지 특징들이 도출되었으며, 이 특징들이 기존의 교사 정체성 논의에 있어 가지는 의미가 탐색되었다.

첫째,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사례는 교사 정체성의 혼종성(hybridity)의 특징을 드러내어 주고, 이에 대한 이해 방향을 보여준다. 국내 페미니스트 교사들은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교사 정체성이라는 두 사회문화적 정체성 범주들 간의 혼종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은 이들 정체성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며, 이들 두 정체성과도 불화하면서 스스로 이방인이 되고, 이전에는 설명될 수 없었던 제3의 공간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으로서 이해된다.

둘째,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사례는 교사 정체성 형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학교교육 차원의 맥락뿐만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사회문화적인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교사 정체성 형성은 주로 교사 개인적인 차원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치부되어 교사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둘러싼 맥락에 분석이 미흡했다. 더불어 기존의 교사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학교교육과 교육정책이라는 교육제도적 공간 이상의 맥락과 관련되어 논의되지 못했다.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사례는 교사 정체성 형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미시적인 차원의 분석과 거시적인 차원의 분석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셋째, 페미니스트 교사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교사 개인의 행위성의 가능성과 그 양상이 드러났다. 교사 정체성은 자신을 둘러싸거나 그와 반대되는 가치 및 규범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이나 부정뿐만 아니라, 그러한 제도적 문화적 한계 내에서도 다양한 행위전략을 통해 끊임없이 저항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의 행위성은 다양한 수준과 실천 방식을 통해 드러나며, 이를 통해서만이 교사는 자신의 교사 정체성을 추구하고 주장할 수 있게 됨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국내 교사 정체성 연구에서 간과되어왔던 교사 정체성의 혼종적 특성에 주목하였으며, 이와 함께 교사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교사 개인의 행위성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기초적인 논의의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