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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국제협조주의 비판 : Colonial Koreas Critique of Internationalism in the 1920s: Debate on the Washington System
워싱턴체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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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권민주

Advisor
하영선
Major
외교학과
Issue Date
2012-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외교학과, 2012. 2. 하영선.
Abstract
본 논문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구미에서 일본을 거쳐 전파(傳播)된 국제협조주의(國際協調主義, internationalism)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떤 언어와 논리를 통해 이해되었는지 검토한다. 국제협조주의는 국가 주권에 대한 일정한 제약을 통해 독립주권을 가진 국민국가 간의 평화와 안정을 모색하는 정치이념으로서, 국제연맹의 설립을 비롯한 전간기(inter-war period) 국제질서 구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국제협조주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192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에서는 국제협조주의에 대해 강한 비판이 나오고 있었다. 실제로 서구 국가들은 국제협조를 통해 역내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고 전간기의 불안정한 국제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생으로 귀결되었다.
1920년대 국제협조주의를 비판했던 조선인들이 바라고 있었던 전간기 국제질서와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어떤 모습이었으며, 그들은 어떻게 협조주의적 평화구상의 비현실성을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인가? 이와 같은 연구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1차 세계대전이 직후 국제협조주의가 동아시아로 전파되는 과정 속에서 식민지 조선인이 민족자결과 세계개조의 논리를 수용했던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조선과 일본에서 출간된 신문과 잡지에 대한 검토한다. 이를 통해 국제협조주의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조선인들의 긍정적․부정적 견해를 분석하고, 국제협조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조선인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려 한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워싱턴군축회의(1921-1922)로 형성된 국제협조체제, 소위 워싱턴체제를 둘러싼 논쟁을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워싱턴체제는 1931년 만주사변 발생까지 동아시아 지역의 협조체제로 기능했으며, 일본과 식민지 조선 내에서 체제의 성과와 전망에 대해 국내 차원의 치열한 논쟁을 야기했다. 특히, 워싱턴회의 기간 독립운동의 실패에 실망한 조선 지식인들이 국제협조주의가 가진 모순, 즉 생존경쟁적 질서를 비판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연구는 먼저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직후, 조선인들은 국제협조주의를 세계개조라는 포괄적이며 이상적인 개념군의 하나로 이해했음을 밝혀낸다. 세계개조에 대한 논의는 당시 국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생존경쟁론에 대한 비판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일부 조선인들은 국제협조주의를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와 대별되는 개념으로 파악했고, 조선 민족이 국제협조체제를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들은 조선 민족이 국제연맹의 구성원이 될 수 없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정의의 실현이 세계대세라고 보았다.
그러나 워싱턴회의 기간에 이루어진 일련의 독립 청원이 실패하며, 식민지 조선인들은 승전국이 주도한 국제협조체제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인에게 국제협조체제인 워싱턴체제는 역설적으로 상호부조가 아닌 생존경쟁의 국제질서를 상징하게 되었다. 국제협조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은 전후 협조주의를 통해 확립된 국제관계에서도 생존경쟁과 세력균형이 지배적이라고 보았으며, 훗날 대전(大戰)이 또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들 중 일부는 사회주의 논리를 통해 국제협조주의를 비판했으나, 일부는 현실주의적인 시각에서 전후 국제정치의 핵심 행위자가 계급이 아니라 국가라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했다.
국제관계가 상호부조가 아니라 생존경쟁으로 나아가는 것은 식민지 조선 민족의 장래에 큰 문제였으나, 국제협조체제를 통해 조선인을 고려하지 않는 강대국만의 협조가 유지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였다. 이상적인 형태의 상호부조가 실현되지 않는 국제정치 속에서,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요구하던 조선인은 협조주의의 성패를 둘러싼 필연적인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즉, 상호부조의 원칙에 토대를 둔 국제협조체제가 실현되기를 갈구하면서도 강대국들만의 국제협조체제는 깨어지기를 바라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인들은 국제협조체제의 본질과 장래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식민지 조선의 정치사회는 사상적으로 점차 더욱 분화되어 나갔다.
본 논문은 국제협조주의 개념의 전파 과정을 밝혀냄으로써 국제정치적 아이디어가 제국이 아닌 식민지 조선에서 이해되었던 방식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조선의 정치사회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식민지 조선에서 이루어졌던 국제정치학 논쟁의 맹아를 추적함으로써 한국의 국제정치학사를 재검토할 수 있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5263

http://dcollection.snu.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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