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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교량의 문화경관 해석: 연결, 교감, 상징 : (A) Study on the Bridges of the Joseon Dynasty as Cultural Landscape: Connection, Communion, Symb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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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문지영

Advisor
황기원
Major
협동과정 조경학
Issue Date
2012-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Abstract
한국은 지형적으로 산이 많다. 그리고 계곡, 하천, 강 등의 물길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어, 이들 물길을 가로지르는 교량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교량은 끊어진 두 지점을 빠르고 안전하게 이어준다. 한국의 옛 교량은 두 지역을 이어주는 기능 외에 복합적인 기능을 갖추었는데, 시대의 예술작품, 조상들의 정신세계의 반영, 그리고 일상 생활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특징은 근대산업 발전 이후의 교량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 교량의 물리적 특징, 생활 속에서의 활동, 문화적 의미를 문화경관적 관점에서 포괄적이고 입체적으로 해석하였다. 특히 교량의 세밀한 현황조사를 바탕으로, 역사기록 및 회화와 시 등에 이르기까지 교량에 나타난 다양한 활동과 의미를 분석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조선시대 교량의 고유한 속성과 가치를 알리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교량설계가 지나치게 기능적이며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실천적 함의를 지닌다.
조선시대 교량의 문화경관적 특징은 물리적, 경험적, 의미적 측면으로 구분하여 해석하였다.
물리적 특징은 교량의 형태와 색채, 교량과 주변경관과의 관계, 교량의 의장에 나타난 조형적인 상징 표현으로 구분하여 해석하였다. 조선시대의 교량은 웅장하며 장식과 기교가 많은 서양 혹은 중국의 교량과는 달리, 중ㆍ소규모의 간결하며 명쾌한 구조미가 강조되었고, 과학적ㆍ실용적이었으며 동시에 조형적이었다. 그리고 교량에서의 조망과 머무름을 위한 형태적 특징을 갖추었다. 또한 당 시대의 문화ㆍ관습ㆍ사상이 교량의 형태에 반영되었으며, 자연재료의 자연스러운 가공과 친자연적인 경관 조성이 특징적이었다. 조선시대 교량의 색채는 자연의 재료에서 원료를 추출하였다. 석재의 경우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목재는 천연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자연에서 원료를 채취한 단청색을 표면에 칠하였다. 그리고 누교와 행각교의 기와에는 토사에 열을 가하여 굽는 방법을 통해 색채를 만들었다. 교량과 주변 경관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자연환경과 문화경관의 공생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교량의 주변에는 항시 자연의 요소가 공존하고 있었는데, 건조물이 차폐 및 초점경관을 형성하거나 혹은 위요를 하고 있는 경우에도 해당되었다. 조선시대의 교량은 주변경관과 구별되어 홀로 강조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게다가 일부러 교량의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 경관을 정리하는 경우 또한 없었다. 수경은 사상으로 조영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지당과 수로에 놓인 교량의 형태와 의미에도 영향을 주었다. 교량에 나타난 의장은 동물ㆍ식물ㆍ자연ㆍ초자연 형태를 통해, 인간의 무사안녕에 대한 바램과 초자연세계로의 염원,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경험적 특징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교량의 용도와 쓰임새, 교량을 매개로 한 민속놀이와 민속신앙에 나타난 의식, 조선의 회화에 나타난 교량에서의 활동과 체험으로 구분하여 해석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교량 위 혹은 교량 근처에서는 임금, 신하, 백성 등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 전국의 남녀노소가 만나고 헤어졌다. 그리고 궁궐과 도성의 교량은 제례, 어가행렬, 준천의식 등의 다양한 행사와 의식 거행의 장소, 마을의 교량은 주변경관현황 및 활동인식의 기준점, 당 시대의 정치와 문화활동의 반영물로 나타났다. 민속놀이와 민속신앙의식 가운데 교량은 두 가지 유형의 쓰임을 나타냈는데, 하나는 놀이와 축제의 장소였고, 또 다른 하나는 신앙활동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 회화에 나타난 교량은 이동의 수단,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 축제와 행사의 장, 풍류를 즐긴 곳으로 쓰였다.
의미적 특징은 교량명에 내재된 의경 표현방법, 조선의 한시에 나타난 교량의 상징적인 의미, 전설ㆍ신화ㆍ민담ㆍ속담 속 교량의 존재양상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해석하였다. 조선시대의 교량명에는 교량의 위치, 형식, 형태, 재료 등의 물리적인 특징과 교량가설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교량과 교량이 놓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아름다움이 표현되었으며, 시대의 사상과 사람들의 염원을 반영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한시 속 교량은 성과 속, 이승과 저승의 연결과 단절, 새로운 세계로의 관문을 상징했으며, 평화ㆍ아름다움ㆍ풍류ㆍ기쁨ㆍ의지ㆍ신념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 혹은 쓸쓸함ㆍ어두움ㆍ우수ㆍ아쉬움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의 표상으로도 표현되었다. 전설ㆍ신화ㆍ민담ㆍ속담 속 교량은 만남과 사랑의 상징으로 가장 빈번하게 쓰였는데, 이별ㆍ원한ㆍ재앙ㆍ의심ㆍ위태로움ㆍ위험ㆍ어려움ㆍ더러움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 영속성과 초월성의 상징으로도 언급되었다.

이들 해석의 종합결과, 조선시대 교량의 문화경관적 해석은 연결, 교감, 상징의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되었다.

연결(連結, Connection)
연결(連結)은 사물과 사물 또는 현상과 현상, 사람 혹은 집단간에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조선의 교량에서는 다양한 형태, 현상, 의미의 연결이 있었다. 즉, 한 지점과 다른 지점, 교량과 주변환경, 양측 지역의 문화, 자연과 문화, 교량과 인간, 인간과 인간, 개인과 집단, 현세와 이상세계가 교량을 통해 연결되었다. 그러나 교량의 연결성은 그 이면에 이별, 송별, 단절, 관문의 의미를 내포하였다.
조선시대 교량의 형태는 단순하고 명쾌하며 조형적이었다. 교량은 교각, 교면과 같은 구조부재를 중심으로 지어졌고, 인공적인 가공을 최소화 한 석재와 목재 같은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였다. 이는 교량이 자연과 사람, 혹은 자연과 문화를 이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의 교량은 홀로 강조되기 보다는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조화로운 경관을 형성하였다. 교량의 의장은 지역의 문화, 개인과 집단의 염원, 현세와 이상세계를 연결시켰다. 조선왕조실록, 민속놀이와 민속신앙의식, 조선의 회화에 나타난 교량은 교량의 의장에 나타난 세 가지 연결성 외에 사람과 사람, 을 연결시켰다. 교량명, 조선의 한시, 전설ㆍ신화ㆍ민담ㆍ속담 속에서의 교량은 교량과 교량, 교량과 교량이 관계한 대상, 교량과 교량이 놓인 장소, 교량을 통한 인간의 감정과 염원과 같이 구체적인 대상 및 추상적인 이미지를 연결시켰다.

교감(交感, Communion)
인간 혹은 자연과의 교감은 교감을 하는 주체가 이들과 생각 혹은 느낌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불특정 다수의 소통을 내포한다. 조선시대의 교량에서 역시 사람들간의 다양한 활동과 체험을 통한 소통이 이루어졌다.
교량 위 혹은 교량 인접 공간에서는 왕, 신하, 백성과 같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과 전국의 남녀노소가 만나고 헤어졌다. 그리고 지인 혹은 벗이 서로 교류하는 장소로도 언급되었다. 조선의 교량에서는 제례, 왕의 행차, 준천의식, 계회 등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행사와 의식이 거행되었다. 놀이와 축제의 장, 풍류를 즐긴 곳으로도 교량이 이용되었는데, 정월대보름에 전국에서 펼쳐진 답교놀이가 대표적이었다. 이 밖에 다리놓기놀이, 다리축제, 다리굿놀이를 통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화합과 협동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교량 옆 공터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다. 조선의 교량은 교량명, 교량의 위치 혹은 의미를 통해 교량이 놓인 지역의 현황과 활동을 인식할 수 있었다. 특정 교량을 언급함으로서 사람들은 지역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고, 따라서 대화의 소통이 가능했다. 또한 교량은 집단의 문화와 정치의 반영물로 언급되었다. 즉 조선시대의 교량은 단순한 건너기 수단이 아닌, 선조들의 삶이 반영된 정체성 있는 장소 였으며, 공공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교량을 통해 인간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조선의 교량이 자연경관 가운데 놓였으며, 자연의 재료를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축조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수경에 놓여서 교량에서의 오감 체험이 가능했다.

상징(象徵, Symbol)
상징은 특정 개념을 대표하는 어떤 것으로서, 물리적인 독립체이거나 혹은 과정이다. 상징의 목적은 의미의 소통에 있다.
조선시대의 교량은 존재의 이유에서부터 교량 및 교량인접 공간에 표현된 상징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징이 나타났다. 조선시대 교량의 상징성은 교량명과 의경 표현방법, 한시에 나타난 교량의 상징적 의미, 전설ㆍ신화ㆍ민담ㆍ속담에서 교량의 존재양상과 정체성, 교량과 주변 경관과의 관계, 교량 의장의 종류별 형태와 상징적 의미, 교량을 매개로 한 민속놀이와 민속신앙의식 등의 해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교량의 교량명에는 지역의 경관, 역사적인 유래와 사건, 현세와 불교ㆍ도교ㆍ사후세계의 식별 및 통로, 성스러운 곳으로의 진입로, 사람들의 염원 등의 상징이 담겨 있었다. 조선시대의 한시와 전설ㆍ신화ㆍ민담ㆍ속담에서의 교량은 연결ㆍ단절ㆍ관문, 아름답고 기쁘며 풍류가 있는 곳, 인간의 능력과 신념, 만남과 사랑, 영속성, 초월성의 상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별ㆍ원한ㆍ재앙ㆍ위태로움ㆍ위험ㆍ아쉬움 등 어두운 이미지로도 교량이 언급되었다. 특히 교량의 하부 공간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였다. 교량과 주변 경관과의 관계 해석 가운데, 수경의 형태와 교량경관과의 관계에서 지당과 수로의 교량에 담긴 의미는 이상세계로의 이동로, 도교ㆍ불교의 이상향 및 철학사상의 상징, 인간의 사상ㆍ명상ㆍ풍류ㆍ관조ㆍ집중 등과 관계된 이미지로 해석되었다. 교량의 상징 조형물에서는 동물ㆍ식물ㆍ자연ㆍ초자연 형태의 의장을 통해, 벽사ㆍ길상ㆍ열반ㆍ영생ㆍ이상향ㆍ생명ㆍ창조ㆍ번영ㆍ순결ㆍ아름다움ㆍ젊음을 나타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전통공간 가운데, 궁궐ㆍ사찰ㆍ능과 고분에서 교량의 상징성이 가장 강조되었다. 교량을 통한 놀이와 축제, 신앙활동으로서의 교량은 건강ㆍ복ㆍ행복ㆍ행운ㆍ액막이ㆍ안정ㆍ이숭과 저승의 연결ㆍ천도의 수단을 상징했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6724

http://dcollection.snu.ac.kr:80/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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