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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弼의性其情論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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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호연

Advisor
Yi, Guo
Major
인문대학 철학과
Issue Date
2019-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철학과, 2019. 2. Yi, Guo.
Abstract
王弼的性其情論構建了一個動態的性情結構,並對"性"概念與"情"概念賦予了不同以往的哲學意義。從思想淵源上來看,"性其情"的提出可以追溯到兩漢時代的性情論。漢代的儒家認為"性"兼有道德與血氣兩種性質,"情"不必然與惡相關且由於是聖人制禮作樂的依據而需要保留;漢代的道家認為"性"是自然與虛靜的合一,"情"由於動而為惡是需要被去除的對象。這些論述為王弼構建自己的性情理論提供了豐富的資源,而他之所以能夠綜合儒道思想很大程度上又源自與王氏家族關係緊密的荊州學派的歸本納原的治學風氣。但是學術方法上的影響並不必然導致哲學思想上的延續,玄學性情論本身的問題意識和概念譜系並沒有在荊州時代出現,所以不能因為學術背景上的關聯而忽視王弼本人的創新。這種創新體現在與"性其情"直接相關的兩個文本中,其一是王弼本人對"性其情"的論述,其二是皇侃對王弼"性其情"的解讀,通過這兩個文本,我們可以知道"性其情"的含義並非是本性對情欲的主動抑制,而是以虛靜不動的本性的自然狀態為基準而進行的情欲的複歸。



王弼之所以把虛靜作為本性的哲學意蘊是因為他主張只有通過回溯時間上的原點才能從根本上理解人性。王弼認為萬物在存在的初始階段都處於一種不動的虛靜狀態,在這種狀態中,"性"由於沒有後天的干涉,也就不存在任何的規定性,因而也就不會陷入任何可能的缺陷中。同時,由於在初始階段尚未獲得具體的性質,處於虛靜之中的本性不可以被語言概念所描述。這種不能被經驗認識且沒有實體性質的內涵被王弼稱之為"無"。王弼的創見在於,從根本上揚棄了無與有的生成關係,用"有始於無"的思路把兩者描繪成時間上的相續關係,這樣一來,"無"便不是如西方哲學中"本體"一般高級的超越性存在,而是"有"的初始階段。在王弼的哲學思想中,本性之"無"是不可再被追問前提的起點,它以否定的形式揭示出人性在在根源上的超驗性。由於超驗的本性無法運動,性其情的動力便只能來自於情欲。在王弼思想中,欲可以分為兩個層次,一個是受本性影響幾乎保持無為的自然之欲,一個是過分發動而導致惡的發生的過度之欲。欲望減損過度之欲的層面回歸自然之欲的層面的過程就是性其情的過程。所以無論是把情感上升到聖人的高度,還是把情感具象為欲望,王弼對於"情"具有一貫的肯定立場。在這個肯定中,既包含著他對情不可去的堅持,也包含著他對寡欲而近性的要求。情"的存有意味著人無論多大程度上去實現"性其情"都不能脫離物而存在。在王弼的論述中,人通過性其情而意欲實現的理想人格並不必然導致其與物的關係的斷絕,事實上恰恰相反,人通過對物己關係的精准把握成就了自己的理想人格,這也是"情"概念本身的哲學意蘊。而對王弼性情思想這種哲學意蘊的實踐,則要靠聖人與眾人的互動完成。聖人在通無而具有本真的虛靜之性的同時又能與眾人同情而相感,眾人通過學習聖人便有了從性情失其本真而流蕩逸失的狀態回歸到篤受虛靜而性情久行其正的狀態的實踐上的可能性。所以聖人既是實踐"性其情"得以可能的原因,又是實踐"性其情"後成功的結果。在這個實踐過程中,聖人由於對眾人的歸正而實現了治道上的目的,即,社會秩序的確定,這也使得理論上的性情關係直接指向了現實上的政治考量。這種政治旨趣也使得王弼的"性其情"思想具有了強烈的現實關懷。



王弼對於性情的這些闡釋可以視作魏晉玄學性情論的代表觀點。從嵇康、阮籍、向秀、郭象、張湛等玄學家的性情論述中,我們可以看到王弼關於萬物自生自化以及自生時所具有的模糊混淪的不可經驗認識的狀態和場域的論述是當時被普遍採納的觀點。並且王弼所提出的運動的情欲向虛靜本的性複歸的學說,也可以被視為魏晉性情哲學的範式。只不過"性"及其之上的存在問題由於只涉及純粹的理論在魏晉時代基本保持了一致,而"情"及其之下的社會秩序問題由於還涉及治道的複雜現實而在魏晉時代表現出不同的走向。結合魏晉時代的整體哲學史的價值再重新審視"性其情",就會發現王弼以時間意識完成了對本性的思考,又從本性的價值進入到對情欲的功用的探討,在這個探討中,王弼不僅把欲分為兩個層面而保證了情的存有必要性,還引入了物我關係而再一次豐富了自己性情理論的哲學性。這些論述也成為了之後中國性情論發展的新方向,無論是對"性其情"的延續還是超越,王弼的觀點都成為了中國性情哲學發展歷程上不可回避的標杆,而具有重要的研究價值。
왕필의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性其情)."는 이론은 이중적 성정 구도를 확립했고, 또한 성과 정 개념에 대해서 이전 시대와 다른 철학적 의의를 부여했다. 사상연원상에서 보자면,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의 출현은 양한 시대 성정론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한대 유가는 성과 정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은 도덕과 혈기라는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정은 반드시 악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인이 제작한 예악에 의거해서 단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대 도가는 성과 정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은 자연이면서 동시에 텅 비고 고요한 것이고, 정은 작용하면 악한 것이 되므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논의는 왕필이 자신의 성정론을 세우는 데 풍부한 자료를 제공했고, 또 그가 유가와 도가 사상을 종합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왕필 집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형주학파(荊州學派)가 복잡한 것은 없애고 간략한 것을 취한다는 학풍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다만 학술 방법의 영향이 반드시 철학사상의 연관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현학 성정론 자체의 문제의식과 개념은 결코 형주 시대에 출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학술배경상의 문제로 왕필이 새롭게 만든 이론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왕필이 새롭게 만든 이론 가운데 하나가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이다. 이 명제와 직접 연관된 문구는 두 가지이다. 첫째, 왕필 본인이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에 대해서 논술한 것이다. 둘째, 황간이 왕필의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에 대해서 해석한 것이다. 두 가지 문구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필자는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의 함의가 결코 성이 주동적으로 정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욕은 텅 비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본성을 기준으로 삼아서 본래 상태로 회복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왕필은 텅 비고 고요함으로 본성의 철학적 함의를 규정한다. 왜냐하면 시간상 원점으로 돌아가야만 비로소 인간 본성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필은, 만물이 존재하는 최초 단계는 텅 비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상태의 성은 후천적 간섭을 받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규정성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결함도 일으킬 수 없다. 아울러 최초 단계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성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텅 비고 고요한 본성은 언어나 개념으로 묘사할 수 없다. 왕필은 이처럼 경험으로 인식할 수도 없고 실체도 없는 상태를 무라고 칭한다. 왕필의 독창성은 근본적으로 유와 무의 생성 관계를 버리고, 유는 무에서 시작한다.라는 관점에 의거해서 무와 유를 시간상의 연속 관계로 설명한다. 이로 인해서 무는 초월적 본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유의 최초 단계인 것이다. 왕필의 철학사상에서 본성인 무는 더 미루어 물을 수 없는 기점이다. 이는 부정의 형식으로 본원상 인간의 본성은 경험을 넘어서 있다는 점을 제시한 것이다. 경험을 넘어서 있는 본성은 움직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성정 수양의 동력은 정욕으로부터 말미암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성정 변화는 정감을 성인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든지 아니면 정감을 욕망으로 구체화하든지 왕필은 정에 대해서 일관되게 긍정적 입장을 갖고 있다. 여기서 긍정은 정을 제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과도한 욕망을 줄이고 성에 가까워지도록 요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정의 존재는, 성정 변화의 과정 중에 정도상의 차이와 관계없이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를 실현하는 것은 외부대상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왕필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적 인격을 실현하려는 사람은 결코 외부대상과 떨어져서는 안 되고, 오히려 나와 외부대상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이상적 인격을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이 또한 정 개념 자체의 철학적 함의이다. 그리고 왕필 성정에 대한 철학적 함의의 실천은 성인과 보통 사람의 상호작용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인은 무를 통해서 텅 비고 고요한 본성을 갖고 있으며, 또한 동시에 보통 사람과 동일한 감정을 갖고 있어서 서로 감응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성인을 통해 학습하면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방탕한 데로 흘러간 성정을 본래 받은 텅 비어 고요한 상태로 돌릴 수 있다. 본래 상태를 회복하면, 성정은 오랫동안 올바른 실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성인은 보통 사람은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를 실천할 수 있는 원인일 뿐만 아니라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를 실천한 후에 성취하는 결과이다. 따라서 성인은 보통 사람들이 올바름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는 또한 이론상의 성정 관계가 현실상의 정치를 직접 지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정치 지향은 또한 왕필의 성정론에 내포된 강렬한 사회 참여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왕필의 성정에 관한 이런 해석은 위진 현학 성정론의 대표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혜강, 완적, 향수, 곽상, 장담 등 현학가의 성정론을 통해서, 필자는 만물이 스스로 생기고 변화한다.와 스스로 생겨날 때 갖고 있는 모호하고 뒤섞여서 경험으로 인식할 수 없는 상태와 영역에 대한 왕필의 논술이 당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관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필자는 정욕이 텅 비고 고요한 본성의 상태를 향해 복귀한다.라는 왕필의 학설 또한 위진 시대 성정 철학의 모범적 도식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위진 시대 성과 그 이상의 존재 문제는 기본적으로 순수 이론적 측면에서 일치하는 견해를 가졌지만, 정과 그 이하의 사회질서 문제는 정치 방법상 복잡한 현실과 관련되어서 다른 지향을 추구하였다. 위진 시대 전체 철학사를 종합해서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를 재검토해보면, 왕필의 시간에 대한 의식이 자신의 본성론을 완성시켰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본성의 가치로부터 정욕의 작용에 대해서 탐구해보면, 왕필은 또한 물아 관계를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의 성정 이론의 철학적 함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왕필은 본성을 가치 기준으로, 정욕을 수양동력으로, 성인과 범인의 상호 작용을 실천 방법으로 하고 세운 성정 구도를 정립해나갔다. 이 같은 내용은 후대 중국 성정론 발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로써 보건대, 성을 기준으로 정을 변화시킨다."를 계승하든 초월하든 왕필의 성정론은 중국 성정 철학 발전사에 피할 수 없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성정 철학 연구사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획득하게 되었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2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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