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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상통제기제의 역사적 형성과 '보도연맹 사건', 19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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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강성현
Advisor
정진성
Major
사회학과
Issue Date
2012-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Abstract
한국전쟁기 수많은 비무장 민간인들이 대량학살되었다. 그 가운데 보도연맹 사건으로 개전 직후 약 3-4개월 동안 전국에 걸쳐 약 10만 명에 가까운 보도연맹원이 목숨을 잃었다. 전선에서 계속 패퇴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자국민에 대한 학살이었다. 당시 이승만정부는 보도연맹원을 전시 내부의 적이자 외부의 적과 내통할 수 있는 빨갱이로 인식했다.
빨갱이는 이승만정부 사상통제의 운용 결과 양산되었다. 사상통제는 원래 일본과 그 식민지에서 출현한 사상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역사적 개념이었다. 사상통제는 좁게는 과격하고 위험한 특정 사상에 대한 통제, 넓게는 사상 자체의 금기시를 의미했다. 그런데 사상은 개인의 마음속에 위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개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일제는 그것을 위한 매뉴얼과 도구로서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사상통제기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그것은 해방 이후 한국의 사상통제기제로 변용되었다. 빨갱이는 이 사상통제기제의 효과로서 탄생한 존재였다.
이 논문은 한국 사상통제기제의 역사적 형성과 보도연맹 사건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사상통제기제의 역사적 계보와 작동 및 그 효과를 분석하고, 그것이 보도연맹 사건으로 어떻게 귀결되었는지 규명하고자 했다.

1) 여기에서 사상통제기제란 세 가지 요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이 네트워크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사상통제법과 사상통제기구 간의 네트워크이다. 기존 연구들이 사상통제법체제로 포착하는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그 사상통제법체제와 관변사상동원단체 간의 네트워크이다. 관변사상동원단체는 사상통제법체제가 양산한 사상범을 전향시키고 관리․동원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사상통제법체제는 개인의 마음속 사상을 판단해 처벌했고, 전향시켰으며, 보호를 명분으로 감시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권력기술을 통해서 그들의 몸을 규율화해 몸과 함께 정신을 동원한다. 단체원들은 그렇게 배제된 채 포섭된다. 사상통제기제의 작동 효과는 이런 위치의 존재들을 양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상통제기제 작동의 임계를 넘어가는 상황이 발생할 때 이 존재들은 언제든 배제의 문턱을 넘어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임계상황이란 전쟁상태이다. 그나마 전방이 국외에서 형성되는 국외전쟁 상태에서는 국내후방의 사상통제기제가 임계로 치닫지 않는다. 그러나 전방이 국내에서 형성되고 국내의 전장화가 빠르게 확산되면, 그래서 적이 도처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내전상태의 전장화가 도래하면 사상통제기제는 임계를 넘어서 불능상태로 치닫는다. 그 결과 단체원들은 내부의 적으로 간주돼 절멸되어야할 절대적 적으로 상정되고 이를 정당화시키는 절멸 이데올로기가 강화된다. 이런 특정 조건에서 사상통제기제는 학살기제로 전화되고, 단체원들에 대한 대량학살이 발생하게 된다.

2) 이러한 사상통제기제가 일제시기에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 1925년 4-5월에 일본과 식민지 조선(과 대만, 사할린)에서 성립된 치안유지법 제정이 그 시작이었다. 치안유지법은 일본에서 최초로 국체를 법조문에 기입한 법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형사법의 철칙인 행위 결과를 두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목적을 판단해 처벌하는 최초의 법이었다는 것이다. 즉 치안유지법은 국체변혁 행위 결과가 없어도 어떤 결사조직 행위만을 가지고 변혁 목적과 자의적으로 결부시켜 처벌하는 법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 법은 세계사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사상처벌법이었다. 이후 치안유지법은 두 차례 개정을 통해 사상처벌법에서 전시법으로 발전해갔다. 신치안유지법(1941)은 사상범 보호관찰 법령(1936)과 예방구금 법령(1941), 전시 방첩을 위한 국방보안법(1941) 등 사상 및 방첩 관련 법령들을 전시 치안유지법계열로 구성해갔다.
사상통제법은 국가기구 내 사상통제를 전문으로 하는 조직의 분화 및 강화를 가져왔다. 사상통제 전문 조직들이 경찰, 검찰, 재판소, 군 등에 설치되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1928년 탄생한 사상검찰은 사상관계 형사사법과 법무행정의 전반에서 사법과 행정의 영역을 오가며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구였다. 사상검찰은 사상문제의 주도권을 두고 경찰 등 여타 형사사법 국가기구들과 경쟁하면서 검찰 주도의 사상사법을 구축했다. 그리고 사상검찰은 각 형사수속 단계에서 운용하는 독특한 권력기술을 발명해 이를 무기로 사상전을 수행했다.
사상검찰은 사상통제를 보완하기 위해 1938년부터 여타 사상통제기구들과 협력해 민간 부문에 관변사상동원단체를 만들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 조직화와 동원을 위해 국가기구들이 나서 관변대중동원단체를 만드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상전향자를 대상으로 조직, 동원한 것은 일제가 처음이었다. 사상보국연맹과 대화숙이 바로 그것이다. 사상전향자들은 한 때 항일세력을 대표하는 적이었다. 그런 적들을 체제 내로 포섭해 여러 권력기술과 실천을 통해 규율화하고 그 신체를 동원하는 것은 사상통제 당국, 더 나아가 식민통치 당국의 입장에서는 상징적으로 매우 의미가 큰 것이었다.

3) 해방 직후 소멸되는 듯했던 일제 사상통제기제는 빠른 속도로 재구축되어 한국 사상통제기제로 재탄생했다. 미군정은 치안유지법 등 식민지 사상통제법 일부를 폐지했지만, 이를 대신하는 포고2호 계열의 군정법령들을 만들었다. 또한 폐지가 명시되지 않은 식민지 사상관계 법령들을 부활시켰다. 그리고 1948년 12월 정부 수립 직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치안유지법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국가보안법은 1925년 치안유지법의 조문을 참조해 만들어졌지만, 1928년 치안유지법과 1941년 신치안유지법의 흔적도 강하게 배어 있었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엄벌 방침은 신치안유지법의 영향이 컸다. 법 운용의 방침과 지침은 더욱 그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된 것은 국가보안법 조문에 없는 법 운용의 방침이라는 괴리였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개정된 국가보안법은 형식적․구조적으로는 신치안유지법으로 돌아갔고, 내용적으로는 신치안유지법보다 더 강력한 엄벌주의 방침을 견지했다. 국가보안법은 사회에 대한 합법적 내전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사상검찰 또한 부활되었다. 미군정의 점령사법 아래에 식민지 사상검찰은 거의 해체되었지만, 검찰은 검찰권 강화를 위해 물밑에서 사상검찰 조직의 부활을 계속 시도했다. 그러다가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사상검찰은 재조직되었고 사상사건(좌익사건) 처리에 적극 나섰다. 그 과정에서 사상검찰은 경찰(사찰과)과 헌병대 및 육군 방첩대(CIC)와 사상사건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경합․갈등했지만, 1949년 중반 이후 이 기관들에 대해 상대적 주도권을 쥐고 반공사법을 구축할 수 있었다.
1949년 4월 보도연맹 결성으로 관변사상동원단체 역시 부활했다. 사상검찰(서울지검 정보부)과 경찰(서울시경 및 각 도경찰국 사찰과)이 공식적으로 주도했고, 군이 비공식적으로 공조했다. 보도연맹은 초기에 사상전향자단체였다는 점에서 일제의 사상보국연맹과 거의 동일했다. 그러나 지방지부 결성이 본격화되면서 성원의 성분에 변화가 생겼다. 성원 자격이 사상전향자에 국한되지 않고 그 가족과 일반 대중들에게 열려버리면서 전향자단체의 성격은 탈각되었고, 반공과 방첩을 강조하는 대중동원단체로 전화해갔다. 문제는 이렇게 무분별한 가입이 무분별한 좌익 낙인으로 기능해 사회문제로 불거졌다는데 있다. 당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탈맹을 보도연맹의 주요 사업으로 도입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보도연맹의 특수한 성격을 보여준다. 사상과 대중을 통제하고 동원하기 위한 단체의 결성과 활동의 최종 단계가 이 단체의 탈퇴라는 것은 일제의 단체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차별적인 것이다.

4) 일제와 한국의 사상통제기제는 사상범, 즉 각각 아까(アカ)와 빨갱이라는 존재를 탄생시켰다. 아까와 빨갱이는 둘 다 사람의 속성을 빨강(赤)이라는 색깔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데가 있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지칭했지만,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의미가 완전히 열린 채 부정의 낙인으로 기능했다는 점도 상당히 유사하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차별적 의미화의 지점도 있다. 아까라는 낙인은 지극히 부정적인 것이었음에도 극단적인 배제(예컨대 절멸, 섬멸 등)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까는 포섭의 대상이거나 적어도 배제한 채 포섭하는 대상이었다. 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면서 일제는 포섭을 거부하는 아까(비전향자)를 예방구금하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배제했지만, 그것은 제한된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담론상으로도 이들에 대한 포섭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빨갱이는 아까와 달리 죽여도 되는 존재, 더 나아가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존재를 의미했다. 다시 말해 빨갱이라는 이름-용어에 절멸과 섬멸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 내전 상황에서, 즉 국가건설, 혁명과 반혁명, 봉기와 진압 등의 내전이 교차하는 예외상태(비상사태)적 상황에서 빨갱이의 의미화가 극단적으로 치달으면서 생긴 결과였다.
이렇게 보면 보도연맹을 통해 빨갱이를 포섭하려는 당국의 시도는 위험천만한 것이었으며, 그 자체로 파국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오히려 보도연맹이 관제 빨갱이 낙인으로 기능하면서 절멸 대상자들의 명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5) 한국전쟁의 발발은 한국 사상통제기제의 작동의 임계점을 넘어가는 상황을 발생시켰다. 사상통제의 법적 구조는 예외상태(비상사태) 창출의 법적 구조물 안으로 용해되어 대량학살의 대상을 제공하고 이를 처리하는 수단적 합리성으로 작용했다. 보도연맹원(사상통제의 대상)에 대한 이승만정부의 예비검속과 학살은 법의 바깥(혹은 법의 폐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예외상태를 상례화시키는 법적 구조(비상사태하범죄처벌에관한특조령과 계엄법)와 그것을 운용하는 권력기술이 작동하면서 진행되었다.
이승만정부의 보도연맹원 학살에서 생존한 보도연맹원들은 북한 점령하에서도 그 처지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 점령당국 역시 보도연맹원을 점령사법의 구조에 근거해 변절자이자 반동분자로 분류․배제했다. 이에 따라 정치보위국과 내무서에 의해 처단 내지 숙청되었거나, 혹은 의용군 동원을 통해 전장으로 동원돼 죽었다.
During Korea war, numerous unarmed civilians were massacred. Among those dreadful genocides, Bodoyonmang incident, the one of the most terrible massacre from Korean War, is known for about 100,000 deaths during 3 or 4 months just after an outbreak of the War. This massacre was committed by the national power in the retreating way back to south at very pressing moments. At that time, president Rhee SungMan and his government recognized those members of Bodoyonmang as the enemies inside and, also Bbalgangi(reds in Korea) spying for external enemies at North.
Bbalgangi is the one of tools produced from the Thought Control operation system by Rhee SungMan government. 'Thought Control' has its own historical background since Japanese colonial period which was made for treating the Thought Trouble emerging through the colonial people. Thought Control is, in a small sense, a control to a specific thought which is radical and dangerous, and in a large sense, a banning any thought(thinking) at all. At this point, it is clear that a thought exists in one's own mind. In other word, for controlling thought, the government needs to look into, recognize, and judge one's mind. Therefore, Japanese Colonial administration made its own peculiar manual and tool, Thought Control Mechanism (TCM), as singular in history. Then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the TCM switched into neo-TCM of South Korea. In fact, Bbalgangi is one of the notions affected by the TCM.
This study selects the historical formation of TCM of modern Korean society and the case of Bodoyonmang as the subjects of research for analyzing the chronicles and historical backgrounds, the operation and effect of TCM. Then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process and reality of Bodoyonmang incident.

1) In this study, researcher defines TCM as a network between three elements. This network also includes two small networks at large. The first network is made of the Thought Control Law and the Thought Control Apparatus. This is the part that many former existing studies focused into as Thought Control Law System (TCLS). The other one is the network of the Thought Control Law and Administered Thought Mobilization Organization (ATMO). ATMO is the organization targeting Political Offender, accused and produced by Thought Control Law System, to convert and manage the offenders. TCLS recognizes and judges one's ideological orientation and punishes the individual and convert his thought, and after then, monitored him under the guise of protection. On this process, government power regulates one's body to mobilize his body and mind at once with using many power techniques. Like this, members of this organization have to be excluded and contaminated. The real effect of TCM operation is a producing these people at the excluded and contaminated status.
However, these people bear strong, inherent possibility to overcome their status of exclusion at the threshold point of TCM's operation. In this context, the threshold point is a state of war. When the battlefield locates out of the national territory, the TCM on the rear of battle doesn't reach the threshold point. However, when the front of battlefield arrives into the national territory, and the more domestic area turn into battlefield, thus the status of civil war finally comes with the extreme vigilance for throughout enemies and then TCM operation turns into inoperative and approaches to threshold point. As a result, members are recognized as enemies inside and regarded as absolute enemy to be killed off and the extermination ideology to justify this exclusion and punishment. On these specific circumstances, TCM gets transformation into genocide mechanism therefore the mass of genocide occurs for its result.

2) This TCM was formed through Japanese colonial period with its own historical background. For the first, in April to May of 1925, the Peace Preservation Law was enacted throughout Japan, the main land and other colonies-Joseon, Taiwan, and Sakhalin-. The Peace Preservation Law was the first Japanese written law which includes Kokutai(国体) within the provisions. However, the more thing to focus on is that this law overset the basic premise of criminal code, treating the facts constituting an offense as the object of punishment and punished purpose or motive of the offense. In other words, the Peace Preservation Law can punish individuals for not a result of offense to threat the political system of the state, but even for a motive within any conducts of association, society-based on arbitrary judgment to combine the motive with the latent result to upset the national system. For this, this law is defined as the unprecedented Thought Punishment Law in history. After that, the Peace Preservation Law had developed through two amendments, from thought punishment law to war-time law. Until 1941, the Neo-Peace Preservation Law formed the war-time peace preservation legal system through thought control law and counter intelligence law; Protective-Supervision Law (1936), Preventive-Detention Law (1941) and National Defense Security Law (1941) for wartime counter intelligence.
Thought Control Law strengthened and divided the thought control organization within governmental system. The professional organizations on thought control were set up in offices of the police, prosecution, law court, and military. And among these, the Thought-Prosecutor was the only governmental organization possible to exceed the border of jurisdiction and administration throughout the criminal justice and judicial administration related with thought control. Thought-prosecutor competed with other governmental organizations like police, and built 'Thought Justice' lead by the prosecution. Also, thought-prosecutor invented very unusual power skills in process of management and performed the 'Thought War'.
Thought-Prosecutor cooperated with other thought control organizations and made administered thought mobilization organization among private sector to complement the thought control system. Looking through world history, it is strange that governmental organizations set up Administered Mass Mobilization Organization to social association and mobilization. However, Japanese colonialism was the first to organize and mobilize this organization targeting a thought convert; Sasangbogukyonmang(思想報國聯盟) and Daehwasuk(大和塾). Those though coverts are once the enemy represents resistance to Japanese colonialism. Therefore, to embrace them into colonial system, regulate them using power skills and practices, mobilize their bodies had very symbolic meaning to colonial government.

3) After the liberation, the former TCM which disappeared with the collapse of Japanese colonialism was rapidly re-built and renovated as the TCM in modern Korean society.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MGIK) abolished some of colonial though control law-peace preservation law and others-but enacted the Military Ordinance affiliated with Proclamation No.2 replacing the former TCM. Also, USMGIK revived the many of colonial thought control legal system not to have been stated to be abolished. Finally, the National Security Law (NSL) enacted just after the establishment of government of Republic of Korea at December 1948, was the complete revival of the peace preservation law. Even the National Security Law referred to the peace preservation law from 1925, it also included many of peace preservation law from 1928, and neo-peace preservation law from 1941. In particular, those severe punishment polices of NSL were originated from neo-peace preservation law. In specific, the policy and guidelines on law enforcement featured that. The most problematic issue was the gap between written provisions of LSL and actual policies of law enforcement, and to resolve the issue, the government of ROK amended the LSL. The amended LSL went back to the neo-peace preservation law in its formation and structure and went more severe on its enforcement than neo-peace preservation law in its actual contents. It means that LSL implied the characteristics of lawful civil war towards whole national society.
The thought-prosecutors were also revived. The thought-prosecutor almost disappeared under the Occupation Justice of USMGIK, but the prosecution had tried gradually to recover the mighty power of its thought-prosecutor organization. And then, after the enactment of LSL, the thought-prosecutor was re-organized and stood front of treating thought-crime (the left crime). In this process, thought-prosecutor, Thought-Police, military police, and Korean Army Counter Intelligence (CIC) competed sharply but after middle of 1949, the thought-prosecutor could obtain relative dominance and build up the Anti-Communist Justice.
As Bodoyonmang was associated at April of 1949, the Administered Thought Mobilization Organization (ATMO) also re-appeared. The thought-prosecutor (Information Division of Seoul District Public Prosecutors' Office) and police (Seoul City Police and each Investigation Division of Province Police Bureau were lead of it and military organizations supported it. At first, Bodoyonmang was similar with Sasangbogukyonmang(思想報國聯盟) in terms of that it was thought mobilization organization. However, as local branch launching was into raging, the origin of the members were divided into several features. The restriction of membership, limited to thought converts were removed and the membership became open to general public then the characteristic of this organization degenerated into public mobilization organization emphasizing anti-communism and counter-intelligence. In here, the issue is that this indiscreet entrance worked indiscreet branding as the left and then caused many social problems. Government adopted the Withdrawal from Organization as a main project of Bodoyonmang. It reflects the remarkable characteristic of Bodoyonmang. Bodoyonmang was differentiated with other former Japanese colonial organizations for that the ultimate step of thought control and mobilization was to withdrawal from organization.

4) TCM of Japanese Colonialism and ROK government created Thought-Criminal into two shapes; Aka(reds in Japan) and Bbalgangi. Aka and Bbalgangi are common with to define one's characteristic using color-red(赤). As primary meaning, both terms depreciate communist, and the more remarkable common feature is that both are open to interpretation and work as symbol of exclusion. However, these are different in signification. Even Aka implies extremely negative meaning, it doesn't mean extreme exclusion, i.e. extinction, extermination. Rather than that, Aka was the target of containment or, at least of exclusion but containment. As the war spread out to Pacific area, Japanese colonialism preventively detained the unconverted and excluded them from society, but this was limited to some cases and furthermore, the possibility of containment was expressed in colonial discourse. However, Bbalgangi is differentiated from Aka since it means the readily-condemned criminal, even as the criminal must be killed. As it shows, the name or term Bbalgangi already bear the extiction, extermination and possible genocide within. This is a result from radical, extreme signification of Bbalgangi on state of civil war, about the establishment of the ROK government, throughout the process of building a state, revolution and its anti-revolution, rebellion and repression on it; a state of exception.
As above, trying to switch Bbalgangi to the convert through Bodoyonmang lead by government was very dangerous and furthermore, it involved catastrophic result. Because the list of Bodoyonmang membership turned into government-made Bbalgangi list and finally converted into hit list to be killed.

5) The outbreak of Korean War caused the threshold point of TCM operation in Korea. The legal system of Thought Control was melted into legal structure for the state of exception (emergency state), provided the hit list of victims of genocide, and worked for instrumental rationality to justify the genocide. The preliminary custody and genocide committed by Rhee's government did not occur outside of legal system but occur inside the legal system that made a state of exception into customary practice (i.e. martial law or special law for punishment) and used law enforcement and management.
Even under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BRK), the survived members of Bodoyonmang, who were the victims of genocide committed by Rhee's government, were treated harshly. The occupation troops from DBRK also divided and excluded them as betrayer, reactionary based on military occupation jurisdiction. As a result, the rest member of Bodoyonmang were punished, purged, or conscripted to volunteer army and then dead or hurt on battlefield.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6376

http://dcollection.snu.ac.kr:80/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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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Sociology (사회학과)Theses (Ph.D. / Sc.D._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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