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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원죄론의 형성과 그 종교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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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안연희
Advisor
배철현
Major
종교학과
Issue Date
2012-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Abstract
이 논문은 로마 제국과 그리스도교가 극적으로 화해한 4,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이 형성된 개인사와 교회사의 다양한 맥락들을 검토하고, 후기 고대 지중해 종교사의 흐름 속에서 그의 원죄론이 보편적 교회의 교리로 수용된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재서술을 시도하였다.
4세기 말부터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 타락신화를 바울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원죄 교리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에 따르면 아담이 지은 최초의 죄(행위)와 그 결과(죽음과 부패된 본성)가 죽음, 고통, 의지의 분열과 무기력, 통제되지 않는 충동 등 총체적으로 악화된 인간조건을 초래했으며, 신적인 은총만이 인간을 온전히 그로부터 해방시킨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교의 교의 개념인 원죄를 개인사, 교회사, 후기 고대 종교사의 확대된 맥락 속에서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관련된 원죄 교리의 의미론을 더 포괄적이고 종교사적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할 수 있다.
먼저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의 신학적 개념에 이르게 된 구체적 계기들은 펠라기우스 논쟁의 발단이 된 『고백록』의 자전적 서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후기 고대 종교의 핵심적 주제인 악(malum)과 영혼의 구원 문제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탐구와 그리스도교적인 해법을 자신의 극적인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악의 문제가 수수께끼가 된 자기 체험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과, 회심에 이르기까지 앎(지혜)과 행위 사이에서의 치열한 내적 사투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교인으로 거듭난 이후에도 지속되는 습관의 폭력적 힘에 대한 그의 쓰디 쓴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앎과 자유의지가 아니라 기쁨과 은총(사랑)의 관점에서 인간을 재평가하는 원죄론의 사유에 도달하게 된 내적 계기였다. 그뿐 아니라 『고백록』은 형식적으로도 원죄의 신학을 구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백록』은 회심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삶을 죄스런 삶으로 신 앞에 증언하는 고백(confessio)의 행위를 통해서만, 죄로부터 자신을 돌이킨 신을 찬양하고 자기애를 넘어 신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역설적인 인간의 자리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례 이후 평신도로서 금욕 수도생활을 하던 아우구스티누스가 갑작스럽게 주교로 발탁되어 교회사의 공적 세계와 합류하게 된 것은 그의 원죄론을 심화시킨 사회적인 지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도자로서의 철저한 자기 검토와 세례 이후 습관의 힘에 대한 성찰이 낳은 그의 새로운 자기 인식은, 구체적 사목의 현장에서 대면한 평범한 그리스도 교인들의 삶에 대한 뼈저린 공감과 만나 신학적으로 융합되면서 원죄론이 교리적 체계로 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내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바울 서신 해설에서, 모든 인간이 아담의 죄로 인해 필멸성과 부패된 본성을 타고 나며 신의 은총이 없이는 스스로 믿음을 시작하거나 선을 실천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펠라기우스 논쟁은 그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신학이 교회 내부의 저항과 비판에 직면해, 자신의 관점을 공동체의 선례와 전통의 권위에 접속시킴으로써, 공적 담론인 교리의 지위를 획득한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원죄론이 자신의 새롭고 개인적 주장이 아니라, 보편적 교회의 확고한 근본적 신앙임을 입증하기 위해, 성서 외에도 특히 유아세례의 근거와 일차적인 공동체 의식인 세례에 대한 당대 그리스도교의 암묵적 전제에 호소하였다. 이것은 공동체의 선례와 의례가 경전이나 신학만큼 교리 형성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5세기 원죄론의 교리화는 후기 고대의 주도적 종교로 떠오른 그리스도교가 보편적 교회의 정체성을 더 포괄적 의미로 재확립해야 했던 맥락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4세기 이래 그리스도교 공인과 제국 종교화라는 새로운 조건에 처한 교회는, 더 이상 세속사회와 이분법적으로 구별된 거룩한 교회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원죄론은 첫째, 교회와 세속 사회가 모두 원죄의 적용을 받으며 동시에 은총의 대상이 된다는 관점을 통해 보편적 교회의 통합적 원리를 제공했다. 둘째, 모든 그리스도 교인에게 신의 은총을 필요로 하는 죄인으로서 공통분모를 확인시켜, 그리스도교 내부의 영적 엘리트와 신앙 대중의 이원화 경향에 대하여 보편적 일치를 주장하는 교리적 개념이었다. 셋째, 원죄 개념은 세례 이후에도 계속되는 죄의 습관과 이교적 과거의 유산을 폭로하고 동시에 구원론의 틀 안에 수용할 수 있는 교리적 장치가 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넷째, 원죄를 사면할 수 있는 은총의 유일한 기관으로서 가톨릭교회의 성사와 성사를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 주교의 종교적 권위를 정당화했다. 마지막으로, 보편적 교회와 세속 권력의 긴장과 공존이라는 새로운 교회-국가 모델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면서 결과적으로 5세기 이후 서방 그리스도 교회를 뒷받침하는 효과적인 교리 개념이 되었다.
리쾨르의 악의 상징 언어로 치환해서 말하면, 원죄 교리는 후기 고대에 이르기까지의 죄 개념의 내면화와 개별화 흐름 속에서, 내적 죄의식의 상징과 외부적 악, 죄의 연대성의 상징을 재통합한 새로운 악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특정 지역과 민족을 넘어서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확대될 수 있는 새로운 종교 공동체의 탄생과 관련된 악의 상징이었다. 또한 참회의식을 통해 잘못을 고백하고, 세례를 통해 신의 구원 능력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복합적이고 역설적인 경험을 교리 형식으로 상징화함으로써,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사회의 상호적, 선별적 카리스'(charis)개념을 변형시킨 바울의 신적, 무차별적 카리스 개념에 근거하여 초자연적 영감인 카리스를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또한 원죄 교리를 매개로 그것을 모두에게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죄인인 모든 사람에게 가능해진 신의 은총이, 은총의 유일한 기관인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총과 관련된 원죄 교리는 다수를 포용하고 교회를 개방하지만, 동시에 배제와 강제의 수단도 될 수 있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그리스도의 육화에 나타난 신의 주도적 은총을 강조하는 서구 그리스도교의 구원론과 보편적 교회라는 종교적 정체성의 핵심에 원죄교리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과, 그것은 혼돈과 악이라는 옛 신화적 주제의 변형으로서, 후기 고대의 확장되고 파편화된 세계와 그로부터 요구된 보편적 종교에 상응하는 새로운 악의 상징으로 볼 수 있음을 밝혔다.
This dissertation investigates how Augustine's theory of 'original sin' was sprouted, developed, disputed and at last accepted in his private life and the complex historial contexts of Christian church and late Roman Empire in the fourth, fifth centuries, and then attempts to redescribe its religious historical meanings, focusing on dogmatization process of it.
Latin Father Augustine played a decisive role in the formation stage of doctrine of 'original sin', that consists of the ideas of original sin's universality, it's transmission by birth, and man's inability and necessity of grace for salvation. By reviewing his personal narratives in Confessiones(392), that triggered Pelagian dispute, we could examine the concrete moments in which Augustine had come to such theological ideas, as rethinking over free will, evil as human dilemma, divine grace, predestination, etc. I argued that in Confessiones, Augustine's theology of original sin was vividly represented. First of all, because in it he tried to praise God, his Savior and to restore the love of God against self-love, by confessing, that is, disclosing his sinful and disgraceful lives to God. And then, Augustine's intense conflicts with himself till conversion to christianity, quest for puzzling question of evil, experiences as a Manichaean auditor, awareness of violent power of a habit, etc. recalled in Confessiones, show his inner streams running to the ideas of original sin by reassessing human will and potentiality and recognizing the priority of God's grace(love, will).
This new self-knowledge arising from self-examination as an acetic monk and the reflection on the perpetual power of habit, deepened the ideas of original sin by merging theologically with bitter sympathy about ordinary lives of popular and mediocre christians he had to confront with in his pastoral field. Augustine began to assert all human being's mortality and corrupted nature resulting from Adam' primary sin and to emphasize clearly we can't begin our faith and practice the good without the help of grace because of original sin, in his exposition of Paul's Letters.
Pelagian Controversy was the process through which, as confronted with strong resistance and criticism from the intimate christian circle, Augustine had his theology of original sin acquired doctrinal position as public discourse of church, by connecting it with the precedents and authorities of the christian community. Particularly, in the course, Augustine appealed to the evidence of infant baptism and the tacitly prevailed presupposition in christian community that baptism, the earliest communal rites of christians, is the indisputable foundation of the catholic church. This suggests that religious ritual as well as canon and theology played a important and active role in formation of the religious dogma.
The dogmatization of original sin in the fifth century also was closely related to reestablishment of the identity of 'catholic'(universal) church more inclusively. In newly changed conditions such as the official acceptance of christianity in the early fourth century and it's gradual change into imperial religion of Rome, Church could not maintain the identity as 'holy church' separated from secular world, any longer. In such situations, Original sin, firstly, gave catholic church a unifying principle effectively by the perspective that both church and secular world receive the same application of original sin and is subject to the same grace, and secondly, it reaffirmed a universal unity of christian community against the dualistic trends between spiritual elites and common christians, and thirdly, it could become a doctrinal device both disclosing the sins everlasting after baptism in habit and the pagan past remained in culture, and receiving them in the structure of christian soteriology, and fourthly, it authorized Catholic Church as the only organ of grace absolving original sin, its Sacrament, and Catholic bishop as its administrator, and finally it offered theological foundations of new church-state relation model characterized by the tension and coexistence of Catholic church and secular power. Consequently, the doctrine of original sin could be a very effective conception for Catholic Church since the fifth century.
The doctrine of original sin, translated it into the symbolism of evil of Paul Ricoeur, can be described as a new symbolism of evil reunifying individual symbol of guilt with symbol of solidarity of sin in the current of internalization and individuation of sin in the Late Antiquity, and constituting the 'catholic church' which can be applied everywhere beyond the boundaries and limits of specific, visible territory. In addition, original sin's concept was deeply rooted in the existing christian community, by symbolizing the complex and paradoxical experiences of christians experiencing God(Christ)'s saving power in baptism and confessing individual sins through the penance rites.
And then, Augustine's doctrine of original sin, based on Paul's divine, indiscriminative charis(grace) modified from reciprocal, selective charis of ancient Greece and Rome, not only made it possible for all to receive charis, but also made it necessary. Therefore, original sin was a principle of inclusiveness and openness, and at the same time could be a principle of exclusiveness and coercion, in that all sinners was able to receive charis only through the Catholic Church, the single agent of Christ.
After all, this thesis, firstly, illuminates that the idea of original sin was correlated with the core of religious identity as a 'catholic church' and soteriology of western christianity, secondly, it shows that the idea of original sin, as a variation of old mythic theme of chaos or evil, can be described as a new symbolism of evil corresponding to the emergence of 'universal religion' in order to answer the late ancient mediterranean world expanded, scattered by the imperial enterprises resulting in the decline of 'polis religion'.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6654

http://dcollection.snu.ac.kr:80/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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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Religious Studies (종교학과)Theses (Ph.D. / Sc.D._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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