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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크라나흐의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 연구: 루터교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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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윤혜인
Advisor
신준형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Issue Date
2018-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2018. 8. 신준형.
Abstract
본 논문은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 (이하 루카스 크라나흐)가 자신의 1538년작 에서 본래는 카톨릭 전통에 근거하고 있는 이 비성경적인 주제를 재구성하여, 성경적 권위, 유아 세례, 그리고 오직 믿음(sola fides)이라는 당시 루터의 가르침들을 그림에 반영했음을 주장한다. 은 크라나흐가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였던 요아힘 2세로부터 베를린의 참사회 교회 장식을 위해 주문받은 18개 예수 수난 제단화 중 하나의 중앙 패널이다. 이 당시 요아힘 2세는 카톨릭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제단화들이 전시되었던 베를린 교회 역시 카톨릭 성당이었다. 이 카톨릭 교회를 장식했던 전통적인 카톨릭 제단화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 그리고 그 주제 역시 카톨릭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이 그림에 내재하는 루터교적인 메시지를 가려왔던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이 주장하듯이, 이 그림은 비록 화가가 카톨릭 교회를 위한 제단화를 제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루터교적인 가르침들을 담아냈음을, 그리고 동시에 카톨릭 관자들과도 마찰을 빚지 않는 방향으로 그것을 수행해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본 논문의 2장에서는 크라나흐가 어떻게 장면에서 논란이 될 만한 요소들을 삭제함으로써 이 사건의 시간성/공간성을 지우고, 결과적으로 이 그림을 인류의 구원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논한다.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 사건의 배경은 (선조)림보로서,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이전에 구약의 의인들이 갇혀 있던 장소이다. 이 림보 이야기는 카톨릭의 전설 중 하나로서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루터는 성경의 텍스트가 이미지에 대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이미지의 주제 역시 성경적인 권위에 근거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 이야기를 비성경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지는 않았으며, 이 이야기로부터 보다 보편적인 교훈, 즉 예수가 현재의 우리를 위해 지옥을 이기고 인류를 구원했다는 메시지를 끌어내고자 했다.

크라나흐는 이 장면을 그리면서 이전의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 그림들이 전통적으로 포함하고 있던 지옥의 동굴, 부서진 문과 같은 모티프들을 삭제하였다. 그리고 그림의 주인공들(예수와 신자들)을 동시대의 교회 내부 공간에 위치시켰다. 이를 통해 이제 이 그림에서는 이 공간이 림보인지 아닌지, 그림에 묘사된 이 사건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일어났는지 아닌지에 대한 내러티브적인 세부사항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크라나흐의 은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이 사건의 내러티브적 세부사항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 주제에 대한 루터의 신학적 가르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묘사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을 묘사하는 기존의 시각 전통과는 달리, 크라나흐의 베를린 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존재가 강조되어 있다. 세 번째 장은 그림에 나타나는 이 아이들의 모티프에 집중하며, 이 모티프를 통해 크라나흐가 당시 유아 세례를 부정하던 재세례파에 대한 루터의 비판적 태도를 시각화했음을 주장한다.

재세례파는 신자가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유아의 세례가 무의미한 것이었는데, 이는 아이들은 이성이 없음에 따라 믿음 역시 가질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재세례파들을 광신론자라 칭했다. 루터는 믿음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라 주장하였으며, 오히려 이성은 믿음에 해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이야말로 더욱 적합한 세례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까지 보았다 나아가 루터는 성경의 세 복음서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축복하는 예수의 일화를 유아 세례에 대한 신의 허가로 여겼다.

크라나흐의 에서는 왼쪽의 신자 무리와 동떨어진 한 명의 어린아이가 시각적으로 강조된다. 신자 무리와 떨어져 예수 옆에 서 있는 이 아이의 위치는,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구원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구원을 약속받은 후에,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려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두 손을 모은 기도자의 자세를 취한 채, 그는 구원을 받기 위한 필수 요소인 믿음의 표본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아이의 믿음이 강조되는 크라나흐의 이 그림은, 아이들은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재세례파들의 주장에 대한 강력한 시각적 반박이 된다.

4장에서는 베를린의 을 크라나흐의 또 다른 그림인 연작과 비교하고, 크라나흐가 봄의 모티프를 믿음의 행위에 대한 시각적인 메타포로 사용했음에 대해 논한다. 루터가 어떤 선업의 수행이 아닌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크라나흐의 이 두 그림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예수를 보는 것 이외에는 자신의 구원을 위한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율법과 복음 연작에서, 크라나흐는 오직 믿음만을 통한 칭의라는 다소 복잡한 개념을 봄이라는 단순한 행위로 치환하였다. 이 율법과 복음 도상에서 모든 신자를 대표하는 한 익명의 신자는 그의 구원을 약속받기 위해 그 어떤 적극적인 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세례 요한의 제스처를 따라 예수를 올라다본다. 배경에 그려진 놋뱀은, 이 놋뱀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던 것처럼 (민수기 21:8-9), 이 익명의 신자 역시 예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즉 믿는 것 만으로도 구원을 얻을 것임을 강조한다. 이와 유사하게 베를린의 에서도 예수 옆에 서 있는 믿음의 모델인 어린아이는 예수를 보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 어린아이는 다른 어떠한 선업이나 인간의 노력 없이 보는 것, 곧 믿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크라나흐는 그가 반드시 루터교적인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 상황에서도, 의 카톨릭적 도상 안에서 여러 가지 루터교의 가르침들을 표현해 냈다. 이는 크라나흐의 미술적인 독창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루터의 가르침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신념이 결합된 결과라 할 것이다.



주요어: 루카스 크라나흐, 그리스도의 지옥 정복, 마틴 루터, 종교개혁, 림보, 재세례파, 봄의 행위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44447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rchaeology and Art History (고고미술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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