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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곤』의 일러스트레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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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맹현정

Advisor
김영나
Major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Issue Date
2012-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2012. 2. 김영나.
Abstract
이 논문은 한국 최초로 취미잡지를 표방하며 1926년부터 약 8년간 발행된 『별건곤(別乾坤)』의 일러스트레이션에 관해 고찰한 것이다. 『별건곤』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한국의 시대적 상황을 읽어내는 데 필수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실익과 상식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다양한 분야의 글과 함께 수록되었던 『별건곤』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시각미술의 한 장르로, 텍스트(text)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넘어 스스로 독자적인 표현과 언어를 갖춘 텍스트가 되기도 했다.
한국 근대 인쇄미술의 시작은 1896년 2월 소학교용 교과서로 발간된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의 삽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나, 근대 일러스트레이션의 시초는 1883년 발간된 한국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의 창간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근대 일러스트레이션 장르의 시작은 근대 신문의 창간과 맞물려 있으며 교과서의 삽화보다 앞서 신문의 삽화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0∼1930년대에 발행된 모든 정기간행물은 신문지법(新聞紙法)과 출판법(出版法)에 의거해 법적 규제를 받았다. 신문지법에 의한 발행허가를 받은 신문, 잡지는 사전에 원고검열이 없이 인쇄된 간행물을 납본하는 것이었으나 출판법에 의한 간행물은 미리 원고검열을 받은 후에 제작이 가능했다. 1920년대 초반에 창간된 잡지들은 신문지법에 의해 검열을 받았으며, 1920년대 중반 이후 발간된 잡지들은 출판지법에 의해 검열을 받았다. 1920년대 중반 이후 발간된 잡지들이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지 않고, 가벼운 형식으로 발행된 것은 원고검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별건곤』이 발행되던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당시 순수회화만이 엘리트 문화라는 인식이 강했고, 대중적이며 쉽게 접할 수 있는 인쇄미술은 저급하게 인식하는 사회적 시각이 있어 일러스트레이션은 하나의 미술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당시 이름을 날렸던 유명 화가들도 신문사의 미술기자로 활동하며 일러스트레이션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했는데, 화가와 독자 모두 일러스트레이션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는 사실에 동의했으나, 화가들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예술보다는 생계를 유지하는 하나의 기술로 여겼고, 독자들 또한 일러스트레이션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별건곤』은 읽을거리가 취미가 되던 때에 시기적절하게 출판되었는데, 취미는 교양 또는 상식으로 대체될 수 있는 용어로 쓰였다. 취미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던 대다수의 당대인들에게 취미는 마땅히 학습되어야할 것으로 여겨졌고, 취미가 개인적 기호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입된 교육에 의해 결정되었던 시기에 『별건곤』은 다방면의 기사들을 통해 대중들의 취미를 개발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다양한 기사와 함께 실렸던 일러스트레이션은 지식과 정보, 일상 등을 문자보다 더 쉽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일차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당시 발행되던 잡지 표지의 주요 흐름은 여성인물 독상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작업하는 것이었다. 여러 계층을 독자층으로 흡수하고자 했던 『별건곤』은 남녀노소 연령과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인 동물을 의인화한다든지,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데이트 풍경, 홀로 노를 저으며 풍류를 즐기는 모던보이 등 특화된 소재를 표지의 소재로 다루었다. 또한, 근대에 새롭게 행해지기 시작한 여가문화인 밤 벚꽃놀이와 금강산 관광 등을 표지화로 다루며 만화적 요소를 표지에 가미하여 차별화했다.
근대의 새로운 지식계층들은 오늘날 대중스타들처럼 일거수일투족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는데, 이러한 대중적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신문과 잡지는 신지식인들의 특징과 근황을 익살스럽게 묘사할 수 있는 캐리커처(caricature) 장르를 매체 속으로 끌어 들였다. 『별건곤』은 여타 매체보다 먼저 캐리커처를 소개하며 인물의 특징을 명확하게 잡아낸 뒤 적절하게 묘사하여 이후에 다른 매체에 등장하는 캐리커처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취미잡지였지만, 일본의 출판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별건곤』은 시사만화가 허용되지 않던 현실을 직시하고, 시사만화를 대신할 장르로 만문만화(漫文漫畵)를 선택하여 당대의 새로운 문화와 세태를 예리하면서도 거부감이 들지 않게 풍자했다. 만문(漫文)이란 일정한 형식 없이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며 만문만화는 대개 한 컷짜리 만화에 짧은 글이 결합된 형태로 이루어진다. 『별건곤』은 발 빠르게 만문만화 장르를 한국에 소개한 매체 중 하나였다.
각 신문사에 미술담당 기자가 있어 시각 이미지와 관련된 모든 작업을 하던 것과 달리 『별건곤』에는 소속된 미술담당 기자는 없었다. 많은 미술인들이 『별건곤』의 일러스트레이션에 참여한 결과 여러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실을 수 있어 그 구성과 내용이 풍부해지고, 다양성을 추구한 셈이 되었다. 안석주, 김규택이 『별건곤』에서 비교적 다작을 발표했는데, 안석주는 모던도시 경성과 도시를 살아가는 동시대 근대인들의 모습을 과장하여 우스꽝스러운 면을 강조하는 만화적인 필체가 두드러지는 반면, 김규택은 주제를 좀 더 정면으로 무겁게 받아들이면서 묘사적이고 사실적인 필치를 선보였다.
회화작품을 발표하지 않으며 주로 일러스트레이터로만 활동했던 안석주나 김규택과는 달리, 당시 이미 유명세를 탔던 화가들도 일러스트레이터로 『별건곤』에 일러스트레이션을 발표했는데, 창덕궁 벽화 장식을 맡았던 노수현과 이상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네 차례나 특선을 차지한 이승만도 『별건곤』에 일러스트레이션을 싣기도 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일종의 보는 매체가 되었던 『별건곤』은 친숙하지 않은 현상과 사건 등을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구체적이고 용이하게 제시할 수 있어 근대인의 인식의 재편성에 영향을 미쳤다. 5전에 불과한 잡지를 한국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던 『별건곤』은 취미라는 명목 아래 다채로운 읽을거리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잡지 속으로 끌어들임으로 대중성을 확보해 잡지의 내용과 형식의 재구성을 초래했고, 이는 진정한 의미의 종합잡지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This thesis is focused on the illustrations of a magazine called Byeolgeongon, which had been published for eight years since 1926. Byeolgeongon covered various subjects enough to be appraised as an essential magazine for understanding Korean comtemporary circumstance at that time from late 1920s to early 1930s. The illustrations of Byeolgeongon which contained texts from diverse fields had become texts with an independent expression, as well as a language beyond supporting the contents.
The beginning of Korean modern printed art is known as the illustrations of Shinjeongsimsangsohak, which had been published as a textbook for elementary school in February, 1896. However, the inception of the illustration genre in Korean modern art was related to the foundation of modern newspaper in 1883, illustrations in newspaper had been printed and published even before it was used in the textbook.
Every regular periodical published in 1920s∼1930s was under control by the Publishing Law and the Newspaper Law at the time. Newspapers and magazines were only permitted to be published under the Newspaper Law, a specimen copy was presented to the authorities without censoring the manuscript. Periodicals were permitted to be published under the Publishing Law which were only allowed to be published after censoring the manuscript. Magazines founded in early 1920s were inspected by the Newspaper law and magazines founded after mid 1920s were inspected by the Publishing law. It would be related to the fact that magazines founded after mid 1920s were not socialistic in light versions since they were published after censoring.
When Byeolgeongon had been published, the painting was recognized as only elite culture. Since popular and easily approaching printed art was recognized as a low grade art, illustration could not be regarded as a part of art. Both artists and subscribers realized to the fact that illustrations draw readers' attention, artists considered illustrations as just a skill rather than a form of art and the general public did not consider illustrations as anything extraordinary.
At the time when reading' became a hobby, Byeolgeongon was published; the word hobby' was a term could be replaced to culture' or common sense.' Most of people were unfamiliar to the term hobby' and it was considered to be learned. When the hobby' was determined by education from the outside' rather than a personal taste, Byeolgeongon played a role to develop and educate people's hobby through articles from various fields.
The mainstream of cover design for magazines was to illustrate a female portrait in 1920s to early 1930s. However, the illustrations of animals show a peculiarity of Byeolgeongon's cover design. Animal' was a popular subject to be appealed to anyone and it was a proper subject to achieve a goal to absorb various classes to Byeolgeongon's readers. A date of a modern boy and a modern girl was a particular subject for Byeolgeongon's covers and a comic element was added to the cover designs which treated a new leisure culture in modern times.
Every intellectual's every action aroused people's intention like celebrities of the day; to fulfill people's interest, newspapers and magazines introduced the caricature genre that could describe the intellectuals' a distinctive feature and a recent condition. Byeolgeongon was one of the first media which introduced the caricature genre and caricatures published in Byeolgeongon became a standard for caricatures in other media.
Manmoon' is a writing without a special form or system, the Manmoon- cartoon' is comprised of a cut of cartoon and a short writing. Byeolgeongon was not free from the censorship of Japan which resulted the fact that political cartoon' was not allowed. Instead, Byeolgeongon chose the Manmoon- cartoon' and satirized a new culture and social conditions keenly.
Unlike other newspaper companies which had a newspaperman who was in charge of every work related to the visual image, Byeolgeongon did not employ anyone special who was in charge of the visual section. As a result, many artists participated in Byeolgeongon's illustrations, so the formation and contents became affluent. Suk-Choo Ahn and Kyu-Taek Kim presented abundant productions in Byeolgeongon; Ahn exaggerated modern city, Kyungsung and contemporary people in cartoon style. However, Kim treated subjects in a direct and serious way with the realistic touch.
Ahn and Kim were known as illustrators, but famous contemporary artists also presented their illustrations in Byeolgeongon; Soo-Hyun Rho and Sang-Beom Lee who painted a wall painting of Changdeok Palace and Seung-Man Lee who won the highest honors for four times at Chosun Art Exhibition.
By using illustrations constructively, Byeolgeongon became a visual media. Unfamiliar phenomenons and occurrences were presented easily and it influenced to reorganize contemporary people's perception. Byeolgeongon dragged in diverse subjects and illustrations to the magazine and attained popularity; it lead to reconstruction for magazines' contents and forms and became the starting point of a genuine general magazine.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4562

http://dcollection.snu.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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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rchaeology and Art History (고고미술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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