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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문론과 그 실천 양상 연구 : 도학(道學)적 문론과 그 실천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 in Early Joseon: Focusing on the Dohak(道學)`s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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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계영경
Advisor
이정환
Major
인문대학 미학과
Issue Date
2019-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미학과, 2019. 2. 이정환.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changing process of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 until the settlement of Neo-Confucianism after the introduction of Neo-Confucianism in Korea. This means that it is meaningful not only to examine the change of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 but also to examine the process of replacing the existing ideology with the new ideology of Neo-Confucianism.

One thing to be aware of in studying the introduction of a new ideology and the process of its settlement is the question of whether the new ideology is internalized by individuals. In particular, considering the Goryeo and Joseon alternative that is one of the subjects of this paper, it is exactly the question of whether ideological change from Goryeo which advocated the fusion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basically based on Buddhism, however) to Joseon which rejected Buddhism and Taoism and advocated only Neo-Confucianism, internalized by individuals or not. This is also a problem that can not be judged solely by social and official words of individuals. This is because the public speaking does not guarantee the practice in the personal field. In this context, confirming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 of the ruling class of Early Joseon can be one of the effective ways to confirm the degree of internalization. Because they carried out the formal-political work as well as the personal exchange in the human relations through the literary works.

This paper basically distinguishes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 from Goryeo to Joseon according to the period of time, and the overlapping characters are classified again by their characteristics. In the case of Late Goryeo and the founding period of Joseon, there were many people whose active times were overlapped. While the characters classified in Goryeo did not want the fundamental change of the state and the ideological unification of the Neo-Confucianism, the characters classified in the founding period of Joseon, who supported the fundamental revolution and the ideological unification of the Neo-Confucianism. The classification of 15th-century Gwanin(官人) literary men and Sarim(士林)-Dohak scholars in the latter half of the 15th century is primarily due to the time of year, but the overlapping characters in time classified again by their undersatanding of Neo-Confucianism 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 literary practice.

Now I summarize briefly the results of this study. In the case of Late Goryeo, it is believed that the Neo-Confucian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s have been shown by the Neo-Confucian scholars, but basically, I could not be sure whether it was based on the Neo-Confucianism or the pursuit of general good(善) that could be applied to Buddhism and Taoism too. In the case of the Goryeo`s Neo-confucian scholars who refused the ideological unification of the Neo-Confucianism and prefer Buddhism to the cultivation of the individual, it was hard to expect the internalization of the Neo-Confucianism. Neo-Confucian scholars of the founding period of the Joseon showed at least an attempt to be faithful to the principles of the Neo-Confucianism in the public sphere. However, in the case of the individual part, it still showed following the conventional custom, and it showed the limit of revealing the dual image which does not coincide with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 Since the middle of the 15th century, the Gwanin literary men had shown more Neo-Confucian behaviors in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 because they based on the learned attainments of the early childhood. However, by the influence of the family, and by the fact that the literature that they practiced mainly had to praise the blooming reign, they did not show well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its practice attributed to the internalization of the Neo-Confucianism. In the latter half of the fifteenth century, the Sarim emphasized the principles of the neo-Confucianism, especially the practice. They are also called the Dohak scholars, and the literature of them is called the Dohak literature. They basically insist on Dobonmunmal(道本文末) theory based on the Dohak`s principle that refuse the efforts for the literary form and demand cultivating individual minds. The good literature for them was to reveal itself without any kind of efforts when the cultivation of mind was enriched. In the sixteenth century, the Dohak`s thory of literature and literary works were intensified and settled by Lee Eon-Jeok and Lee Hwang. And by Lee Hwang, the importance of literary form was recognized again. Therefore the Dohak`s theory of literature became a general theory of literature of the Munjilbinbin(文質彬彬) again and became a mainstream theory of literature in Joseon.

Although this paper is basically about the special situation of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in this paper, it can be suggested that a new ideology is introduced into a society, deepened and settled, and also about the mainstreaming process of that society. It is also about the internalization of the newly introduced ideology. Therefore I expect that this paper will contribute to the general study about the introducing, deepening, settlement, and internalization of a new ideology.
본 논문은 고려말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전래된 이후 조선 전기를 거쳐 그것이 정착될 때까지의 문론과 그 실천 양상의 변화 과정을 고찰한다. 이는 문론과 문학적 실천의 변화를 살피는 자체로도 의미가 있음은 물론,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이념이 전래되어 기존의 이념을 대체하는 과정을 고찰한다는 의미도 가질 것이다.

새로운 이념의 전래와 그 정착과정을 연구하는데 있어 주의할 점은 그 새로운 이념이 과연 개개인에게 내면화되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논문의 대상이 되는 고려와 조선의 교체기를 생각해보면 유교, 불교, 도교의 융합을 기본으로 한다지만 사실상 불교가 이념의 전면에 나섰던 고려로부터, 불교와 도교는 배척하고 성리학 유일 이념 체계를 표방한 조선으로의 이념적 변화가 과연 개개인에게 내면화되어 그들의 신념, 태도, 행동의 변화까지 일으키는 기준이 되었는가의 문제라 할 것인데, 이는 또한 개인의 사회적, 공식적 언사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문제이기도 하다. 공적인 부분에서의 언사가 개인적 영역에서의 실천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 전기의 지배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대부들의 문론과 그 문학적 실천을 확인하는 것은 내면화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 중 한 가지가 될 수 있다. 문학을, 시문(詩文)을 통해 공식적-정치적 업무는 물론 인간관계에서의 개인적 교류까지 수행했던 당시 사대부들의 상황은 문론과 그 실천을 확인함을 통해 그들이 성리학이란 새로운 이념을 과연 내면화했는지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 논문은 문론과 그 실천의 변화 양상을 살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사상, 이념이 전래하여 내면화되고 기존의 사상, 이념을 대체하는 과정을 고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이 논문은 고려말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문론과 그 실천 양상을 우선 시기에 따라 구분하였으며, 시기적으로 겹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특징에 의해 다시 분류하였다. 고려말과 조선 건국기의 경우 활동시기가 겹치는 인물들이 많았는데, 고려말로 분류된 인물들이 국가의 근본적 변화, 또 성리학의 유일이념화를 원치 않았던 반면 조선 건국기로 분류된 인물들은 성리학의 유일이념화를 표방하며 국가의 근본적 변화, 조선으로의 역성혁명을 지지했다는 특징을 보였으며 이에 따라 인물들을 분류했다. 15세기 관인문학가들과 15세기 후반에 등장한 사림(士林)-도학(道學)자들의 분류도 우선적으로 시기에 따른 것이지만, 일부 활동시기가 겹치는 인물들은 그들이 가진 성리학에 대한 이해, 문론과 그 실천의 차이 등의 특징에 따라 구분했다. 이런 구분은 물론 성리학 전래 이후 정착과 심화까지의 내면화 과정, 또 그에 따라 등장한 성리학적 문론과 그 실천 양상의 변화 과정, 사림들의 도학적 문론과 그 실천 양상의 변화과정을 확실히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연구 방법을 통해 도출된 연구의 결과를 간략히 언급하자면, 고려말의 경우 성리학자들에 의해 성리학적 문론과 그 실천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 문론과 실천이 반드시 성리학에 의거한 것인지, 혹은 불교, 도교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 선(善)의 추구에 의거한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성리학의 유일이념화를 거부하고 개인의 수양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교를 우선시하던 고려말 성리학자의 경우 불교 이념을 성리학적 문사로 표현했을 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성리학의 내면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조선 건국기의 성리학자들은 적어도 공적인 부분에서는 성리학적 원칙에 충실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개인적 부분의 경우 여전히 기존의 관습을 따르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문론과 그 실천에 있어서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이중적 모습을 드러내는 한계를 보였다. 15세기 중반 이후 관인문학가들의 경우에는 어려서부터 학습한 성리학적 소양 등을 바탕으로 문론과 그 실천에 있어 전대에 비하자면 보다 성리학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시기적으로 성리학 이해가 부족했던 이유, 고려말부터의 명문가 출신이라는 가계(家系)의 영향, 또 이들이 주로 실천한 문학이 치세를 노래해야하는 관각문학이라는 이유 등으로 인해 성리학적 원칙에 충실한, 성리학의 내면화로부터 기인하는 문론과 실천을 보이지는 못했다. 15세기 후반에 등장한 사림들의 경우 성리학적 원칙을 중시하고, 특히 그 실천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들을 도학파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런 특징이 드러난 이들의 문론을 도학적 문론이라 부른다. 이들은 도학적 원칙에 근거하여 기본적으로 도본문말(道本文末)적 문론을 주장하는데, 문학적 형식에 대한 노력은 거부하며, 개인의 심성 수양에 힘쓸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좋은 문학이란 심성 수양이 충실해졌을 때 어떠한 작위적 노력 없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16세기에 들어 이언적과 이황에 의해 이런 도학적 문론과 문학 작품은 심화, 정착되는데, 특히 이황에 의해 문학의 내용[道]을 강조함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다시금 문학적 형식의 중요성도 인정받게 되니, 도학적 문론은 문질빈빈(文質彬彬)한 일반 문론화되어 이후 조선의 주류 문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지금까지 언급한 본 논문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고려말과 조선 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것이지만, 한 사회에 새로운 이념이 유입되어 심화, 정착되고, 나아가 그 사회의 주류 이념화되는 과정에 대한 것, 또 새롭게 유입된 이념의 내면화에 대한 것이기도 하기에 새로운 이념의 유입과 심화, 정착, 내면화에 대한 일반적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2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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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esthetics (미학과)Theses (Ph.D. / Sc.D._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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