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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친정기(高宗 親政期, 1873-1907) 궁중행사도(宮中行事圖) 연구
Court Ceremonial Paintings in the Era of King Gojong's Direct Rule (1873-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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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성영희
Advisor
장진성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Issue Date
2019-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2019. 2. 장진성.
Abstract
This thesis aims to explore the court ceremonial paintings produced during the period of King Gojong's direct rule (1873-1907) by examining how the king and his royal court used the paintings for their political purposes. Given that the court ceremonial paintings strongly reflect the nature of each royal event, this study focuses on analyzing the paintings based on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painting and the event. Main themes of the court ceremonial paintings drawn during King Gojong's reign are jinchan (進饌 court banquet), jinyeon (進宴 royal banquet), and jinha (進賀 congratulatory ceremony)
the former two are the royal ceremonies held to commemorate a congratulable event for the king and the royal family members while the latter is a royal ritual to pay felicitation to the king by his retainers.

Whereas most royal events organized in the Joseon dynasty dealt with the solid and faithful relationship between the king and his courtiers, the nineteenth-century court banquets such as jinyeon served as a platform where the king regulated the hierarchial structure in bureaucracy and exercised his power to control over the court. This shift was demonstrated in the paintings on which the king and the crown prince were distinctively depicted. In these paintings, the participating officials were depicted as insignificant figures in comparison to the royal family members in terms of their location, representation, thematic focus, and visual elements such as juryeom (珠簾 blind), bogye (補階 temporary seat) and chail (遮日 umbrella).

The jinha paintings had been made according to the king's order and direct selection on the theme. These paintings were devised to enhance the political influence of the king and the crown prince, not to accurately document the event. King Gojong particularly chose the themes through which the transcendence of the king and the crown prince can be declared such as the crown prince's birth, complete recovery of smallpox, and acting for the king. King Gojong used these paintings as a means of proclaiming his son's legitimacy and authority in visual terms.

Despite financial burden caused by the painting production, King Gojong continued holding the royal events and creating the paintings for the purpose of seizing the political hegemony and securing legitimacy in the turbulent era of the late nineteenth century. King Gojong's intention was displayed in many other court-sponsored visual materials made during the period of his direct rule. Court ceremonial paintings created during this period are of great importance because they clearly indicate how the Joseon royal court produced and utilized the visual arts in the transitional period to the modern era in Korea. King Gojong has effectively expressed and disseminated his will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by establishing a new tradition in the court banquet painting of the Joseon dynasty.
본 논문은 고종 친정기(高宗 親政期, 1873-1907)에 제작된 궁중행사도(宮中行事圖)에 대한 연구이다. 본 논문의 목표는 동 시기 왕실에서 궁중행사도를 능동적으로 제작하고 활용하였던 모습을 살펴보고 그 의의를 논하는 것이다.
궁중행사도는 국가 의례의 모습을 도회(圖繪)한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에 의례의 성격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의례가 궁중행사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이 점에 유념하여 본 논문은 국가 의례와 그림의 관계에 기반하여 궁중행사도를 분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선 필자는 진연 의례(進宴儀禮)가 어떻게 19세기에 변하게 되었으며 그 변화가 진찬진연도 제작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검토하였다. 고종 친정기 진연 의례는 대왕대비, 왕, 왕세자, 종친(宗親), 척신(戚臣), 명부(命婦), 관료 등 다양한 정치 참여 세력의 위계를 국왕 입장에서 규정하고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고종 친정기 진찬진연도의 변화는 이러한 의례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고종 친정기 진찬진연도에서 가장 강조되었던 것은 왕과 왕세자였다. 왕과 왕세자는 한 화면에서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그림의 정중앙에 차비(差備)들에게 둘러싸여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반면 실제 의례와 그림에서 왕실 친족이 아닌 일반 관료들의 지위는 축소되었고 명부, 종친, 척신, 의빈 등 왕실 친족이 관료들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 왕실 구성원의 위계는 그림의 주제, 인물들의 위치와 표현, 배경의 묘사, 주렴(珠簾), 보계(補階), 차일(遮日) 등의 시각 요소로 구현되고 차별화되었다.
또한 필자는 진하 의례(陳賀儀禮)의 성격을 살피고 이를 기반으로 진하도의 성격을 검토하였다. 진하례의 가장 큰 특징은 위계성(位階性)과 유동성이었다. 진하례를 바탕으로 한 진하도는 국왕과 관료 사이의 위계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며 국왕에 의해 제작 계기가 특별히 선택되어 그려진다는 점에서 유동성을 지녔다. 따라서 진하도는 해당 의례의 절차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왕과 왕세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화목(畵目)으로 고안되었다. 이 시기 왕실에서는 왕과 왕세자의 초월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를 특별히 지목하여 이것을 진하도로 제작하였다. 고종 친정기 진하도는 왕세자의 탄생, 천연두 완치, 국왕 업무 대행 등을 기념해 제작되었다. 이를 통해 고종은 자신의 후계자인 왕세자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고종은 진하도를 통해 왕세자가 천명(天命)에 의해 대권을 이을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왕실의 초월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17세기까지 지속되었던 관료들의 계회도(契會圖) 전통은 18세기 이후 왕실 주도의 계병(稧屛) 제작 체계로 변화되어 고종 친정기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고종 친정기 궁중 행사 계병의 주제, 형식, 좌목(座目) 기술(記述) 방법 등을 살펴보면 조선 시대 계회도 전통이 왕실로 전용(轉用)되었던 모습이 포착된다. 이와 더불어 계병 제작의 주체가 명백하게 왕실이었기 때문에 궁중행사도 제작을 위한 재원(財源) 마련도 왕실 주도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고종 친정기 진찬진연 의궤에 기재된 소요 재원 내역이 형식적으로 기입되었을 가능성과 실제 소요 재원이 의궤에 기재된 내역을 훨씬 초과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를 통해 고종 친정기 궁중행사도가 많은 이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며 무리하게 제작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고종 친정기 왕실에서 궁중 행사 설행(設行)과 궁중행사도 제작을 지속하였던 의도로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이 주목된다. 첫째, 고종은 궁중 행사를 통해 새롭게 정치 주체로 등장한 종친, 척신, 명부 등 왕실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함과 동시에 국왕 입장에서 이들의 지위를 규정하고자 하였다. 둘째, 고종은 만민 평등을 지향했던 근대화의 흐름에 맞서 왕과 왕세자의 존재에 초월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의도는 고종 친정기 왕실에서 생산된 왕실 이미지 전반에서 발견된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필자는 궁중행사도와 함께 왕과 왕세자가 직접 화면에 드러난 장르인 어진(御眞)과 어사진(御寫眞)을 비교 분석하였다.
고종 친정기 궁중행사도는 근대 전환기 왕실에서 시각 매체를 제작하고 활용했던 방식을 보여주는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본 논문은 고종 친정기 궁중행사도가 조선 왕실 미술 전통에 의거하면서도 당시 왕실의 정치적 목적에 맞추어 변화된 모습에 주목하여 근대 전환기 왕실 미술 전반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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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rchaeology and Art History (고고미술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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