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의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 전략: 사스 사태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분석

Abstract

1970년대 이후 세계화와 정보화, 항공 교통의 발달로 인해 국가 간 상호의존이 증가하면서 인구의 이동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전염병 관련 보건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 2003년 사스 사태는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 남부의 전염병 문제가 홍콩을 통해 전세계에 퍼지면서 8천여 명을 감염시키고 수백의 사망자를 냈다. 유행병의 확산을 저지해야 할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는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인명 손실을 비롯해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치르면서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이렇게 전염병 문제는 급속도로 국경을 넘나들며 전파되고 개인뿐만 아니라 막대한 국가적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보건 분야가 국내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위협으로 부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본 논문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사스 사태의 발발과 진화 과정을 세계보건기구의 대응전략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양한 층위의 행위자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에서 위기의 출현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권력 구조의 변화를 짚어 보고자 한다. 기존의 전염병 대응 네트워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사스 사태가 등장하고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 중심의 구조를 고수하고 있었던 국제 보건 체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세계보건기구는 네트워크 내 다양한 행위자를 연결하는 구심점이 되었고, 전염병 확산 방지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행위자로서 권한을 얻을 수 있었다.

사스 사태에 직면하여 변화하는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와 세계보건기구의 전략을 살펴보기 위해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도입하였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전통 국제정치 이론이 가정하는 단일한 행위자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 이론은 네트워크와 행위자가 더욱 유기적이고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전제함으로써, 국가, 자선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행위자와 연결을 통해 행위하는 세계보건기구와 같은 행위자-네트워크의 전략을 살펴보기에 적절하다.

세계보건기구의 사스 대응 전략을 분석하기 위해 세 단계를 거치고자 한다. 우선, 국제 보건협력 체제의 성립 배경을 살펴보고 여기서 세계보건기구가 다양한 행위자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 보건협력 체제는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전염병 대응 체계를 고수하고 있었으며 사스라는 비인간 행위자가 등장함으로써 위기를 맞게 된다. 전례 없는 확산속도와 범위를 보이는 위협적인 질병의 출현으로 인해 유발된 다수의 인명피해와 경제적 피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두 번째 단계로 국제 보건 네트워크에 등장한 사스의 특성과 이 질병이 야기한 문제를 짚어 본다. 나아가 마지막으로 세계보건기구가 이러한 사스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펼친 네트워크 전략을 번역의 4단계인 문제 제기, 관심 끌기, 등록하기, 동원하기로 나누어 분석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사스 사태를 진화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권한을 얻게 되었고 이를 통해 전염병 확산방지를 위한 글로벌 보건 네트워크의 중심 행위자로서 위치하게 되었다. 기존의 네트워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행위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협력적인 정체성을 부여하는 장치를 마련하였으며 제약과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주요 행위자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제보건규칙을 개정하여 추후의 전염병 사건 발생 시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