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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일본 속 식민지조선의 민족담론 : 비주권적 주체성의 전개 양상
The Discourse on Nation in Colonial Korea within the Japanese Empire: Aspects of Non-sovereign Subje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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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경미
Advisor
장인성
Major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외교학전공)
Issue Date
2019-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외교학전공), 2019. 2. 장인성.
Abstract
본 논문의 목적은 식민지조선의 민족담론을 비주권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민족담론을 제국일본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관점을 취하고자 했다. 이는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파악하고 침략과 저항을 절대화시키는 기존의 관점에 대한 비판이 담긴 관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 논문은 내셔널리즘의 극복을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이미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시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내셔널리즘은 여전히 큰 규정력을 발휘하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민족주의적=주권국가적 관점을 뛰어넘기 위해 민족담론을 비주권적 주체성 담론으로 이해하고, 그 전개 양상을 역사적으로 분석했다.

본 논문에서 비주권적 주체성은 민족=주체성 담론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실제 역사적 맥락에서 전개를 살필 수 있는 분석대상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그리고 이 양 측면을 연계해주는 것이 바로 사회라는 관점이다. 사회적 관점은 비주권적 맥락을 배태하는데, 그러한 속성은 식민지시기에 나타난 담론에서도 확인된다. Ⅱ장에서는 사회담론이 일본과 조선 양쪽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살펴보고 국가로부터 분리된 영역으로서의 성격을 밝혀냈다. 조선의 사회담론이 식민지상황에서 자율적인 영역을 확보하는 노력으로 나타났다면, 일본의 사회담론은 식민통치담론과 연계되면서 식민지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논리를 낳았다. 전자의 맥락이 표출된 것이 3.1운동이었다면, 후자의 맥락이 반영된 것이 문화정치의 콘텍스트였다. Ⅱ장에서는 이러한 맥락이 조선의 주체성을 둘러싼 논의에 어떠한 함의를 초래했는지, 특히 주권국가적 의미로부터 분리되는 측면을 밝혔다. 이러한 논의는 후속 장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Ⅲ, Ⅳ, Ⅴ장에서는 비주권적 주체성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다. 조선의 민족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비주권성은 합법성으로서 기능했다. 따라서 Ⅲ장과 Ⅳ장에서는 합법성의 테두리 안에서 전개된 주체화의 양상을 담론과 운동의 차원에 나누어 분석했다. 우선 Ⅲ장에서는 조선의 민족운동을 둘러싼 논의들을 특히 통치와 민족 사이의 상관관계를 염두에 두고 살펴보았다. 조선의 민족운동에 대한 통치자의 의도는 흔히 분열정책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는데, 본 논문에서는 이를 특정한 입장-민족주의 좌파-을 대변하는 관점으로 보고 지양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총독 사이토의 브레인이었던 아베 미쓰이에(阿部充家)의 인심수람론(人心收攬論)을 통해 통치자의 인식을 살펴보는 동시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양자의 상관관계 속에서 분석했다. 양자의 논의는 조선의 민족운동을 합법적=비주권적 공간에 위치짓는다는 점에서 일치했는데, 그렇다면 그 속에서 주체화는 어떻게 모색되었을까. 조선의 민족운동은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정치화를 모색하게 되는데, 이때 나타난 것이 독립과 연루된 기존의 의미로부터 탈각된 생(生)의 정치담론이었다. 그것은 제국이 설정한 합법성=비주권성 안에 스스로 포섭되는 담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선의 민족운동을 정치적 세력으로 주체화시키는 담론이기도 했다. 이처럼 Ⅲ장에서는 생의 정치담론을 통해 협력과 저항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주체화의 양상을 밝혔다.

다음 Ⅳ장에서는 민족운동의 정치화를 향한 움직임에 통치자와 사회주의자까지 합세하면서 각축장으로서의 신간회가 형성된 과정을 살폈다. 이는 Ⅲ장에서 밝힌 생의 정치담론이 운동으로서 실천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신간회에 대해서는 그동안 협동전선의 관점이 지배적이었는데, 본 논문에서는 이를 특정한 세력-민족주의 좌파와 일부 사회주의-에 점유된 관점으로 보고 지양하고자 했다. 각축장으로서의 신간회란 이를 담아낸 개념인데, 신간회를 조선의 정치운동에 대한 통치자, 민족주의, 사회주의 각각의 의도가 복잡하게 얽힌 운동으로 보는 것이다. 이때 신간회 역시 합법성=비주권성이라는 테두리 안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거기서 주체화의 양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Ⅳ장에서는 이를 두 가지 유형의 협동을 통해 살펴보았다. 하나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 간에서 이루진 협동으로, 스스로를 생존운동으로 규정하면서 자기결정의 영역을 견지했다. 다른 하나는 민족주의 우파와 사회주의 간에서 이루어진 협동으로, 스스로를 생활운동으로 규정하면서 자치와 반제를 공존시키려고 했다. 양쪽 모두 제국이 설정한 합법성=비주권성 속에 스스로 포섭되는 운동이었지만, 그런 한편으로 제국이 의도한 바를 미끄러뜨리는 측면-자기결정 및 반제-을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 Ⅴ장은 비주권적 주체성의 전개 양상을 학술의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비주권성이 Ⅲ, Ⅳ장에서 합법성으로 기능했다면, Ⅴ장에서는 학술성이 그것을 받아주는 개념으로 기능했다. 문화정치의 콘텍스트에서 조선의 주체성은 인정 혹은 관용의 대상으로 탈바꿈되었는데, 이는 조선의 역사를 다루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주체성을 비주권적 것으로 틀지은 것이 학술성이었다. Ⅴ장에서는 이를 역사편찬사업의 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다. 역사편찬사업은 3.1운동 이후 동화를 목적으로 한 반도사 사업에서 학술성을 내세우는 조선사 사업으로 탈바꿈했다. 즉 동화로부터 학술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는데, 본 논문에서는 단군 문제를 통해 양 사업에서 조선의 주체성을 다루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전자가 단군을 역사에서 배제하는 데 주력했다면, 후자는 단군을 역사 속에 어떻게 자리매길 것인지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학술성이라는 틀 속에서 단군=조선의 주체성에 부여된 주어진 자리는 역사의 주변적인 자리에 불과했다. 본 논문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을 통해 주체화의 양상을 포착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최남선의 발언에 주목했다. 단군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최남선의 발언은 학술성 속에 주어진 자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와 별도로 단군을 존립시키는 의도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남선의 발언은 협력과 저항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주체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식민지의 민족담론은 독립=주권국가적 주체성을 갈망하면서도 비주권적 맥락에 들어와야지만 전개될 수 있는 아이러니컬한 연구주제이다. 주권국가적 주체성을 중시하는 기존의 관점에서는 이 점이 간과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식민지조선의 민족담론을 비주권적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제국일본이 설정한 테두리 속에서 전개된 주체화의 양상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것은 기존의 관점에서는 포착될 수 없는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본고의 이러한 관점은 민족담론을 민족주의적 시각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재구성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결과는 저항에 대한 기존의 의미에도 변경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의 분석은 내셔널한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삶(生)을 통해 저항의 의미를 생각할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This dissertation aims to understand the discourse on nation in colonial Korea beyond the paradigm of sovereignty. To that end, I argue that the discourse on nation should be understood in relation to the Japanese empire, in an effort to critique the binary opposition between metropole and colony which tends to be fixated on the conventional framework of invasion and resistance. In that respect, this dissertation concerns how to overcome nationalism. Although a number of critiques of nationalism have been presented, nationalistic approaches to colonial Korea still cast a long shadow over the field of studies of colonial Korea. In order to go beyond such a nationalistic or nation-state centered paradigm, this dissertation conceptualizes the discourse on nation in colonial Korea as the discourse on non-sovereign subjectivity and analyze various aspects of the discourse in the historical context.

In this dissertation, I employ the term non-sovereign subjectivity as a critical method to examine the previous literature on the discourse of nation/subjectivity, and as the subject of analysis of this study. The perspective of society mediates these two aspects. That is, the context of non-sovereignty is embedded in the perspective of society, which appeared in various discourses in the colonial period. In Chapter 2 I examine how the discourse on society unfolded both in Japan and Korea, and elucidate the autonomy of the social discourse from the state. Whereas the discourse on society in colonial Korea took shape as an effort to secure an autonomous sphere under the colonial condition, the discourse on society in Japan gave birth to the logic of recognizing the autonomy of the colony. The former took the form of a social movement, namely the March First Movement, while the latter was reflected in the context of the Cultural Policy. The focus of Chapter 2 is the implications of discourses on Korean subjectivity, particularly the context in which the notion of Korean subjectivity became detached from the nation-state centered paradigm. The discussion in this chapter is important as it lays the groundwork for the discussion in the following chapters.

Chapters 3, 4, and 5 explore the unfolding of non-sovereign subjectivity. In the course of the national movement in colonial Korea, non-sovereignty functioned as legitimacy. Thus, I look at aspects of subjectification within the legal limit, at the levels of discourse(Chapter 3) and social movement(Chapter 4). In Chapter 3, the primary subject of analysis is discussions on the Korean national movement, with an emphasi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governing and nation. While the Japanese rulers have been viewed as intending a policy of divide and rule, this dissertation takes a critical stance on that view in that it represents a certain perspective held by the left-wing nationalists. Paying attention to Abe Mitsuie, an adviser to the Governor-General Saitō Makoto, I examine his win-the-peoples-heart theory (jinshin shūran ron) as an avenue for understanding the rulers perception. In addition, I examine Yi Kwangsus theory of national reconstruction vis-a-vis Abes theory. If Abe and Yi shared common ground in that their discussions placed the Korean national movement in the legal/non-sovereign realm, how was subjectification sought in the process? As the Korean national movement in the 1920s sought politicization, the discourse of the politics of life, which was dissociated from the previously stressed concept of independence, emerged. While on the one hand such a discourse was subsumed into the discourse of legitimacy/non-sovereignty circumscribed by the empire, on the other hand it was a discourse that subjectified the Korean national movement as a political power. As such, through the lens of the politics of life, Chapter 3 illuminates the aspects of complex subjectification that intersects cooperation and resistance.

Chapter 4 examines how the colonial rulers of Korea and socialists got involved in turning Shinganhoe into an arena of competition as part of the process that the discourse of politics of life became actualized as a social movement, as described in Chapter 3. Whereas the prevailing view of Shinganhoe in the previous literature is that Shinganhoe was a united front, this dissertation contends that such a view has been held by the left-wing nationalists and some socialists. By employing the concept of Shinganhoe as an arena of competition, I stress that Shinganhoes activities were a complex movement in which various actors including the colonial rulers, nationalists, and socialists aimed to pursue their intentions. And they were also within the framework of legitimacy/non-sovereignty. Then how did the subjectification unfold? Chapter 4 provides a window into this process by looking at two types of cooperation. The first type was between the left-wing nationalists and socialists, who advocated a movement for survival and self-determination. The second type was between the right-wing nationalists and socialists, who defined themselves as carrying out a movement for life and aimed at the coexistence of self-rule and anti-imperialism. While both types of cooperation, on the one hand, were movements that became subsumed into the categories of legitimacy/non-sovereignty, on the other hand they distorted the intention of the empire in that they pursued self-determination and anti-imperialism.

Chapter 5 looks at the academic dimension of non-sovereign subjectivity. If non-sovereignty functioned as legitimacy in the discussions in Chapters 3 and 4, in Chapter 5 I show that academicity functioned as a concept corresponding to non-sovereignty. As in the context of the Cultural Policy, the subjectivity of Korea was transformed into an object to be recognized or tolerated in the field of Korean history as well. Against this backdrop, academicity played a role in defining subjectivity as non-sovereign. Chapter 5 analyzes the history compilation projects in colonial Korea. After the March First Movement, the history compilation projects shifted its focus from putting forward the Japanese governments assimilative purpose as expressed in the compilation of Pandosa to placing an emphasis on academicity, the claimed purpose of launching the compilation of Chosŏnsa, namely a turn from assimilation to academicity. By focusing on the debate on Tangun, this chapter explores the ways in which Korean subjectivity was discussed in the two projects. While the former concentrated on excluding the narrative of Tangun from history, the latter centered around how to situate Tangun in history. Yet, Tangun, who symbolized Korean subjectivity, occupied only a marginal place within the boundary of academicity. In capturing aspects of the subjectification process, this chapter pays special attention to Ch'oe Namsŏns remarks. By examining Ch'oes remarks during the debate on the issue of Tangun, I demonstrate that his remarks played a performative role in securing the place of Tangun in academic discourses on Korea history, albeit accepting the marginal place for Tangun within academicity. In that regard, Ch'oes remarks implied the process of complex subjectification which both cooperation and resistance were interweaved.

To explore discourses on nation in the colony entails the difficulty of capturing the ironic coexistence of desire for nation-state based subjectivity and its non-sovereign context. Considering that the nation-state centered perspective often fails to fully address this issue, this dissertation looks at the complex aspects of subjectification in which the limits set by the Japanese empire and various discourses on nation interplayed with each other, in order to come up with a critical analysis of nationalist view of nation. By doing so, this study aims at reconstructing the discourse on nation, as well as calling for a reinterpretation of the meaning of resistance.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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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Political of Political Science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정치외교학부)International Relations (외교학전공)Theses (Ph.D. / Sc.D._외교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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